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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 ②] 稅收에 찌들어도 웃고 뛰는 국세청사람들


(조세금융신문=김종규 기자) 세수는 50년 국세청의 얼굴이다. 1966년 국세청 개청 당시 700억 세수목표 초과달성 기록을 놓고 기적을 일구었다고 박수칠 만큼 감동시켰던 세수증대치가 2015년에 들어서서 약 3천배인 208조1천억 원을 기록했다.


가히 천문학적 증가수치인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금 한 푼마다 굽이굽이 서린 국세공무원의 애증(愛憎)이 그 얼마였을까! 겹겹이 쌓인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국세공무원들은 오직 특수전문 세무공복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먹으며 세정현장을 오늘도 뛰고 있다.


때로는 납세국민으로부터 송곳 같은 질타를 당하기도 했고 재정역군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비록 세수에 찌들지언정 미소를 잃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여기까지 달려 왔다.


나라 곳간과 운명을 같이 해온 국세행정은 진화하는 세원의 흐름과 적기과세 타이밍을 빼앗기면 큰 코 다치는 골든타임 행정이다. 세수의 모태격인 세원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세청 개청 목표 중 하나가 세수관리다. 때문에 국세수입증대는 필연이 됐고 증세현상은 급속도로 팽창했다.


1966년 국세청 소관 세입예산은 1965년 실적보다 21.1% 증가한 505억 원으로 잡혔다. 초대 이낙선 국세청장은 전년대비 66.5 증가한 700억 원을 달성, 전무후무한 업적을 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년대는 5년마다 세수가 무려 약 300%씩 늘어 드디어 1975년에는 1조 원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1995년 에는 50조 원, 2003년에는 100조 원, 2015년에는 208조1천억 원의 증가치를 보였다. 국세청은 행정력 미흡으로 사각지대에 버려진 세원, 숨은 세원 등 새로운 세원 발굴에 총력 투입했고 그 결과 개청초기 세수 이정표를 새롭게 쓰게 된 것이다.


60년대 후반에는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 같은 세제변화 없이 오로지 행정력만을 활용해서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행정 불패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게 특기할만한 사항으로 기록된다.


2015년에도 어려운 세입여건이었지만 사전성실신고 지원에 역량을 집중, 소관 세입예산을 2조1천9백46억 원을 초과한 208조1천억여 원의 세수를 달성, 국세청 소관 세수 200조 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는 임환수 21대 현 국세청장의 재임기간에 일군 세수 달성 지표로 새로운 세정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민정부에 와서 사라졌지만, 군사정권시절까지만 해도 청와대로부터 세수목표 달성 파티에 국세청 간부들이 초대되어 샴페인을 터트리고 환대받았던 적도 있는 국세청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현을 위한 세입증대는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이에 발맞춘 국세수입 증대 필요성 때문에 국세행정이 세수비상체제로 전환되게 됐다. 세수 제일주의가 국세행정에 접목됐고, 때문에 비정상세수인 이른바 조상징수(操上徵收)라는 ‘비상세수 걷어 들이기 작전’이 일선세무서 현장창구에 쉬쉬하며 중대과업으로 은밀하게 지시, 하달됐다.


이로 인해 과세권자의 재량권은 과세업무 집행과정에서 만연됐고 부실세수 실적이 정상세수 실적으로 둔갑하는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이른바 ‘대외비’ 사항이었던 조상징수 행정은 오정근 2대 청장 임기 중에도 계속 이어졌다.


국세청 간부회의가 있던 어느 날, 회의 도중에 갑자기 고함치는 소리가 회의장 밖으로 흘러 나왔다. “비정상 세수인 조상징수를 해서는 안 된다”라고 육사 8기생 출신인 김역수 본청 징세국장은 오정근 당시 청장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오 청장은 “서울. 중부청장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데, 왜 김 국장은 자꾸 딴소리를 하느냐”며 김 전 국장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지방청장이 없는 일이라는데 왜 야단들이냐”고 오 전 청장은 꾸중을 했고 강직한 성격의 김 전 국장은 서류를 내동댕이치며 “거짓말로 아부나 하는 자들 말만 믿고 불법을 눈감으려 하니 말이 됩니까?”라고 소리치며 항거, 상명하복 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끝내, 조상징수 사실여부를 놓고 설전(舌戰)이 벌어졌고 이 사건이 있은 후 김 전 국장은 1973년 1월경에 국세청기술연구소(현 국세청주류면허지원센터)로 좌천, 하향 전보되고 말았다. 고재일 3대 청장 부임 후 73년 6월경에 서울청장으로 복권(?)형식의 영전인사로 명예회복을 한 셈이 됐다.

 

간접세에서 손대기가 쉬웠던 선납방식인 조상징수 업무 특성 탓에 영등포세무서 관내 오비맥주와 크라운맥주 회사가 적지 않은 선납압박을 받는 등 납세자 불만이 급증

했다는 비화가 새롭기만 하다. 주세담당 계장 백그라운드가 자그마치 국회의원이라는 얘기가 돌아다녔다. 때문에 영등포서 주세담당 계장 자리는 국세청장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는 인사뒷담화가 무성했다. 낙하산 인사 병폐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 한 단면이다.

 

납세자가 세금 납부서나 고지서를 지참하고 국고수납기관에 납부하는 게 원칙인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1962년경만 해도 지방벽지에서 국고수납기관인 우체국이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예 없어서, 징수한 세금을 당일 입금시키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가는 분임징수관(당시 지역담당직원)이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오정근 전 청장과 김역수 본청 징세국장 조상징수(操上徵收) 사실여부 놓고 舌戰…김 국장, 결국 좌천인사 당해

 

“여보, 세무서에 다니는 옆집 아저씨는 돈 자루를 매일 집으로 가져온대요.” “돈 자루를 매일 가져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세무서 직원이 나랏돈인 세금을 집으로 가져오다니, 말도 안 돼.” “정말이라니까. 내가 몇 번이나 봤는데…. 당신은 뭐하는 거야?”  그 당시 세무서 분임징수관의 위치나 역할을 알 리 없는 순진한 아줌마가 남편의 무능함을 돈으로 따지려는 그 모습이 당시의 세태를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 당시 45.8%에 불과했던 금융기관 수납률이 1976년에는 90%를 상회, 점차 정상화를 이뤄나갔다는 정부의 통계가 자못 반갑다.


세수확보 문제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세수고지 점령’이라는 군사용어까지 등장했을까 싶다. 때문에 70년대는 조상징수 등 일부 비정상 세수업무가 판을 쳤는데, 1973년 고재일 3대 국세청장 부임을 계기로 ‘부실세수 확인반’을 파견, 변칙 세수발생 예방에 돌입하게 된다.


1972년 당시 전체 세수규모가 3천1백43억 원인데 비해 조상징수 규모는 적잖게 6백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무리한 재정수입 확보에 국세행정을 맞추다보니, 마치 조상징수 세수업무가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고 전 청장은 조상징수한 세금을 ‘주름살 세수’라고 이름붙이고 이른바 ‘주름살 세수 펴기 작전’에 돌입하여 전년도 조상징수분을 말끔히 정리, 세수행정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행정수완을 발휘, 각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60~70년대는 국세행정 50년 사상 가장 과세권자의 재량권이 난무했던 시기였다고 기억된다. 근거과세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인정과세 즉, 세무공무원의 재량에 의한 추계과세가 만연된 과세환경이다 보니, 항상 납세자의 조세저항이 될 아슬아슬한 뇌관 같은 위험요소를 안고 갈 수 밖에 없었던 세무행정 환경이 연속되어 왔다. 재량권 남용은 세무부정을 불러오는 주범이 됐고 이에 따른 부작용은 다발적으로 생겨났다. 어느 날 사정당국이 불시에 모 세무서를 덮쳤다. 깜짝 놀란 세무서 직원들은 사방팔방으로 줄행랑을 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세무서 업무가 마비되자, 이낙선 초대 청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 자기 책임 아래 세무공무원의 부정을 척결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큰 무리 없이 사태수습을 해결하게 됐다. 용기 있는 청장의 리더십 덕분에 세무공무원의 사기를 북돋우는데 큰 힘이 됐다는 실화는 얇고 번지르르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기만 하다.


국세청의 세수증대 노력은 세제의 합리적 개편을 비롯 국세행정 전 분야의 체계적 발전과 과표 양성화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부가가치세제 도입, 금융소득 종합과세 실시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법령정비와 맞물린 국세행정사의 일대 혁신적 사건들이 세수증대 효자의 한 축으로 역할을 다 했다 하겠다.


이 뿐만 아니다. ▲수출촉진을 위한 영세율제도 ▲세금계산서수수를 통한 탈세예방과 근거과세 실현 ▲신용카드 매출자료를 국세청에 통보케 해서 과표 양성화와 성실신고 검증유도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도 그 역할 중의 하나다. 1997년 국세통합시스템(TIS)을 개통하고 전국 세무서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실시간 연결하는 인프라를 마련했다. 또 각종 과세자료, 조사 진행 결정사항 등 세원정보가 전산화되면서 과세자료 투명성 확보, 업무연계성 증대를 꾀하게 됐고 근거과세 기틀마련에 초석을 다지게 됐다.


세무서 분임징수관 돈 자루 들고 집으로 퇴근지방벽지 근무 직원들당일 국고수납 못해 벌어진 해프닝


특히 2015년 2월 23일 대망의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NTIS:Neo Tax Integrated System)개통은 50년 국세행정의 쾌거이자 대혁신의 반석을 쌓아올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장 5년여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시킨 성실신고 환경 제공을 확인시킨 21대 임환수 현 국세청장의 대작이다. 정보화, 과학화로 발전하는 국세청 전산시스템의 핵심지원은 국세청의 세수증대 노력에 힘을 한껏 보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의 세정여건은 고도의 경제성장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로 세수기반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고, 또 생산 가능인구 감소, 기업투자부진, 생산성 저하 등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떨어져 세수증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하는 지금의 조세환경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납세순응도 제고에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과세 인프라를 확충하여 세원투명성을 좀더 확보함으로써 자발적 성실납세를 뒷받침하는 국세행정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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