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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한국경제 비화 ㉞]편타대출과 화신산업(Ⅰ)

<전편에 이어>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은행, 몇몇 재벌회사에 편타대출

 

1965년 2월 25일.

제48회 임시국회가 30일 일정으로 개회되었다. 그런데 야당인 민정당과 민주당은 ‘금융 특혜’ 문제를 회의 벽두부터 들고 나왔다. 그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화신산업(和信産業), 삼호방직(三頀紡織), 판본방직(阪本紡織) 등이 합계 15억원의 정치자금을 냈으며 이를 위하여 이들 3개 재벌 회사에 145억원의 특혜 여신을 해주었다. 이들에 대한 특혜가 고위층에서 직접 지시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인 공화당의 해명은 즉각 나타났다.

 

“신문에 보도된 앞의 회사들에 대한 145억원의 특혜는 그중 80%가 지급보증이기 때문에 현금 대출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융자는 수출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하여 자유당 정부 때로부터 있어 왔던 것이며 우리나라와 같이 내자 동원이 어려운 데서는 불가피하다. 또한 편타대출은 금융기관에서는 흔히 있어 온 일이며 화신(和信)의 조흥은행에 대한 것은 그 정도가 좀 지나쳤을 뿐이다”

 

이 편타대출이란 무엇인가.

 

야당의 이중재(李重載) 의원은 “편차(偏差)인지 뭔지, 그거 당좌 ‘야리꾸리’ 아니오”라고 야유섞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편타는 은행에서 당좌계정을 통하여 타점권을 편의지급해준다는 말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금융실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用語)다.

 

이 거액 무자원 당좌수표가 어음교환에 회부되어 지급은행에서 결제가 되면 좋겠는데 부도처리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또 다른 무자원 당좌수표로 받아 메우는 수가 있다. 일종의 편법이다.

 

이런 거래를 ‘맞교환’이라고 하는데 한쪽은행에서 부도를 내지 않고 결제하면 상대 은행에서 부도가 되지 않는다. 하루만 이렇게 처리했으면 편타라도 눈감아 줄 수도 있겠는데 한 달, 두 달 심지어는 1년 이상 계속되고 금액이 불어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 이들 재벌회사에 대해서 대출을 하지 아니하고 편타대출이라는 부당한 업무처리를 하였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대출한도 초과를 숨기기 위해서다. 소위 은행법 제27조 4호에 1개 차주회사에 대하여 은행자기자본의 25% 이상의 대출을 할 수 없다는 법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과다한 대출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하여 물가상승 등 민생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은행법 제15조 자기자본의 15배 이내에서 대출운영을 하여야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건의서를 도하 각 신문의 광고난에 게재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오늘날 전경련(全經聯)의 전신이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고 국가경제의 올바른 방향으로 보다 확실한 전진과 체질개선이 요구됨을 통감하면서 당면 경제시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재정금융 특혜편중정책 시정에 대하여 5·3 환율인상 이후 통화량은 누증되었으나 일반산업계는 전례 없는 자금공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긴박한 사태는 보다 적절한 금융지원 등으로 지체 없이 수습 타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의 핍박은 날로 심화되고 이것이 전 경제계에 파급되어 자금난에 따른 조업단축, 휴업이 속출되고 고용저하 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특혜와 편중금융정책 때문이겠고 따라서 일반 산업자금 사정을 악화시켜 경제계의 앞날이 크게 우려되고 있는 바입니다….”

 

경제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을 즈음 여론은 거의 본능적으로 재벌의 금융독점을 비난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재벌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는 전경련이 금융특혜와 편중금융정책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은행, 소수 특정재벌에 집중적으로 여신(與信)

 

야당은 거의 매일 5, 6일 동안 집요하게 특혜 대출 문제를 파고들었다.

“정부의 모 고위당국자는 시중은행에 대해서 편타대출을 지령 내지는 압력을 가하였고, 다른 고위층에서는 이를 적발한 은행감독원에 압력을 넣어 이를 뭉개 버렸다.”

 

이 두 개의 흐름을 종합해 보면 당시의 은행대출이 소수 특정재벌의 독점물이 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아닌 게 아니라 은행대출은 소수 특정재벌에 편중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문제의 발단이 된 1964년 8월말 현재 거액대출현황(지급보증 포함)을 보면 화신산업 31억 5300만원을 비롯하여 삼호방직 37억 1700만원, 판본방직 55억 5600만원, 금성방직(金星紡織) 26억 8000만원, 삼성물산(三星物産) 8억 2900만원, 대한양회(大韓洋灰) 7억 5400만원, 대한제분(大韓製粉) 3억 9600만원, 극동건설(極東建設) 3억 8300만원, 대한산업(大韓産業) 1억 3200만원 등 9개 재벌그룹에 도합 176억 4000만원이 집중적으로 나갔다.

 

요즈음 감각으로 보면 176억원은 별 것 아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1964년 8월말 현재 통화량이 409억원이었으니까 9개 재벌그룹에 대한 여신합계액은 통화량의 44%를 차지했고 일반은행 여신잔액 462억원의 약 40%를 점했다.

 

최근 통화량이 258조 5380억원 수준이니까 요즈음 기준으로 보면 115조원 가량이 소수특정기업에 집중적으로 여신된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격화일로에 있는 인플레를 수습하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나가고 있었다. 당시 물가는 연 35%의 속도로 오르고 있었고 금리는 연 16%에 불과했다. 그래서 은행돈을 쓴 사람은 대출 받을 때 들어가는 제반 비용을 제쳐놓고도 가만히 앉아서 연 10% 내외의 인플레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중의 사채(私債)금리는 월 3~4%를 웃돌았고 바야흐로 부동산 투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은행돈을 꺼내다 사채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 달리 이용하면 엄청난 횡재를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한 번 은행창구를 빠져나간 돈은 되돌아 올 줄 모르고 고정화한 융자액이 총대출금의 80%에 달했다.

 

이처럼 특정그룹에 편중된 여신이 긴축하에서 이루어졌으니 수혜대상에서 제외된 일반기업의 자금사정은 물어보나마나. 은행은 통화환수를 위해 중소기업과 농촌부문을 상대로 대출금의 강제회수를 강행함으로써 부도가 늘고 경기 침체를 몰고 왔다.

 

금융특혜가 문제된 것은 세계에서 유례 드문 비현실적인 금융정책와 5개년 계획의 목표달성에 급급한 정부의 과잉의욕이 빚어낸 부산물이었다.

 

정부는 5개년 계획의 목표달성에 얽매인 나머지 계획사업엔 물 쓰듯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금융은 특정업체에 집중되어 나갔다. 그 때문에 재계는 재계대로 들떠 있었다. 사업계획만 제시하면 외자는 차관으로, 내자는 은행대출로 조달할 수 있었다. 줄만 잘 잡으면 맨손으로도 사업을 일으키고 재벌로 발돋움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의 금리구조를 보면 은행금리와 시중금리의 격차가 너무 커서 명목적으로는 대출을 받은 자가 은행에 금리를 무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출자가 무는 금리라고는 한 푼도 없고 오히려 금리를 지급 받고 있는 것과 같은 꼴이었다.

 

그런 까닭에 은행돈을 꾸어다 쓰는 소수 특정인은 인플레 혜택을 누리지만, 예금자나 일반 국민은 재산상 그만큼 손해를 입고 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처럼 은행대출을 받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권으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에 은행대출에 정치권의 개입은 또 다른 잡음을 낳게 되어 말썽이 꼬리를 물었다.

 

더욱이 편타(便他)는 당좌대출을 다른 당좌수표로 1일 결제하는 것이므로 대출금으로 계수가 잡히지도 않고 대출이자도 어물쩍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특혜이다. 편타취급을 10개월 계속하면 대출금리만큼 커미션을 정치자금으로 내놓아도 손해볼 것이 없다. 화신산업과 삼호방직, 판본방직은 톡톡히 특혜를 누렸고, 정치권에도 곱게 보였다.

 

1963년 대통령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그는 구악을 일소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1961년 5·16 쿠데타를 주도하였고,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으며 1962년 대통령권한대행을 역임하다가,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었다. 이어 민주공화당 총재에 추대되었고, 그 해 10월 제5대 대통령후보로 나섰다.

 

박정희와 겨룬 인물은 윤보선이다. 그는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인하여 1962년 사임하고, 1963년 민정당(民政黨)을 창당하여 그 해 대통령선거에 대통령후보로 출마하였다.

 

당시 대통령후보들의 양상.

범야 단일 대통령후보를 옹립하기 위하여 국민의 당 허정(許政) 씨와 옥중 출마한 자유민주당 송요찬(宋堯讚) 씨는 선거전에 사임하였다.

 

그러나 신흥당의 장이석(張履奭), 추풍회의 오재영(吳在泳), 정민회의 변영태(卞榮泰)와 같은 군소정당후보들의 난투상쟁으로 윤보선은 불과 15만 6026표의 근소한 차로 박정희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박정희는 유권자 1298만 5015명 중 47.6%인 470만 2640명의 지지를 얻었다.

 

국회 재경위원회서 편타에 대한 두 기관장의 발언

 

다시 6대 국회로 가보자.

국회 재경위원회는 3월 2~3일 양일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장기영(張基榮), 재무부 장관 홍승희(洪升熹), 한국은행 총재 김세련(金世鍊), 산업은행 총재 이정환(李廷煥), 은행감독원장 문상철(文相哲)을 출석시켰다.

 

재경위 제3차 금융정책에 관한 질문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소상하게 질문과 답변을 듣기 위해서 일문일답으로 하자고 요청하였다.

 

“편타를 은행감독원에서 적발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첫 번째 질문자는 김대중(金大中) 위원이다. 적발한 부정을 왜 덮어버렸느냐는 질책이다.

 

“거기에 대한 조치를 건의했습니다.”

문상철 은행감독원장은 짤막하게 답했다.

 

“명백히 배임죄가 형성되는데….”

“배임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어제 정부당국도 시인할 정도로 편타가 불법행위라고 했는데 은행업무를 이렇게 불건전하게 운영한 것이 배임행위가 아닙니까?”

“배임에 대해서 설명 드리려고 하는데 배임은 본인에 대해서 어떤 손해를 끼친다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편타를 보아 가지고 은행에 대해서 손해를 끼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자로다가 규정이자 이상의 고율 이자를 받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 조건이 수반되지 않는 한 배임은 형성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물러설 김대중이 아니다.

“은행경영자의 편타가 합법입니까?”

“합법이라는 것보다도 하나의 지도방침으로써 편타를 하지 말아라 하는 은행감독원장으로서의 지도사항위반이 될 것입니다.”

 

“어제 재무부장관과 경제기획원장관이 여기서 증언한 것을 들어보면 분명히 불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대해서 은행감독원장께서도 수긍을 하십니까?”

“불법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보다도 규정에 위배된다…. 편타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도를 초과했다는데 대해서 규정을 위배했다는 문제가 있고 하나는 방법이 비정상적이라 불법이라고 직접 이렇게 내세우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대해서 이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런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배임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배임은 배임이라는 법해석이 있으니 이에 직접 해당되기는 어렵다 이런 설명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상철 은행감독원장은 편타대출 불법시비 딜레마에 빠져있었다. 그리고도 시중은행의 입장을 감싸주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김세련 총재는 시중은행의 편타대출이 불법이라고 시인하고, 한도외 대출(편타대출)이 모두 23억원이라고 증언해 한국은행내의 두 기관장의 발언 내용이 서로 엇갈려 세인(世人)을 의아하게 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 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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