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이 사건 이후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남덕우 재무부장관이 국회에서 밝힌 이 사건의 문제점과 대책은 아래와 같다.
문제점으로는 압력 및 청탁이 근절되지 못한 점, 사고보고의 지연, 신용장의 진위 판별소홀, 수출금융제도의 악용, 대출업체에 대한 사후관리 소홀, 거래기관과 그에 관련된 업체의 신용조사 불철저 등을 지적했다.
그리고 금록통상과 같은 부정대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을 마련하였다. 단기대책으로는 은행감독기능강화를 위해서 은행감독청을 설립하는 등 감독기구의 독점을 검토하고, 신종 금융사고 보험제도에 대한 신설을 검토하며, 저축목표의 개인 할당제와 기업예금에 대한 파출수납제도를 폐지하고, 금융기관직원의 처우개선을 검토하고 있으며, 대출기관에 대한 청탁, 압력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출청탁 및 압력자의 보고를 철저히 하도록 하고, 각급 금융기관간에 거래기업의 상호정보교환제를 실시토록 할 방침이라고 했다.
또 장기대책으로는, 특혜금리차의 점진적 축소를 위해서 금리체계를 일원화할 방침이며, 수출금융제도를 재검토하고, 금융제도조사회를 설치하여 금융관계법규 및 제도를 연구 검토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실현을 본 대책은 은행의 업무수당만을 인상하였을 뿐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疋)로 끝났다. 그리고 금록통상 박영복은 세인(世人)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강진(强震) 뒤에 여진(餘震)이 있다고 하는데, 8년 후인 1982년 박영복 사건 후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후에도 이어진 박영복의 권력형 부정 사기대출
1982년 2월,
복역 중으로만 알고 있던 박영복(46세)이 느닷없이 은행에서 또 사기대출 20여억원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영복은 1978년 1월 간염 및 당뇨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돼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런데 그의 두뇌는 병들어 쉬지 않았다.
1980년 12월말부터 1981년 10월까지 측근자 명의로 부실회사와 유령회사를 인수 또는 설립하고, 자신은 아풍산업의 이영국이라는 가명으로 회장을 자처하고 있었다.
유령회사들을 신용과 거래실적이 많은 정상업체인 것처럼 꾸며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증, 인감증명서 등을 위조해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장 성기언 씨에게 1980년 7월 신용보증서 발급을 청탁하였다.
그는 1980년 12월말부터 1981년 7월 중순까지 21차례에 걸쳐 부실한 담보를 제공하고 성기언으로부터 유령회사인 아풍산업 등 5개회사 명의로 신용보증서 21장을 발급 받았다. 이를 이용해 대구투자금융 등 8개 금융기관에 어음할인 등의 방법으로 2억1000만원의 부정대출을 받았다.
또 1981년 6월부터 10월까지 서울은행 종로4가지점과 동대문지점 등에 사채(私債) 6억원을 예금 유치해 주고 신용이 있는 것처럼 위장한 다음 이영국이라는 가명으로 5차례에 걸쳐 6020만원을 부정대출 받았다.
그는 또 1981년 10월 이헌두(李憲斗·58세) 씨에게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 주면 은행대출을 받아 주고 그 반액을 자기가 사용하는 대신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속여 이 씨의 소유 부동산을 서울은행 동대문지점에 담보로 제공케 한 뒤 대출금 2억원 중 1억원을 가로챘다.
그는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중이던 1981년 10월 아풍산업이라는 유령회사를 차린 뒤 자신이 회장으로 앉고 내연의 처 이풍자 씨가 경영하는 술집 학산의 종업원 김두찬(金斗贊·48) 씨를 대표로 앉힌 다음, 친구 신상연(申相演) 씨와 자기차 운전사 조장년(曺章年·38) 씨를 주로 하수인으로 시켜 범행을 해 왔다.
검찰에서는 1982년 2월 11일 박영복을 서울구치소에 재수감하고, 2월 12일에는 내연의 처 이 씨를 구속했으며, 금융기관 지점장 등 관련자 7명을 구속했다.
박영복은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병들어 누워있는데 어떻게 범행을 저지를 수가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서울형사지법 합의11부는 1982년 7월 26일 형집행정지 중 또 다시 사기극을 벌이다 재수감된 전 금록통상 대표 박영복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 선고된 형량 이외에1975년 11월 서울고법에서 선고받은 징역 10년의 남은 형기를 함께 복역하게 되므로 복역해야 할 기간은 19년이 되었다.
또한 관련 피고인 10명에게 징역 4년에서 1년까지를 각각 선고됐다.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장 성기언에게는 징역 2년, 추징금 400만원이 선고됐다.
박영복과 권력형 부정대출은 경제개발계획 추진과정에서 파생된 수출금융특혜와 내자동원을 위해 무자비하게 내몰렸던 예금에 약한 은행원의 맹종,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을 엎은 특수기관원의 권력남용이 어우러진 한판 권력형 부정 융자극이라 할 수 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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