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규 논설고문 겸 대기자)무리한 세법 적용은 잘못된 과세를 낳게 마련이다. 이는 곧 납세자에게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되는 꼴이 되고 만다.
국세청은 부실과세 사전검증기능을 강화, 납세자 권리의식의 신장과 더불어 사전권리 구제제도를 통한 권익보호를 위한 제도발전을 꾸준히 꾀해오고 있다.
그간 납세자는 절박한 재정수요 충족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충분한 주인대접을 받지 못하고 과세관청의 큰 산에 짓눌려 ‘줄 것 다 내주면서’도 객식구 취급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납세자가 몸소 겪은 과세권자의 권위의식이 하나 둘 각인된 탓에 50년 세정사에 얼룩진 암흑기로 남아 있다.
다행히도 납세자 권리헌장을 제정, 1997년 시행을 계기로 납세자의 권리구제 바람이 크게 불었고,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세무조사 착수 시 납세자에게 헌장을 교부하고 요지를 낭독해 줌으로써, 권익보호 실천의지를 표명함에 따라 한발 다가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게 됐다.
흔히들 조세를 국민동의의 산물이라고 한다. 주인의 지위에서 국가의 재정재원 조달방법인 조세부담에 대하여 스스로 동의한다는 얘기다. 때문에 납세의무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조세법률주의의 기본권의 하나인 것이다. 과세청의 과세권 행사의 적정성 제고가 그 어느 때보다 재조명되어져야하고, 또 과세청의 새로운 롤 모델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310여만명에 ‘납세자권리헌장’교부 선진국형 세정 발돋움 계기마련
이른바 관치납세 시대가 1985년 중반까지였다면, 그 시대 이후를 민주세정이라고 떠받쳐온 자진납세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세무행정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건전한 납세의식확립에 적극적인 행정력을 기울여 왔다.
그 중 하나가 1967년 3월 3일을 ‘세금의 날’로 정하고 대통령이 직접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건전 납세의식 확충을 위해서 부단히 행정력을 집중해왔다.
1968년 2월에는 ‘세정자문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경제계 학계 법조계 문화계 등 각계 대표들로 구성해서 납세자의 의견을 세정에 반영, 시정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968년 3월 전국 최초로 부산국세청이 ‘민원사항 전화접수’를 개시했고 1965년 5월에는 ‘전화세무상담’을 처음 시작했다. 1996년 2월에는 ‘국세행정실명제’를 시행했고 훗날 TIS개통으로 국세행정전산화가 완료됐기 때문에 행정실명화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어 졌다. 1996년 4월 과세전적부심사제도 도입은 납세자의 권리구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전환점을 만들었다.
1997년 7월 ‘납세자권리헌장’을 제정, 공포시행하고 당시 310여만명의 납세자에게 권리헌장을 교부, 선진국형 세정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6년 12월 30일 국세기본법 제7장의2에 ‘납세자의 권리’부분을 입법화했는데, 국세청장은 1997년 6월 30일 제정, 고시했다. 전문과 본문 9개 조문으로 구성된 이 권리헌장은 조세절차를 적정화, 투명화 함으로써 납세자의 권익보호는 물론 세정의 신뢰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선언적인 헌장이다.
납세자가 세무서를 방문 않고 인터넷을 통하여 어디서나 불복을 청구하고 진행상황을 조회도 할 수 있는 전자불복청구제도를 도입, 억울한 납세자가 없도록 납세자 권익보호 장치를 지속적으로 보강해 나갔다. 영세납세자에게 무료불복대리서비스 지원책으로 국선대리인제도를 도입, 시행했고 이로 인해 영세납세자 권리구제가 한층 강화돼 나갔다.
부가가치세 도입 이후 국세청은 과표양성화를 위해 납세자의 자발적 성실신고 유도를 위한 사전지원이나 세무조사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다. 그럼에도 과표 현실화가 부진하거나 거래질서가 문란한 세원 취약분야가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1997년 IMF구제금융 시기에 전국적으로 벌어진 금 모으기 운동에 편승해 금 자료상이 기승을 부렸다. 변칙적 금 지금 거래에 쐐기를 박은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1.1.20. 선고 2009두13474 판결)이 나와 비슷한 수법의 변칙적 거래차단에 기여한바 컸다.
국세청은 1999년 9월 1일 기능별 조직개편을 통해 납세자의 고충 및 애로사항에 대해 상시적으로 상담하고 해결할 납세자보호담당관을 당시 전국 99개 세무서에 최초로 신설했다.
납세자 권리보호 요청따라 ‘세무조사 일시중지권’ 발동 부과권 견제권한 행사로 세정사에 큰 반향 일으켜
2010년 1월 1일부터는 국세기본법에 납세자보호관과 납세자보호담당관의 독립성 보장, 자격, 직무, 권한 등을 법제화함으로써 직무수행이 한층 강화되어 나갔다.
2009년 2월27일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제1회 ‘국민신문고 대상’ 옴부즈만 부분에서 대통령표창을 수상, 납세자권익보호 메카로 자리 잡아 나가는 느낌을 받게 했다.
2010년 1월 국세청 ‘126 세미래(稅美來)콜센터’로 통합 흡수해 전국 어디서나 국세 관련 상담서비스를 신속하게 지원받을 수 있게 현실성 있는 제도개선을 시행한 것도 시대환경에 맞는 변화라 하겠다.
행정절차가 진행 중인 과정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전권리구제에 초점을 둔 제도가 권리보호요청제도인데, 납세자보호관의 신설에 맞춰 2009년 10월 26일 최초로 시행하게 된다.
이 제도 시행에 따라 납세자의 권리보호요청이 있게 되면 시정요구권, 집행일시중지권, 세무조사 일시중지권 등의 권한을 통해 기관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납세자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집행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2009년 11월 국세청 최초로 세무조사 중지명령을 내린 사례가 생겼다. 부과권을 견제한 최초의 권한을 행사한 사례여서 일선 과세관청은 물론 납세기업 등 대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바 있다.
납세자 권리구제 제도 중 하나인 소송제도가 1998년 3월 1일부터 종전 2심제(고법·대법)에서 3심제(행정법원 고법 대법)로 개편됨에 따라 국세청은 국세기본법을 개정해 2000년 1월 1일부터 심사청구와 심판청구 중 하나의 절차만 거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1974년 12월 21일 제정 공포한 국세기본법 제7장 ‘심사와 심판’규정에서 새로운 권리구제 절차를 규정해 1975년 4월 1일 시행됐는데, 납세자가 제1심으로 국세청장에게 심사청구를, 제2심은 국세심판소장에게 심판청구를 각각 제기할 수 있도록 납세자 위주의 편의제공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나간 것이 특징이다.
부실과세를 방지키 위한 과세품질 혁신은 국세청이 안고 있는 과제 중의 과제다. 불복청구 건수는 계속 증가 추세를 보여 왔다.
2010년은 11,446건, 2011년은 12,674건, 2012년은 13,083건, 2013년은 12,311건, 2014년은 13,357건으로 밝혀져 납세자 중심 세정을 펴자고 다짐한 각오가 헛수고가 될 판국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부실과세 방지를 위한 시스템의 부재가 큰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납세자의 권리의식 향상, 납세환경의 변화, 경제규모의 확대로 인한 세수 및 납세자 수의 증가에 따른 자연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2008년 본청에 ‘과세쟁점자문위원회’ 설치… 과잉세무조사에 쐐기
특히 세무조사 과정에서 세무공무원과 납세자간에 조사 사실관계를 확정하는데 이견이 있는 경우 부실과세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2008년 1월 본청에 ‘과세쟁점자문위원회’를 설치, 사실판단 사항에 대해 실효성 있는 자문을 제공토록 함으로써 과잉세무조사에 쐐기를 박은 행정조치는 가히 혁신이다.
2011~2015년 기간 중에제기된 조세소송금액은 9,240건에 16조5206억원이 제기됐는데, 그 중에 8조8922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처리됐고 처리건수의 12%인 987건이 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패소금액은 무려 2조7586억원으로 금액대비 31%에 달한다. 이는 5년간 100억 원의 소송비용이 쓰였고, 부족한 세수 확보차원에서 세수입을 과도하게 잡아 목표 설정하는 등 무리한 과세행정을 펼친 결과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84년 시행된 모범납세자는 매년 550여명이 선정되고 있다. 성실납세 의무수행과 납세문화조성을 통하여 국가재정에 기여하는 모범이 되는 성실납세자들이다.
국세청 개청일인 3월 3일 납세자의 날 기념행사 때 이들을 표창, 격려해 오고 있다. 성실납세 유도에 제도시행 취지가 담겨져 있긴 하지만 세제혜택 등 각종 우대혜택이 조금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특히 수혜자인 일부 납세 기업 쪽에서 손사래를 치는 사례가 간간이 일고 있다 보니,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종전 후 건국초기의 한반도의 세제는 조선총독부 제령(制令)으로 입법화, 시행해 왔다. 전시체제를 평시체제로 전환하는 등 한국형 세법개정은 시대적 요청의 대상이 됐다.
그 중 하나가 영업감찰제 입법화였다. 일제 때 영업세법에서는 사업자등록 관련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사업자를 관리, 통제할 수 없어 세수일실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주장이 사세국에서 나왔다.
그러나 법제처 등에서는 납세자를 지나치게 구속하게 된다는 법리상 원칙만 따져 시행 유보를 강력 저지함에 따라 제도화가 주춤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다년간 세무행정의 맥을 아는 경력 있는 장형기 직세과장과 김무혁 간세과장이 영업감찰제의 실무상 필요성을 강력, 역설함에 따라 마침내 장&김 두 과장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당시 김만기 사세국장(1995년 역임)의 회고담이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오늘날의 사업자등록증의 모태가 됐고, 행정편의 상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세원일실 예방, 관리제도라는 차원에서 선견지명의 입법방안이 된 셈이다.
남덕우 장관, “법령 손질은 납세자의 편의고려, 현실성 있게 추진하라”… 배 도 재무부 세정차관보에게 당부
납세자 권리중심 방침은 과세관청만의 고뇌행정은 아니다. 1970년대 초 배 도 국세청 실장이 재무부 세정차관보로 전격 영전인사가 있었다.
배 차관보(훗날 제4대 국세청 차장)는 당시 남덕우 재무부장관실에 부임인사를 하러 갔다. 남 장관의 첫 마디가 “일선 경험을 살려 법령을 현실성 있게 보완하고, 납세자의 편의를 고려해서 손질할 것을 찾아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는 배 세정차관보의 회고담이다.
시선이 끌리는 대목은 납세자를 고려한 세법개정을 추진하라는 남 장관의 납세자 사랑이다. 고액체납자 고액납세자 등의 명단을 지상공개해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행정위주의 세정을 펼친 이낙선 초대청장에 비해 오정근 2대 청장은 국세행정이 어떻게 하면 국민 속으로 파고들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고 한다.
1971년 3월 권리구제 기구인 ‘세정직소센터’를 설치하고, 세율적용 착오, 계수와 업태적용 착오, 표준율 적용착오 등 국세부과 하자와 징수, 체납, 관재업무 등 부당처리를 납세자가 신고하면 신속처리해 주도록 제도화했다.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재무부 연두순시에서 “세금 때문에 어렵다는 불만은 좀 줄어들었나요?”라고 관심을 보인 대목은 당시 세정직소센터를 설치할 만큼 과세권자에 비해 납세자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왜소했던 현실을 입증해 준 듯하다.
김수학 4대 청장은 납세도의를 높이기 위해서는 납세자 스스로 장부를 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 세무협력단체의 협조로 납세자의 기장확대를 적극 유도해 나가는데 앞장섰다.
서영택 7대 청장은 취임일성으로 “부당한 과세, 억울한 과세는 없도록 해서 적법세정을 펴겠다”고 포부를 밝히듯 납세자들이 인정하는 정도의 수준을 갖추는 것은 자신(청장)과 국세청 나아가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세무공무원은 납세자에게 신의측(信義側)을 지켜야 한다는 납세자 신뢰행정을 모토로 이끌어 갔다.
“납세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세정을 펴라”… 이 청장, 새 바람 불어 넣어
이건춘 11대 청장은 1998년 4월에 ‘행정과오책임제’를 시행, 과다부과를 과소부과의 경우와 같이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했다. 납세자의 세금고충과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역점을 두고, 매월 15일을 ‘세금문제해결의 날’로 정해서 민원인의 고충을 끝까지 해결하는 책임제 세정을 펼쳐나갔다.
특히 이 청장은 조세의 날을 납세자의 날로 명칭을 바꾸고 납세자를 국세행정 운영에 최상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열린 세정의 세정지표를 표방, “납세자를 주인으로 여겨, 섬길 수 있도록 세정을 펴라”고 일선관서에 주문, 일대개혁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임환수 21대 현 청장은 납세자 신고관리 패러다임을 사후적 관리에서 사전적 지원으로 전환하고, 성실신고와 직결되는 다양한 도움자료를 신고 전에 최대한 제공, 신고에 반영케 했다.
또 한 달에 한번 납세자의 고충과 애로를 집중 해결하는 ‘세금문제 현장소통의 날’도 새로 도입 시행했다. 이로써 자발적 납세수준을 90%선까지 크게 향상시켰고 현장대면 소통행정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 번의 친절보다 한 번의 억울한 세금이 국세행정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납세자의 신뢰확보 실패의 주 원인은 뿌리깊은 부실과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서 부터 싹트게 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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