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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 ⑭] ‘국세청 시녀 (侍女) ’의 틀, 세무대리인이 깨다

여러가지 세수 확보 대책 가운데 세무대리인 역할이 눈에 띈다.

 

1961년 도입된 세무사법 제정이 바로 그 의미를 안고 있다. ‘세무행정의 원활과 납세의무의 적정한 이행을 다지기 위해서’라는 입법 취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무대리인 단체를 국세청의 보조기관이나 시녀(侍女)처럼 관리해온 행정관례가 그 당시의 시류였다. 곧잘 국세당국은 그들을 동반자 관계라고 치켜세우기도 했지만, 때로는 조력자라는 다소 아래로 내려다 보는 듯한 뒷자리 위치에 놓는 사례 또한 드물지 않았다.

 

세무대리권 행사를 둘러싼 갑론을박 논쟁도 모자라, 국세당국이 더러는 권위적이고 관료적 표현을 쓰곤 했기에 말이다.

 

국세당국과 납세자 중간위치에 서서 교량역할이라는 손발 맞추기가 세무대리인 입장에서는 그리 흡족하지 못했으리라는 판단이 되짚어지는 대목이다.

 

1983년대 말 신고납부제도가 무르익을 무렵 난데없이 세무대리종합관리규정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세무대리인들의 수임관련 활동영역 위축에 결정적 악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성실신고확인제도 도입으로 부실세무대리인 처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제도권에서는 징계수위 망을 바싹 조이고 있는 형국이다.

 

15만 여명의 성실신고확인 대상 개인납세자는 물론이고 확인자인 세무대리인들의 볼멘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치닫고 있는 이유다.

 

 

1983년 말 780여 명의 세무사 불성실자로 낙인 찍혀
국세당국이나 납세기업으로부터 불명예스런 흠집 남겨
1980년대 중반 정부정책이 민간주도형으로 전환되고 있을 때다. 국세청은 광범위한 세무조사 악순환의 흐름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하고 당찬 계획을 세웠다. ‘자율적 신고납부 위주의 세정 적극 추진’이 바로 그 계획의 뼈대다. 우선 세무조사의 범위를 축소했는데, 되레 불성실신고를 조장할 우려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직전기 등 과거 과세상황 분석을 면밀히 검토, 그 자료를 바탕으로 신고지도를 함으로써 자진 신고 납부의 성실도를 끌어올려 나갔다. 부과과세제도를 실시했던 소득세의 경우 전부조사가 원칙이었다. 그러나 실지조사를 면제하고 서면조사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세정 자율화라는 획기 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안무혁 5대 청장 재임기간 중에 일군 업적 중의 하나다.


특히 1985년에는 부가가치세 신고 일괄신고접수제도를 도입해서 세무대리인에 의한 대리접수와 일괄접수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납세자가 직접 세무서를 찾아가지 않아도 신고를 마칠 수 있게 한 것이다. 부조리를 차단시킬 뿐만 아니라 신고납부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낸 비상대책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1983년 말, 안 청장 시절, 세무대리종합관리규정에 따른 평정 결과, 무려 780여명의 세무사들이 불성실자로 낙인찍히는 수모를 겪는다. 탄생의 아픔이라고 미화할 수 있다면 퍽 바람직한 일이지만 일단 국세당국이나 납세기업으로부터 불신추락·불명예스런 흠집으로 남게 된 것은 분명하다.


세무사법 제정 당시만 해도 세무대리업무가 세무신고 신청·청구·이의신청의 대리 및 상담이 고작이었다. 이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만끽한 전문업계도 흔치 않다. 이는 조세법의 제도발전에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1969년 7월 녹색신고제도의 법제화에 따라 세무대리인은 신고자에 대한 조정계산서 작성에도 참여하게 된다.

 

1975년 종합소득세제도 도입, 1980년 법인세의 신고납세제 전환 등은 세무대리인의 업역 확대로 평가되고 있다. 1996년 종합소득세가 신고납세제로 전환됨에 따라 납세자의 의견진술대리권이 성실신고확인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 추가되게 된다.


행정력의 한계 납세협력단체 지원 통해 해결 ‘묘수’ 짜내
편의증진·원활한 세무행정 ‘두 마리 토끼’ 잡는 특급전략 세워
세무관서의 조사 등과 관련된 진술권이 추가되다보니 권한과 책임이 함께 세무대리인들을 휘어 감싸게 됐다. 이에 체계적 관리가 필요해진 국세청은 1983년 12월에 들어서 세무대리종합관리규정을 제정했으나, 행정규제 완화 차원에서 세무대리인에 대한 직접적인 성실도 관리규정을 폐지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2000년 11월에는 관리방식을 현실에 맞게 ‘세무대리업무에 관한 사무처리규정’으로 바꿔 실행하고 있다.


각종 세무조사 때 조세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납세자 권리헌장’에 담을 만큼 세무대리인의 위상·신장은 넓어져만 갔다. 납세자를 대신 입회하게 하거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한 제도개선은 규제개혁의 일환이기도 하다.

 

11대 임채주 청장 때 권리헌장을 제정·공포 시행 했는데, 납세자 권리 헌법이나 진배없는 제도이긴 하지만 선언적 행정제도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것 같다. 1980~1990년 들어 세무행정 각 분야마다 전문성을 크게 높였던 국세청은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전혀 새로운 세정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IMF 사태다. 정부는 IMF의 이행요구에 따라 경제 각 분야마다 자율화와 완전한 대외개방을 추진했고,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된다. 국세청도 예외권역이 아니었다. 이건춘 11대 청장 시절, 강도 높은 행정혁신이 이뤄졌 다. 1998년 악명 높은 세무조사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사전통지 제도 등과 함께 세무대리인 참여제도가 실행된 것도 이때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세법 내용을 숙지해서 납세자가 스스로 성실신고 의무를 이행하기엔 너무나 난해한 조세법이다. 게다가 국세청의 행정력만으로는 성실신고 의무 이행에 한계가 뒤따랐다. 국세청은 이같은 문제를 세무사회나 회계사회 등 납세협력단체 와의 상호협력과 지원관계를 통해 해결할 묘수를 짜낸다.


이른바 납세자의 세무대리인인 조세전문가 단체의 힘(능력)을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원받을 돌파구를 뚫은 것이다. 국세당국의 세무관리 차원이든, 세무사법 제정 취지대로든 간에 납세자의 편의증진과 원활한 세무행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일거에 잡는 특급전략을 세운 셈이다.

 

징수세무행정의 보조기능여부 시시비비 사례 ‘종종’ 생겨
세무사권리제한하고 되도록 협의해석 경향 오해소지 낳아
특히 국선세무대리인 등의 활동을 통해서 영세납세자 지원에도 기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권리구제 쪽의 지원이라는 면에서 협력지원과는 의미를 달리하고 있다. 영세해서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하는 납세자의 권리구제 문제를 돕기 위해 국세청이 만든 제도가 국선세무대리인제도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개인영세납세자가 1000만원 이하의 이의신청이나 심사청구를 제기하는 경우 국세청이 나서서 세무대리인을 지정하고 무료로 지원하는 행정제도다. 일종의 납세자 권익보호다.


그러나 당시 보유재산이 5억원을 초과하거나 종합소득금액이 5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상속세·증여세·종합부동산세 세목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해 영세납세자로 한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초에는 국세청 내부지침으로 시행했으나 2015년에 국세기본법에 법제화했는데, 2014 년 3월부터 2015년 6월까지만 해도 237명의 국선대리인을 위촉, 영세납세자 568명에게 무료지원 함으로써 납세자 권익보호에 힘을 보태왔다.


2015년 3월에는 행정자치부가 국선대리인 제도를 정부 3.0 우수사례 10선으로 선정했고 서울시와 조세심판원이 이 제도를 벤치마킹, 마을세무사제도와 국선심판청구대리인제도를 도입하게 만든 민·관 협동방식의 새로운 행정 서비스 모범사례로 평가 받은바 있다.


세금을 제외하고 증빙서류 발급과 보관, 장부작성, 신고서 작성·제출, 세무조사 등 세금을 신고 납부하는 과정에서 납세자가 부담하는 경제적·시간적 비용인 납세협력비용은 제2의 세금이라 불리어질 만큼 관심 또한 높다. 때문에 여느 분야 못지않게 납세자 권익차원의 획기적 비용감 축방안 모색에 부심하고 있는 국세청이다.


 

88세무대리인 종합평가 160여명 비위적발 곤욕 치러
고의적 탈세 조장·방조 세무대리인 중징계강행 ‘으름장’
전직 세무행정 경력자 등 자동자격자를 합해 131명의 등록을 받아 세무사 업무를 시작한 세무 사(1962년 2월 10일 세무사회 발족)업계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몰라도 세무행정의 협력 기능이나 보조기능으로 오해받아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납세자의 이익보다는 공공목적을 우선시했으니, 세무행정의 수탁자이거나 세무행정의 연장선상 위에 있는 보조자로 이해된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초창기에는 국가 징수행정의 보조기능이나 납세도의심 제고 기능에 치우쳐 왔다는 얘기다.


종종, 세무사의 권리에 대한 시시비비 사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세무사 권리는 세무사 개인을 위한 권리가 아니라 대리권 보장을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세당국은 세무사에 대한 권리부여를 되도록이면 제한하려했고, 협의로 해석하려는 경향 때문에 상당한 오해가 상존 하게 된다고 보는 세무대리인이 상당하다. 원론적이긴 하지만, 세무사는 수임사건을 전문화된 직업의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국세당국으로부터도, 위임자(납세자)로부터도 존중은커녕 신뢰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무사는 ▲등록하고 신원도 명백히 해야 하며 ▲직무상 비밀엄수 ▲품위유지 ▲탈세상담 금지 ▲명의대여 금지 ▲보수의 초과수령 금지 ▲장부작성·비치의무 등 무려 16가지나 되는 의무규 정을 준수해야 한다. 다른 공인직능군의 규정과 비교하면 월등히 지켜야 할 규정이 많다. 세무대 리의 공공성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세무대리권에 대한 국세당국의 부당한 제약은 세무대리종합관리규정이 하나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 세무사 직무수행과 관련, 위임자로부터 사적간섭 배제는 물론 국세당국의 직접적인 간섭 이나 제한을 받아서도 안 되는 이유다. 책임만 묻고 권한을 제한받아서는 독립성이나 직업자치를 해친다는 말이다.


성실신고확인제 행정편의주의 적이라고 ‘일갈’
수임업체 적격증빙 판단…‘팔이 안으로 굽어’
1984년 1월 18일 세무사회 회의실에서 개최한 1983년도 제7차 이사회에는 조중형 국세청 직세 국장과 김재규 국세청 소득세과장이 참석했다. 세무대리종합관리규정의 제정 취지를 비롯해 운영방침에 대한 당국자의 요지설명이 있었다.


“동 규정은 시행도 보기 전에 여러 가지 미흡한 점 또는 지나친 점이 발견되어 관련인들에게 걱정을 끼쳤는바, 이는 본의가 아니며, 그간 3차에 걸친 세무사회의 건의와 청장의 지시에 의해 일부 개정을 보게 되었다…(이하 중략) 세무공무원과 납세자의 직접접촉을 축소하고 세무공무원의 재량권을 압축하며 세무대리인의 역할을 증대하여야 하는 데, 이에는 세무대리인의 성실도(의뢰인 포함)가 문제이다.

 

이의 개선책은 대리인과 의뢰인을 종합관리하는 사전적 장치를 마련 하여 성실신고 확대로 자진납세풍토를 정착키 위하여 성실도 제고·공신력 향상으로 불성실자를 도태시켜 나가야 하겠다… (이하 중략) 처음에는 약간의 충격이 있다 해도 운영의 묘를 살리고 충분한 검토를 계속하여 필요한 것은 점차 보완 개정해 나갈 것이다···.”

 

퍽 정중한 자세로 납득시키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미흡하고 지나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행하고 보자는 식의 과세관청 특유의 납득시키려는 지략과 적극성, 그리고 설득력이 역시나 이채롭다.

 


문제 덩어리로 지목된 ‘88세무대리인 종합평가지침’ 때문에 비위사실이 적발된 세무대리인 등 160여 명은 세무서의 조사칼날이 들이닥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성실세무신고 대행여부에 대한 조사 때문에 세무대리인 부실과 위상추락을 보인 실사례로 확인됨으로써 신뢰추락 평가 잣대가 됐고, 이 또한 세간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넘겨준 납세자 증빙 성실성 믿고 확인자는 도장 찍어 주는 게 현실
소극적 태도나 수임료로 발목 잡는 현실세태 대리인만 ‘삼중고’ 겪어
심지어 세무서장은 지역별로 부실세무대리인에 대한 특별여론조사도 실시했는가 하면, 고의로 탈세를 조장했거나 방조한 사실이 확인되면 자격정지 등 중징계 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당시의 과세권의 칼날이 세무대리인을 정조준 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근래 들어 기획재정부의 불법세무대리 행위에 대한 징계수위 강도가 높고 거세지고 있다. 2017 년 들어 벌써 47명이 징계를 받았고, 지난 2016년에는 무려 90여명이 직무정지 등의 징계처분을 당했다. 이러한 거세진 제도당국의 추세를 놓고 세무대리업계에서는 논란이 한창인데, 국세청의 성실신고확인제 시행 이후 생긴 껄끄러운 행정규제 탓이라고 거침없이 삽질을 하거나 꼬집는다.


사실 성실도 판단은 실액신고의 비율 정도가 그 측정치로 쓰이겠지만, 어느 세무대리인은 “수임업체에 대한 세금계산서, 계산서, 신용카드영수증, 현금영수증, 원천징수영수증 등 적격증빙 서류를 ‘인정과 불인정 확인’만을 놓고 볼 때, 세무대리인 입장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인지상정 아니냐고 토를 단다.

 

또 한 세무대리인은 “성실신고확인은 가공경비를 계상하지 않고 필요경비 계상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사업자는 제대로 비용을 처리할 수있고, 세무대리인인 확인자는 징계 받을 일이 안 생긴다”고 강변한다.


실무적으로 좀 더 깊이 따지면, 세무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납세자가 넘겨준 자료가 정확하고 성실하게 챙겨준 것으로 간주하고 성실신고 확인자의 도장을 찍어 주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이른바 적격증빙으로의 자료가 맞는지 실제로 확인을 해야 하지만 납세자가 적극 응해주지 않는 부분도 문제이고, 수임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려는 수임시장의 현실 세태도 풀고 가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성실신고확인제 시행 이 후부터 바싹 조이고 있는 제도권의 징계책임 압박까지 떠안고 있어 어찌 보면 ‘삼중고’를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세무대리인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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