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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한국경제 비화 54회] 한보사건과 정태수(Ⅳ)-최종회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지난호에 이어서> 

 

당진제철소 투자비가운데 1조 5000억원이 과투자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렇다. 우선 한보철강은 A지구내 연산 100만t 철근공장에 4383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으나 진공 탈가스장치 같은 추가시설을 갖춘 강원산업의 120만t 규모 철근공장은 1990년 2000억원이 소요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공장건설비를 아무리 높게 잡아도 당진철근공장에 2500억원 이상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원산업은 보고 있다.

 

또 당진제철소 박슬래브 제1열연공장 연산 200만t에 7797억원이 투자됐다고 밝히고 있지만 포철은 똑같은 규모임에도 6500억원 밖에 들지 않았다.

 

포철설비는 한보철강 것보다 더 많은 부대시설이 설치됐음을 감안하면 1300억원 정도가 비싸게 먹힌 셈이다.

 

물론 한보철강과 포철의 열연공장 기종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곤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보철강과 기종이 같은 미국 뉴코어사의 연산 1만t급 설비는 2억 7100만 달러가 투자됐다. 이를 환산하여 한보철강과 비교해 본다면 3100억원의 차액이 발생한다.

 

한보철강은 또 코레스 1기에 4289억원씩 2기를 들어왔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한보철강 코렉스 설비는 포철이 설치한 오스트리아 훼스트알피네사의 60만t급 C-2000 모델이다. 포철은 이 설비를 2800억원에 들여왔다고 밝히고 있다. 한보철강은 또 연산 300만t급 제2열연공장도 1조 2782억원이 소요됐다고 발표했다. 포철의 300만t 규모의 열연공장 설지가격 6700억원과 비교했을 때 8000억원 이상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다.

 

냉연공장도 200만t 규모에 1조 3656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보철강은 밝히고 있지만 동부제강의 130만t 설비 6900억원, 포철의 180만t 1조 1060억원과 비교하면 1조 28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물론 이같은 차액 가운데 일부는 한보철강이 경영능력, 정보부족으로 과투자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자금이 투여되었는데도 완공까지는 1조 5000억 내지 2조원이 더 필요하다고 계속 자금지원을 요구한다. 또 거액을 투입하더라도 장래가 불확실하니 뒤를 돌봐주던 정치권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은행들의 ‘한보 돕기’

 

정태수 총회장은 충분한 사업성 검토도 없이 배후의 큰힘에 의지해 주인 없는 은행 자금만 끌어들이면 성공은 틀림없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한보철강이 부도나기 직전인 1996년 말 현재 한보철강의 여신규모는 대출금과 지급보증합하여 은행 3조 4767억원, 종합금융회사, 보험사, 리스사 등 제2금융권 1조 8484억원 등 모두 5조 3251억원이었다.

 

한보철강에 대한 은행의 여신잔액을 시계열로 보면, 1993년 말까지 4754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4년에 들어 1조 5249억원으로 3배가 됐고, 1995년에는 2조 4621억원, 1996년말에는 3조 1767억원으로 늘어났다.

 

은행별로는 한보철강 부도 직후인 1997년 1월 25일 현재, 제일은행이 1조 783억원으로 선두였고, 산업은행이 9326억원, 조흥은행 4940억원, 외환은행 4212억원, 서울은행 2110억원, 상업은행 455억원 순이다.

 

특히 제일은행의 경우 은행납입자본금 8200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대출이 이루어졌다. 은행입장에서는 은행경영의 ABC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제일은행은 동일인한도 초과로 지원이 어렵게 되자 신탁계정에서 대출해주었다.

 

외압이 없이는 은행장의 판단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1993년 말까지만 해도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은 서울은행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보철강 주요채권은행인 제일, 산업, 조흥, 외환은행은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은 거의 없거나 미미했다. 그러나 1994년 들어 이들 은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한보 돕기’에 나섰다.

 

거래은행인 서울, 상업은행도 꺼려하는 시점에서 거래도 없던 은행들이 대거 한보철강에 나선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한보철강이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1996년말 은행실무자들은 ‘한보철강에 더 이상 대출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은 1997년 1월 1200억원 등 모두 5200억원을 추가 지원한 것도 은행 자의가 아니며, 그로부터 한 달도 안돼 ‘부도’로 선회한 것도 은행자체의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은행 속성상 설비투자사업에 한번 대출해준 이상 끝까지 살려보려고 하지 공장완공 직전에 죽이지 않는다. 어쨌든 날이 갈수록 한보철강은 깊은 늪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돌아오는 어음을 은행이 막아주지 않으면 넘기기 어렵게 되었다.

 

박광태(朴光泰)의원의 은행대출에 관한 발언.

 

“단군이래 최대의 금융비리사건인 한보사건과 관련하여 구속된 은행장은 제일은행장 신광식(申光湜) 씨, 조흥은행장 우찬목(禹贊穆) 씨 뿐입니다. 한보대출 초기부터 핵심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산업은행 전 총재 이형구(李炯九) 그리고 자신이 은행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한보특혜대출이 이루어진 외환은행장 장명선(張明善) 씨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검찰이 덮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산업은행 전 총재 이형구 씨는 검찰에 불려가서 ‘내가 무슨 배짱이 있어서 수천 억원 이상의 금액을 대출해 주었겠는가? 다 위에서 시킨 대로 한 것이다’라고 진술하면서 권력핵심의 이름을 거명하자 검찰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바로 귀가시켜버렸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장명선 외환은행장은 김영삼 대통령이 야당총재 시절 LA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미국에서 생활하던 김영삼 총재의 장남 김은철 씨를 극진하게 도와준 인연으로 현재까지 김영삼 대통령 가문과 각별한 인연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연이 바탕이 되어 은행장까지 오르고 급기야는 한보대출에 하수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작년 11월 국제벨브사건으로 서울은행장 손홍균(孫洪鈞) 씨가 구속될 당시 검찰에 비리가 포착되어 손행장과 같이 구속될 처지였으나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을 통해서 구제해 주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한보대출에 대한 권력핵심의 개입을 추론할 수 있는 정황이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하나만 더 들겠습니다. 1996년도 상업은행에도 한보에 대한 지급보증이 1000억원이 할당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업은행의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정지태(鄭之兌) 행장이 직접 정태수 회장을 찾아가서 통사정을 해 가지고 500억원만 지급보증을 해주었다고 상업은행의 고위간부가 본 의원에게 확인해준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은행장이 채무자를 찾아가 가지고 통사정을 하는 이러한 진풍경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정·관계 인사 비리 내용

 

검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김종국(金鍾國) 재정본부장을 비롯하여 현역 국회의원 4명과 장관 1명, 은행장 2명 등 모두 9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한보그룹 주변에서는 정씨의 비자금이 수천 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도 1000억원 정도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중 로비에 사용된 것으로 검찰이 밝혀 낸 액수는 고작 30억원 안팎이었다.

 

최원(崔垣) 대검찰청 총무부장이 국회에서 보고한 내용 중 정·관계 인사의 비리를 들어보자.

 

“홍인길 의원은 1995년 1월경부터 1996년 12월까지 정태수 씨의 부탁을 받고 산업은행 총재 제일은행장, 외환은행장 등에게 청탁을 하여 당진제철소의 시설자금을 대출 받게 해주고 5회에 걸쳐 그 대가로 10억원을 수수하였습니다.

 

황병태 의원은 1996년 12월경 정태수 씨의 부탁에 따라 산업은행 총재에게 청탁하여 한보철강이 500억원의 지급보증을 받게 해주고 그 해 12월경 그 대가로 현금 2억원을 수수하였습니다.

 

정재철 의원은 1995년 10월경 정태수 씨로부터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한보그룹의 여신 및 담보현황에 대한 질의를 하지 말도록 무마해 줄 것을 권노갑 의원에게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대가로 권노갑 의원에게 전달하라는 현금 2억원을 받고 1996년 10월경 정태수 씨로부터 권노갑 의원에게 같은 취지로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권노갑 의원에게 전달하라는 현금 1억원을 받아 이를 권노갑 의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권노갑 의원은 1993년 3월경 정태수 씨로부터 1992년 정기국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한보그룹과 관련된 의원들의 질의가 제기된 바 있어 앞으로도 같은 내용의 질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잘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대가로 현금 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1993년 12월경 같은 명목으로 현금 5000만원을 받고 다시 1996년 3월경 정태수 씨로부터 199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들의 한보철강 등 한보그룹 계열사에 대한 금융기관 대출·담보현황 자료제출 요구 및 정책질의를 무마해 주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에도 선처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000만원을 받았습니다.

 

1996년 10월 경 정태수 씨로부터 정재철 의원을 통하여 1996년도 국정감사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국회의원들의 한보그룹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 및 질의 등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그 대가로 현금 1억원을 받는 등 모두 2억 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하였습니다.

 

김우석 전 내무부장관은 1994년 9월경 정태수 씨로부터 당진제철소와 34번 국도를 연결하는 해안도로에 대한 예산을 조속히 배정함과 아울러 건설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를 (주)한보가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달라는 청탁과 함께 그 대가로 현금 1억원을 받고 그해 11월경 같은 명목으로 또 현금 1억원을 받는 등 2억원의 뇌물을 수수하였습니다.”

 

정치금융 피해 결국 국민의 몫으로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출외압의 배후 실세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검찰은 부당대출압력의 핵심인물로 신한국당의 홍인길(洪仁吉) 의원을 지목하여 구속했다. 홍의원은 문민정부 초기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냈던 상도동 가신그룹의 한 사람. 홍의원은 1996년 2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산업은행 김시형 총재, 제일은행 이철수 행장, 외환은행 장명선 행장에게 시설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홍인길 의원은 구속되기 전 자신은 깃털에 불과하다는 ‘깃털론’을 제기하며 울분을 토로하여 “그럼 ‘몸체’는 누구인가”라는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홍 의원과 함께 구속된 신한국당 정재철의원, 국민회의 권노갑 의원 등 정치인들은 정치공세로부터 보호해달라는 정총회장의 요청과 역시 뇌물을 받았었다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들 외에도 검찰이 한보그룹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와 자체 정보수집 등을 통해 확보한 ‘한보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숫자는 대략 30명선이라고 했다.

 

항간에 나돈 ‘100명 설’, ‘50명 설’ 등 갖은 소문은 나돌았지만. 그러나 이들의 30명의 뇌물수수액수가 수천 만원 정도였다니 모두 합하더라도 30억원은 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1000억원의 비자금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비자금 수천 억원을 왜 밝혀내지 못하였을까. 박광태 의원의 발언을 더 들어보자.

 

“검찰은 지난 19일 한보사태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 27일 수사에 착수한 지 불과 24일 만에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러나 PK검찰은 어떠한 의혹도 밝히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분노와 허탈감만 증폭시켰습니다. 이번 한보사건의 검찰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깃털 몇 개만 그려놓고 이것이 거제도 갈매기라고 우겨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모두 깃털에 불과합니다. 누가 어떻게 압력을 넣어 가지고 5조 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거액을 대출하게 됐는가를 수사하지 않고 깃털 몇 개만 뽑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누가 몸통이냐, 몸통을 왜 밝히지 않느냐 이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몸통이 김현철 씨라고 우리 국민들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개인이나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5조 7000억원이라는 이 엄청난 돈을, 그것도 부실한 기업에 누가 감히 대출해 줄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은행장이, 은행감독원장이, 그 사람들이 그 능력과 배짱과 책임성이 있습니까? 청와대가 아니면 누가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삼척동자가 생각하더라도 답이 다 나와 있는데 왜 안 밝히느냐 이 말이에요. 솔직하게 밝혀야 합니다.”

 

2월 21일 고소인 자격으로 출두하였던 김현철 씨에 대하여 검찰은 26시간 수사 끝에 무혐의로 귀가시키고, 김영삼 대통령은 2월 25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한보사건에 대한 사과를 하였다. 말로만 사과하고 또 용서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치금융으로 멍든 은행부실을 국민이 모두 떠안게 되었는데.

 

[2016년 7월부터 연재된 한국경제 비화가 이번호를 끝으로 완결됩니다. 그동안 한국경제 비화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좋은 글 써주신 이국영님께도 감사 인사 전합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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