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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한국경제 비화 ㊷]이철희·장영자 사건<上>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사채시장의 큰 손 장영자의 등장

 

1981년 2월경.

이철희(李哲熙, 59세) 씨와 장영자(張玲子, 38세) 씨 부부는 대화산업(大和産業)을 설립하고 사무실을 롯데호텔 18층에 차렸다. 대표는 장영자 씨.

 

장 여인은 처음 공영토건(共榮土建)에 접근했다. 공영은 부도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사채시장에서 조달하는 처지였다.

 

공영토건은 대화산업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거액을 차용해 준다기에 그 차용자금에 해당하는 어음을 주는 것은 물론, 견질 담보로써 몇 장의 백지어음도 건넸다.

 

유리한 조건이란 차입한도 100~200억원, 금리 연 20~22%, 기간 2년 거치 3년 분할상환.

 

당시 사채시장에서는 A급어음이 월 2.2~2.4%, B급이 월 2.5~2.8%, C급은 2.9~3.2%로 할인(와리깡)되고 있었으니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어서 일신제강, 라이프, 삼익주택, 태양금속, 해태제과에도 손을 뻗쳤다.

 

장 여인은 이 회사들로부터 어음을 받고 576억원을 사채로 꿔주고, 추가로 어음용지를 담보로 받아내 이 돈의 4~5배에 달하는 2223억원을 어음으로 만들어 사채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했다.

 

처음에는 사채시장에서 할인, 결제, 할인 등의 방법으로 어음유통을 반복하다가 장부도 없이 거래된 어음금액의 규모가 방대해지고, 따라서 만기가 도래하는 어음의 결제자금, 할인이자와 비정상적인 증권거래로 인한 손실액 등이 누증되어 이를 결제할 능력을 상실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기업으로부터 받은 어음을 지급기일에 지급하거나, 약속대로 견질 어음을 담보로만 보관할 목적이 아닌 갖가지 수법을 동원하여 각 기업으로부터 어음용지를 받아 냈다.

 

견질 어음용지를 강탈당하다시피 제공한 변강우(邊康雨) 공영토건사장은 모 기자와 인터뷰하는 과장에서, ‘울며 겨자먹기’라는 표현이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장 여인이 거액을 굴려간 사채시장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하경제의 현장이다.

 

임자가 드러나지 않는 돈, 다시 말해 얼굴 없는 전주들이 굴리는 사채시장의 규모는 줄잡아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당시 추산이었다. 그 액수는 당시 총통화 16조원의 6%, 4조원 가량의 통화량에 비해 4분의 1 규모에 달하는 엄청난 것이다.

 

즉, 전체통화량의 25%에 달하는 자금이 세금도 없이 경제활동의 현장을 굴러다닌다는 것이다.

 

당시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하금융이라는 사채는 점조직에 의해서 자금이 거래되고 있어 전주와는 만날 수 없다. 다만 사채가 필요하면 간첩 접선하듯 브로커와 만나 자금수혈을 받게 된다.

 

사채는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 두면의 얼굴을 가진 필요악(必要惡)이라고 하지만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사채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의 젖줄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업은 고율의 사채비용을 제조원가에 전가하므로 국민 전체가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전주(錢主)의 이자소득은 포착되지 않으니 과세되지 않는다.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은 C급으로도 받아 주지 않는다. 장 여인은 이 어음을 신인도가 높은 라이프와 같은 회사의 어음과 맞바꾸어 사채시장에 유통시켰다.

 

이철희·장영자 부부 외환관리법위반으로 구속

 

1982년 5월 6일.

주식시장은 오전 장부터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하종가들이 무더기로 속출하는 가운데 심각한 투매현상까지 벌어진 것이다.

 

‘제2의 증권파도’라는 소리가 삽시간에 증시주변을 뒤덮었다. 이유인 즉 그 동안 증시를 지배해 오던 큰 손들에게 심상찮은 이상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채시장이 갑작스레 꽁꽁 얼어붙고 있다는 것이다.

 

이튿날 7일 루머는 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검찰청 중수부 성민경 부장검사는 전직 국회의원이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이철희 씨와 그의 처 장영자 부부를 외환관리법위반으로 5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1979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암달러상(일명 하마아줌마)으로부터 미화 40만 달러와 일화 800만원을 사들여 서울 강남구 청담동 2구역 58의2 자택 캐비닛 속에 감춰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 부부는 2월 미국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센트럴 프라자호텔에서 재미교포 문왕산 씨로부터 미화 40만 달러를 건네받아 미국은행에 예금해둔 혐의도 아울러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2월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페어필드 맥스웰 회사와 합작으로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문 씨로부터 이 돈을 받았는데 지난 3월 26일 귀국해 문 씨의 어머니 서향련 씨에게 미국에서 받았던 40만 달러를 갚는 방법으로 원화 3억 2000만원을 대상 지급했다는 것이다.”

 

일반에게는 생소한 일들이라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증시주변은 검찰 발표에 ‘바로 그들’이라며 술렁거렸다.

 

“외환관리법 위반이요? 천만에 말씀, 두고 보시오. 검찰이 적당히 얼버무리려면 모를까 제대로 수사를 한다면 분명히 우리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 엄청난 사건으로 비화될 거요. 저 사람들은 작년부터 갑자기 부상된 큰 손인데 증권시장과 사채시장을 넘나들며 마음대로 주물러 왔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조짐이 심상찮습니다.”

 

증권가는 루머도 진실도 난무하는 정보현장이다.

하루하루 일파만파로 확대되어갔다. 장 여인이 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李圭光)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이들이 움직였던 자금이 수천억대에 이른다는 것이니 그 충격은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서슬 퍼런 공포정치 속에 너도나도 입조심이 몸에 배어 있을 터였으나 사건의 규모나 내용이 워낙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던 지라 정부로서도 쉬쉬하며 덮고 지나갈 순 없었다.

 

눈치를 보던 언론들은 이 사건의 배후를 경쟁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그 동안 쌓여왔던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적인 반감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5공 정권의 최대위기였다. 당황한 정부는 검찰로 하여금 중간발표까지 시켜가며 ‘이 사건은 단순한 어음사기 사건이며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이나 정치적 배후는 전혀 없음’을 강조하는데 급급했으나 가속적으로 흉흉해지는 민심을 무마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월 13일 국회 재무위에서 조병봉(趙柄鳳)위원의 발언.

“이 사건은 1979년 말부터 사채시장 등 금융전반을 교란시키면서 그 거래규모에 있어 총통화의 6.6%에 해당하는 2600억원대에 달했다는 사실은 단순히 본위원회에서 심의 처리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조사권발동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당총무를 통해서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 주범인 장 여인 부부는 물론, 이 사건과 관련한 기업, 사채전주, 그리고 정치권력의 작용과 정치자금유입설 등 철저히 따지고 용도불명의 77억원과 어음 2624억원의 취득경위, 시중에 유포되고 있는 어음 1476억원의 행방을 조사 규명해야 국민적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국정조사권을 발동, 필요한 증인, 참고인들을 출석시켜 절대적 필요성을 확인하여야 할 것 입니다.”

 

이 발언에서 보듯이 이·장사건은 대통령의 친인척 관련 비리로 보기보다는 1962년 5월 증권파동과 민주공화당 창당자금 유입설이 망령처럼 되살아나듯, 사채시장에서 조달된 자금이 민주정의당 창당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유언비어도 항간에 유포되었다.

 

그리고 권력의 핵심이었던 허 씨들과 민정당의 실력자 권정달(權正達) 사이의 파워게임으로 말미암아 불거진 사건이라는 꼬리까지 달렸다.

 

이 사건에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얼마나 개입되어 있었으며, 또한 여당의 정치자금줄과 어떻게 연계됐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사채시장에서 할인하여 조달한 자금의 행방을 밝히는데 수사력과 감독기관의 검사권이 총동원되었다.

 

어음할인이자 539억원, 예금유치비용 87억원, 증권투자손실 377억원, 현금과 주식 33억원, 다이아몬드 등 귀금속, 청자, 골동품, 워커힐별장 8만평, 부동산 300만평 등 320억원, 외화 15억원으로 치고도 77억원이 불분명했다.

 

주식투자에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는 대목에서는 국민은 의심을 풀지 못한다. 장 여인은 거래과정에서 상당량의 주식을 사주겠다는 조건으로 기업체에서 받은 어음을 주식원매자에게 담보로 제공했다.

 

그 후 선수금을 받아 기업어음 취득에 활용하다가 주식인도기일이 되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손해를 보고도 주식을 매입하여 인도하는 등의 방법도 되풀이하였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이·장이 사사건건 자신들의 배경에 막강한 후견인이 버티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장 여인 자신이 웬만한 남자는 뺨칠 정도의 대담한 수법으로 대통령과의 특수관계를 십분 활용했으며, 당시의 사회분위기 또한 이 같은 특수관계를 슬쩍 비치기만 해도 앞을 다투어 대우를 해주는 풍토였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권력형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줬던 셈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이·장의 주변인물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부실을 초래한 조흥은행과 상업은행의 두 은행장에게까지 형사책임을 묻는 쪽으로 분위기가 경화되어 나갔다. 검찰이 이처럼 강경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유독 대통령의 친인척 및 정치권과의 관련 부문은 단호히 부인했다.

 

관심의 초점이던 이규광 씨 부분에 대해서 ‘이들이 이규광 씨가 봐주는 것처럼 이름을 팔고 다녔을 뿐이지 실제로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찌 보면 당시 검찰의 태도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 못지않게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 주변이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국민으로 하여금 믿게 하느냐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중간발표는 시중의 의혹을 삭혀주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켜 나갔다.

 

검찰은 당초 외환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했을 때보다는 훨씬 진전된 내용을 중간발표로 밝혔으나 이·장이 굴렸다는 자금의 규모나 이 돈의 사용처 등을 규명하는 데는 의심스런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검찰은 강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었다.

 

5월 17일 임재수 조흥은행장, 공덕종(孔德鍾) 상업은행장, 변강우(邊康雨) 공영토건사장, 주창균(朱昌均) 일신제강회장 등을 포함해 15명을 구속한데 이어 이튿날에는 결코 관련이 없다던 이규광(李圭光) 마저 구속해 버렸다.

 

다시 말해 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고조되면서 강경한 검찰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당시 실세의 핵이었던 허 씨들의 주도에 의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청와대 안에서도 친인 척관련 문제를 놓고 난처한 입장에 빠졌지요. 그러나 허화평(許和平), 허삼수(許三守) 두 사람의 강경한 주장이 먹혀들면서 결국 이규광 씨까지 구속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잡아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감히 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허 씨들뿐이었고, 검찰을 포함한 권력의 주요한 길목에도 이들의 장악 하에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이것이 대통령과의 사이가 갈라져 자신들이 쫓겨나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은 짐작도 못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당시의 집권층이 불시에 터진 이·장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려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었다.

 

요컨대 대통령에게 흙탕물이 튈까봐 웬만하면 사건 자체를 얼버무리려 했다가, 워낙 심하게 여론이 들고 일어나는 과정에서 소위 개혁주도의 핵심이었던 허 씨들이 나서서 대통령의 처삼촌까지 구속하는 사태로 번졌던 것이다. 이처럼 검찰의 수사가 여론을 감안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한결 톤이 높아졌던 것은 사실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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