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때문에 평생 가업을, 평생 재산을 잃는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논의가 올초 급속도로 번지면서 상속세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금은 공익 목적에서 걷지만,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 합의는 단순히 다수가 동의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성을 기준으로 해당 국가의 상황에 맞추어 논의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상속세가 우리 조세체계에서 어떻게 운영되는 지 보려면 전체 조세체계를 뜯어봐야 한다.
우선 국가재정은 크게 세금과 4대 보험금처럼 사회보장기여금으로 구성된다. 이 둘을 합친 것을 국민부담률이라고 하는데, 이 부담률이 높으면 클수록 국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경국가로 대표되는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작았지만, 현대 복지국가 체계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크고, 그 역할이 클수록 국민부담률 역시 높다.
2014년 기준 OECD 35개 국가의 GDP 대비 평균 국민부담률은 34.2%로 한국은 24.6%로 35개국 중 33위에 불과하다. 일분은 32.0%이며, 미국은 25.9%다.
이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OECD 국가들에서 GDP 내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조세부담률)은 25.1%, 사회보장기여금은 9.1%인데, 한국은 세금 비중 18.5%, 사회보장기여금은 6.1%에 불과하다.
OECD 주요국가 중 상대적으로 세금이 낮은 일본의 조세부담률은 19.3%, 미국은 19.7%로 한국보다 높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한국은 세금도 적게 걷고, 정부의 기여도도 낮다는 의미다.
한국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낮은 이유는 개인소득세 때문이다.
GDP 대비 소득세수는 OECD 평균 8.4%지만, 한국은 4.0%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보다 더 낮은 나라는 체코, 멕시코, 슬로바키아, 칠레 수준인데, 미국은 10.2%, 일본은 6.1%에 달한다.
한국은 공제를 제외하고 세율로만 치면 OECD 국가 중 꽤 높은 국가에 속하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낮아 큰 의미가 없다.
OECD 주요국가들의 GDP 대비 상속세 비중은 벨기에가 0.7%로 가장 높고, 프랑스 0.5%, 일본 0.4%, 스페인, 한국이 0.3%였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덴마크, 독일, 핀란드, 아일랜드, 영국, 스위스가 0.2%, 노르웨이, 미국이 0.1% 정도다.
한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세율이 높지만, 공제가 많기 때문에 상속세를 가지고 호들갑 떨 수준은 아니다.
OECD 회원국의 각 세목별 세수비중을 보면 상황은 우리 조세체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아래의 표는 한국의 전체 세금 수입에서 직접세인 개인소득세, 상속세·증여세, 기타 재산세의 비중을 OECD 평균과 비교한 것이다.
구분 |
한국 |
일본 |
OECD |
OECD 상위 5개국 |
OECD 하위 5개국 |
||
개인소득세 |
22.3% |
31.3% |
32.0% |
덴마크 미국 핀란드 캐나다 독일 |
54.1% 54.7% 43.0% 42.8% 42.6% |
칠레 슬로바키아 체코 터키 헝가리 |
7.8% 16.9% 19.2% 20.6% 20.6% |
상속세·증여세 |
1.7% |
2.0% |
0.5% |
벨기에 일본 한국 프랑스 스페인 |
2.3% 2.0% 1.7% 1.7% 1.2% |
슬로바키아 스웨덴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캐나다 |
0.0% 0.0% 0.0% 0.0% 0.0% |
재산세 |
4.4% |
10.6% |
5.3% |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이스라엘 |
13.6% 13.0% 11.8% 10.6% 10.0% |
오스트리아 체코 에스토니아 터키 멕시코 |
1.1% 1.2% 1.4% 1.4% 1.8% |
총합 |
28.4% |
43.9% |
37.8% |
- |
- |
이 표를 보면, 국내가 개인에 대한 직접세가 OECD 평균은 물론 우리와 경제여건이 비슷한 일본보다 훨씬 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직접세란 개인 소득과 재산의 크기에 맞춰 내는 세금으로 더 벌고, 더 가진 부자가 더 내고, 빈자는 덜 낸다. 응능원칙은 조세형평성을 구성하는 전 국가적인 조세원칙이다. 반면 부가가치세, 담뱃세 등 간접세는 빈자와 부자와 무관하게 거래에 따라 내는 세금이다.
한국은 상속증여세가 OECD 국가들보다 1.2%포인트 정도 더 걷지만, 개인소득세는 9.7%포인트, 재산세는 0.9%포인트나 더 낮다.
유산세인 재산세와 상속증여세 비중을 합치면, 한국은 OECD 평균과 거의 같아지지만, 압도적인 개인소득세에서의 격차는 채우는 정도는 아니다.
OECD 주요국가 중 우리보다 GDP 상속세 비중이 낮은 국가 중 개인소득세를 적게 걷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이들 국가들의 전세 세수 대비 개인소득세 비중은 덴마크 54.1%, 미국 51.7%, 독일 42.6%, 핀란드 43.0%, 스위스 41.2%, 노르웨이 34.1%, 네덜란드 31.0%, 영국 33.7% 등이다. 한국은 22.3%다.
유산세인 재산세와 상속증여세를 합친 비중은 한국은 6.1%인데 미국(14.3%), 영국(12.6%), 스위스(7.7%)는 우리보다 높았다.
우리보다 유산세 비중이 작은 네덜란드(5.3%), 노르웨이(3.4%), 덴마크(3.2%), 독일(2.8%)의 개인소득세와 유산세 비중(개인 직접세 부담률)의 합은 네덜란드 36.3%, 노르웨이 37.5%, 덴마크 57.3%, 독일 45.4%였다.
한국보다 상속세 부담이 낮은 OECD 주요국 중 개인 직접세 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네덜란드지만, 한국의 28.4%보다 7.9%포인트 높았다.
개인에 대한 낮은 조세부담률은 그다지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개인소득세와 재산세, 상속증여세는 부자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다.
이들의 비중이 낮다는 건 한국의 부자들은 OECD 국가들에 비해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셈이 된다.
상속세는 상속재산 최소 10억원 이상의 자산가들이 내는 세금으로 이들의 세금을 깎아주거나 폐지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에게 돌아간다. 국가의 기여도도 낮아지면, 복지 등 정부 재정에도 제동이 걸린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현재의 소복지에서 중복지가 되려면, 세금부담도 소부담에서 중부담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용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팀장은 “한국의 상속세가 높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 있지만, 개인소득세를 비교해보면 한국의 개인소득세 등 조세부담률은 턱없이 낮다”며 “대신 개인소득세나 재산세를 올린다면, 상속세 폐지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지만, 아무런 조정 없이 상속세를 폐지한다면 조세형평성이 깨진다”라고 전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