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대법원이 '고객이 직업을 속이고 사망보험을 든 사실을 보험사가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도 상법상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을 해지할 순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보험 계약을 맺을 때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 위반'일 수는 있지만, 가입 기간에 중요 사항이 바뀌었을 때 알려야 하는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의 유족 3명이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을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일용직 근무자였던 A씨는 2021년 7월 건설 현장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A씨와 배우자는 앞서 2009년, 2011년, 2016년 각각 피보험자를 A씨로 둔 사망보험 계약을 메리츠화재와 맺었다.
계약 체결 당시 이들은 A씨의 직업을 '사무원', '건설업종 대표',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 등으로 기재했다. 실제 직업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직업으로 속인 것이다.
A씨 사망 후 유족이 보험금을 청구하자 메리츠화재는 "상법에서 규정한 '통지의무'를 위반한 만큼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상법 652조는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된 사실을 안 경우 지체 없이 보험자에게 통지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통지의무를 규정한다.
이후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메리츠화재는 "A씨가 보험사에 안내한 직업과 다른 직종에 종사해 보험사고 위험이 커졌음에도 계약 체결 이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보험계약 기간 중 실제 직업이 변경되지 않았다면 보험사에 고지된 직업과 다르더라도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법 652조에서 통지의무 대상으로 규정한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는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것으로 한정된다고 보는 게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와 유족이 보험계약 당시 중요한 사항을 사실대로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 '고지의무'(상법 651조)를 위반했다고 볼 순 있다고 봤다.
다만 상법은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기한을 '부실 고지를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혹은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로 제한했고, A씨의 경우 이 기간이 지나 보험사의 해지권이 소멸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법원과 대법원은 이같은 1심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메리츠화재의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