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해 수십조원의 정부 재정적자가 실종됐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60조원 밑으로 추락이 불가피했었다. -56.4조원이나 세금 수입이 줄어들었고, -10조원 이상 추가지출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36.8조원 선에서 재정적자 방어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나라살림을 잘해서가 아니라 빚 돌려막기, 쓸 돈 미루기, 줘야 할 돈 안 주기 등 꼼수와 갑질로 결산을 분칠한 결과였다. 무너진 재정 성적표에 정부는 눈속임에만 치중했다.
◇ 현상. 상식을 벗어난 재정 성적표
2022년 말 정부와 국회는 나라 경기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해 2023년에는 -13.1조원 적자를 보더라도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해 -56.4조원 세금펑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뒤틀렸다. 실제 최종 재정적자도 –51.8조원에 달했다.
예상 추가지출 -13.1조원에 재정적자 -51.8조원을 더하면 지난해 통합재정적자는 적어도 60조원이 넘어야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지난 4월 11일 의결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재정적자는 -36.8조원에 불과했다.
정부가 예산계획을 짜긴 하지만, 헌법상 국회 허가 없이 멋대로 예산을 늘리거나 줄일 수 없다.
현 정부는 예산계획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60.0조원 이상의 적자를 –36.8조원으로 줄였다.
그러면서 재정관료 출신의 국무총리 입을 빌려 건전재정을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신묘한 묘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면 모두에게 박수받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은 우악스럽고 단순한 분칠과 갑질에 불과했다.
◇ 꼼수 1. 빚 돌려막기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 4월 12일 공개한 ‘23년 결산, 통계상 재정수지 적자가 가린 3가지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통계적 착시와 원칙에서 벗어난 재정 운용을 통해 적자 규모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이 지적한 첫 번째 수법은 빚 돌려막기였다.
정부 나라살림 성적표(회계연도 국가결산)는 실제 학교 성적표처럼 교과목별 점수를 더해 총점을 뽑는다. 각 교과목은 정부의 각 지출영역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은 일부 교과목들은 재정 성적표에 넣지 않는다.
건강보험, 외환평형기금,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이 대표적인데 다른 나라들은 이것도 재정 성적표에 포함한다. 이 돈도 나라에서 관리하는 돈 들이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주요국들은 국어‧영어‧수학 외에도 사회과학탐구와 예체능 및 제2외국어 점수는 모두 더해 총점을 뽑는데 한국은 국‧영‧수로만 총점을 매기는 식이다.
한국 정부의 국‧영‧수(2023년 정부 예산)는 638.7조원이었다. 만일 한국도 주요국처럼 집계한다고 할 경우 지난해 정부 총지출은 약 850조원으로 추산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연간 지출 규모는 GDP의 38% 정도다.
나만의 스타일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것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원칙을 유지했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9월 거의 60조에 육박하는 세금펑크가 현실화하자 공공자금관리기금 여윳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세금이 줄어서 현금은 없고, 한국은행에서 단기로 꾸는 돈도 한도가 찼으니, 기금 쪽 여윳돈으로 급전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이것도 미봉책인 게 공공자금관리기금도 그냥 꺼내 쓰는 돈이 아니라 이것도 빌려서 써야 한다. 빌린 돈을 못 갚으면 고스란히 재정성적표에 적자로 기록된다.
지난해 정부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돈을 갚겠다며, 외환평형기금 20조원을 끌어다 공공자금관리기금 쪽 빚을 갚았다. 외환평형기금은 정부 재정성적표 밖의 과목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부의 수법은 국‧영‧수 점수가 나오지 않자 사회과학탐구 쪽 점수를 슬그머니 총점에 포함한 꼴이다. 명백히 옐로카드를 받을 만한 행위였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외평기금에 존재하는 여유재원을 공자기금에 상환한 것은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자금을 왼쪽 주머니로 옮기는’ 내부거래에 불과”라며 “국채발행 규모가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거래 구조를 이용한 통계적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 꼼수 2. 쓸 돈 미루기 갑질
정부 예산은 지출 시기가 정해져 있다.
나랏돈을 쓰다 보면 12월까지 다 쓰지 못하고, 다음 해 1, 2월로 지연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이 국가결산보고서로부터 집계한 ‘11년~23년 불용액 및 불용률’에 따르면, 2011~2016년 미지출 규모는 연간 총예산의 3.7% 정도였지만, 최근 6년 동안에는 1~2%까지 관리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미지출 규모는 무려 예산 대비 8.5%(45.7조원)에 달했다.
과거에 비해 적게는 4배, 많게는 7배에 달하는 비정상적 수치였다.
이는 과거의 미지출은 물론 예산 원칙에서도 벗어나는 행위였다.
정부의 내수 씀씀이는 수백조원에 달하며, 정부 지출 계획이 틀어지면 민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각 기관이 예산을 쥐고 있지 않고 빨리 쓰라고 재촉해왔다.
또한, 예산을 빨리 쓰는 기관에 높은 기관평가 점수를 줬다. 높은 점수를 받은 기관은 다음 예산을 타갈 때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선다.
이렇게 재촉하는 게 조기 집행률이다.
정부는 2022년 12월 21일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전체 예산 638.7조원 가운데 65%를 반년 만에 다 써서 민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공언했다. 조기집행률 65%는 역대 최대급 목표였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3월 법인세 수입이 박살나자 슬그머니 ‘더 쓰자’에서 ‘덜 쓰지 않을까’로 태도를 바꾸었다.
추경호 부총리(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는 예산의 자연스러운 불용을 언급했다. 쓰겠다는 돈을 안 쓰겠다는 것은 아닌데, 살다 보면 돈을 좀 나중에 쓰는 경우가 좀 있지 않느냐는 뜻인데 예산구조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만한 압박이었다.
기재부는 민주주의 헌법 체계에서 예산을 결정할 권리가 하나도 없지만, 예산을 국회에 건의하는 소위 문고리 권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3~5월 예산 시즌이 되면 지자체장들은 완전히 ‘을’이 되어 ‘갑’인 기재부 예산실 문턱을 닳도록 오가며 예산 좀 달라고 손을 벌린다. 회사 각 사업부 부서장들이 연말이 되면 재경부서에 가서 내년도 사업예산 좀 달라고 손 벌리는 것과 똑같다.
이 와중에 기재부 장관이자 부총리라는 갑 중 갑이 지금 돈이 없는데 살다 보면 돈을 좀 늦게 쓸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인상을 주면 을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낫 놓고 기역 자였다.
그리고 2023년 5월 국회 기재위 현안 질의, 2023년 10월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 2024년 4월 11일 국가결산 보고서 발표까지 기재부 갑질에 대한 유력한 정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상민 수석전문위원은 “그런데 행정부는 원칙적으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심의하고 확정한 지출 규모에서 임의적으로 더 쓰거나 덜 써서는 안 된다”라며 “국회의 동의 없이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지출을 줄여서 불용을 늘리는 것은 근대국가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했다.
◇ 꼼수 3. 줄 돈 안 주고 배 째기 갑질
일단 예산이 결정되면 그 돈은 지자체(채권자) 돈이 되고, 기재부(채무자)는 돈을 줘야 하기에 한숨 돌릴 수는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장들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예산이 정해졌어도 언제 돈 줄지는 기재부가 정하기 때문이다. 이걸 예산배분권이라고 한다.
지자체는 명색은 채권자지만, 돈 안 준다고 기재부(채무자)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게, 내년에도 기재부에게 예산을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9월 예상 세금펑크 규모가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자 임의로 지자체에 23조원을 주지 않겠다고 하다가, 예상보다 정부 수입이 조금 더 들어오자 연말에 지자체에 3조원 가량을 내려보내 주긴 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예산보다 18.6조원을 안 줬다.
‘1년 예산이 638.7조원인데 18.6조원 정도 안 줄 수 있지’라고 혹자는 생각할 수 있으나,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는 국기 문란 행위이다.
일단 18.6조원이 고작이 아닌 게 원래 2023년 예산 계획상 총지출 증가율은 5.1%였다. 그런데 이 18.6조원 때문에 증가는커녕 –10.5% 감소했다. 최근 7년간 연평균 지출 증가율은 7%에 달했었다. 이는 국내 내수를 침체시키기에 충분한 돈이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2%보다 낮은 1.4%로 곤두박질쳤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헌정질서 위반이다.
예산은 국회가 결정하고, 정부는 집행할 의무가 있다.
국회의 예산편성권은 최상위 법률인 헌법 권한이고, 기재부 권한인 예산배분권은 헌법 하위에 있는 본법 권한이다. 법체계상 아랫물이 윗물을 거스를 수 없다.
지자체에 돈을 주지 않으려면 예산편성권을 가진 국회에 의결을 요청해야 하는데 기재부는 아무런 의결 없이 본법 권한인 예산배분권을 임의 해석해 18.6조원을 연내 지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에 발표한 세입세출마감결과 발표에서 이 돈을 ‘사실상 불용’이라고 표현했다.
오는 5월에 있는 감사원 감사는 넘길 수 있겠지만, 189석 거대 야권이 들어선 22대 국회 문턱을 넘을지는 미지수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세금 감소로 지자체 및 교육청 예산을 줄이려면 국회 의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라며 “그러나 정부는 임의로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세수 손실을 지방정부, 지방교육청에 일방적으로 떠넘겼다”라고 전했다.
◇ 해법. 법과 원칙
2023년 국가결산은 분칠과 갑질이 혼합된 왜곡된 회계장부였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우선 사회과학탐구 점수를 국‧영‧수 성적표에 섞지 못하도록 주요국들처럼 재정성적표를 낼 때 정부가 관리하는 모든 수입과 지출을 통합 관리할 것을 제시했다. 이는 IMF와 OECD 등에서 사용하는 국제기준이기도 하다.
지방정부에 지급해야 하는 내국세 연동 교부세‧교부금은 일단 예산안대로 주고, 더 준 돈을 다음연도와 다다음연도 예산으로 나누어 반영하는 것이 바르다고도 전했다. 이는 그간 기재부가 유지해온 원칙이기도 하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국회의 승인 없이 국회가 정한 예산 금액을 자의적으로 덜 쓰는 것은 근대국가의 기본을 위배한 것”이라며 “돈이 부족하거나 예산 계획을 바꾸려면 반드시 국회 예산심의를 받아야 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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