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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 ③] 국세청 세무조사 ‘경제경찰’ 몫까지 품다


(조세금융신문=김종규 기자) 국세청 세무조사 행정을 ‘국세청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사공무원의 자리가 한 때는 직원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만큼 곱지 않은 시선 집중 탓에 늘 조마조마했던 흔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공정성과 형평성이 결여되면 곧잘 조세저항의 뇌관으로 둔갑할 여지를 안고 있는 행정이 세무조사 관련 업무다.


1960년~1970년대 정부의 부과과세제도 시행 때는 납세자의 과표와 세액을 결정하기 위해 세무조사를 집행해 왔었다면, 1980년대 신고납부제도 시행 이후부터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성실신고를 유도하는 기능에 중점을 두고 이를 실행해 왔다. 그간 국세청은 꾸준히 세무조사의 내용과 절차를 개선, 시행해 왔고 또 이를 조심스럽게 공개도 해오고 있다.



1966년 국세청 개청초기부터 세원개발과 탈세방지 업무를 조사국이 전담해 왔다. 1962년부터 추진된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방대한 투자재원을 충족키 위해 세수증대가 시급한 과제로 대두된 시기였다. 1966년 4월15일 ‘세무사찰 일원화’조치가 대통령 지시각서(대비정1233,3-69호)로 하달, 국세청의 세무사찰 기능을 정비· 강화하는 새로운 대전환점을 맞게 된다.


경제개발재원조달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72년부터 1981년 당시에는 대기업조사전담기구인 비상설‘연합조
사반’을 신설하고 외형 10억 원 이상의 대기업 중 결손신고를 한 기업의 법인세 조사에 투입해 왔다. 그러나 동원운영 한계가 드러나 1979년 직제개편을 통해 직세국 정식기구로 ‘조사관실’이 출범하게 된다. 신고납세제도 도입이후인 1982년부터 1991년 시기에는 거액사채자금 사취에 의한 탈세사건을 계기로 지하경제특별조사반을 확대개편, 지방청 특별조사 정규조직으로 흡수했고 훗날 지방청 조사2국의 모태가 되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의 시기를 국세행정개혁기라고 국세청은 부르고 있다. 이때부터 업종별 조사기법을 체계화했고 전부조사의 보완적 기능을 가진 부분조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불성실 신고에 따른 오류와 탈루를 시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세정개혁에 올인하게 된다.


또 대기업의 세무관리 대책을 마련, 대기업 위주의 법인 관리체제로 전환, 세금없는 부의 세습을 차단하는 등 차등조사 관리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로 인해 순환조사제도를 강화했고, 최소한 5년에 한 번씩 세무조사를 하게된 것이다.


특별 세무조사 2003년에 과감히 폐지…정치적 목적이용 소지 오해 없애
1999년 기능별 조직체계를 도입한 이후인 2000년부터 2012년의 시기에는 신고기능과 조사기능을 분리해 세무조사 운영의 기본 틀을 크게 바꾸어 나갔다. 특히 2003년에는 특별 세무조사를 과감히 폐지, 세무조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오해의 소지를 제거해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이낙선 초대 청장은 청장 아래 6개 사찰반을 두고 4개 감사반 편성과 함께 4개의 물품세 특별조사반을 구성, 사찰기구를 대폭 강화했다. 또 같은 해 7월 전국 세무서에 조사과를 최초로 신설하고 과세자료의 수집을 전담케 했다.


특히 세무사찰 요원들의 자부심을 갖도록 박정희 대통령 하사품인 녹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50여종의 비
품을 넣은 사찰요원 가방(일명 007가방)을 휴대, 근무하게해서 007영화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무사찰 당한 반사회적 기업인 70여명 박대통령에게 SOS치자 되레 ‘호통’만 들어

외화유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반사회적 기업인 70여명을 강도 높은 세무사찰을 단행한 고재일 3대 청장은 거물급 기업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세무조사와 사찰과정에서 상당수 기업인들이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구조를 요청했지만, 되레 호된 꾸지람만 듣고 대부분 무위로 끝났다는 실화가 씁쓸하기만 하다.


1981년 2월부터 제5공화국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가 건설업체에 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대여금액
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수법으로 어음을 유통시켰다. 안무혁 5대 청장은 취임 5일 만에 희대의 사기극으로 불리는 이철희, 장영자 사건 관련 조세포탈혐의자(17명)재산을 전격 압류조치하고 이 사건을 잠재우는 개가를 올렸다.


100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 1년여의 세무조사 끝에 상업은행 혜화동지점의 은행직원 수기(手記)장부를 발
견, 이를 근거로 명성그룹 과세에 들어갔고, 이때 김철호 회장은 검찰에 고발당했다. 또 1987년 당시 1조원의
부채가 있었던 범양상선(주)회장 박건석이 1,800만 달러 (150억)의 자금을 해외로 도피시킨 사건에 대한 세
무조사도 무리 없이 집행, 탈세 잡는 청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아파트 당첨권 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1988년경, 서영택 7대 청장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인기 아파트에 대해서 분양 즉시 아파트당첨권 프리미엄의 기준시가를 고시, 전매차익을 세금으로 흡수했다. 국세청은 ‘부동산투기억제를 위한 종합세무대책’을 수립, 6개 지방국세청에 17개 부동산 특별조사반을 설치하고 투기혐의자에 대한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국토이용관리법 등 관련법규를 위반한 4천8백여 명을 적발, 1천5백여 명을 검찰에 고발한 보기 드문 대형투기사건을 파헤쳤다.


이용섭 14대 청장은 2004년 무렵 세무조사의 기본방향과 선정기준을 사전에 공표하고 세무조사 비율을 낮추어 나갔다. 세무조사 비율을 전년보다 전체법인 대비 1.5%에서 1.3%로 낮추기로 했고 개인사업자들은 전년
의 전체 사업자대비 0.17%보다 낮은 0.15%만 조사하기로 했다.


또 관서별, 규모별 기업분포비율을 고려해 조사대상 선정기업수를 본청에서 일괄 배정해왔다. 이 때문에 대기
업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소재 기업들의 세무조사 불균형이 다소나마 시정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간
셈이다.



전군표 16대 청장은 재임기간동안 세무조사 건수 대폭 축소와 조사기간 단축으로 세무조사 본래 기능의 충실화에 힘썼다. 2005년 약 2만6천 건이던 조사건수를 2006년에는 11% 줄어든 2만3천건으로 축소했고 2007년에는 2만건까지 감축시켜 나갔다.


2005년에는 대기업의 약 13%, 중소기업은 1,67%가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와 함께 세무조사 기간도 약 20% 단축시켰다. 특히 2006경에는 신고와 조사의 연계를 강화하고 신고 후 1년이 내에 즉시 조사에 나서도록 하는 조사대상 조기선정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한 청장이 됐다.


그동안 국세청의 법인 정기세무조사 대상기업 선정은 12월말 결산법인을 기준으로 법인세 신고 납부 후 1년여의 분석기간을 거쳐 다음 해 8월경에 이뤄지는 것이 관례였다. 때문에 법인세 신고와 조사대상 선정 기간이 약 1년 반 정도의 시차가 있어 왔으나 조기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이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한상률 17대 청장은 2007년 12월에 세무조사 쇄신방안을 마련, 지능적, 변칙적 탈세에는 엄정 대응하되, 세무조사는 객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해 나갔다. 다시 말해서 특정업체 개별 심리분석금지, 조사진행 공론화, 지방청

간 교차조사 확대, 대기업 조사반 풀(pool)제 활용, 소명대상 과세자료 조기통보, 조사 지휘라인 수시교체 등 세무조사의 전 과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쇄신방안을 모두 담았다.


국세청 개청 이후 2015년까지의 세무조사 법인 수 추이를 보면 1966년부터 1970년까지 5년간은 가동법인의
90%이상이 세무조사를 받았었다. 그러나 신고납세제 전환 이후 세무조사 비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1995년 이후에는 2% 내외의 조사비율을 유지하다가 2010년대에는 1% 내외로 조사비율이 하락했고 지금도 그 조사비율을 거의 유지하고 있다.


국세청 수장들의 세무행정에 대한 장고(長考)결과는 곧 세무조사 기본 틀로 짜여져 나타난다. 청장이 바뀌면 세무행정의 패턴이 달라지고 덩달아 세무조사 절차나 기준도 함께 요동쳐 온 것도 사실이다. 역대 청장마다 행정 스타일이 다 다르고 그야말로 ‘촉감’이 다르다 보니, 세무조사 행정 비전도 각양각색이다.



“세무공무원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세법이 무섭다는 인식을 심어주겠다.”
초대 이낙선 청장은 개청 취지에 맞게 아예 대놓고 세무조사 행정을 세수확보나 징세하는데 적절히 물 타기(?)해서 오직 세수 제일주의 행정을 펴왔고, 서영택 7대 청장은 “세무공무원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세법이 무섭다는 인식을 심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조사행정을 이끌어 왔다. “법은 완벽해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조사를 가능한 한 최소화해 당장은 세입이 줄더라도 나라경제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 8~9대 추경석 청장의 ‘세무조사 비전’은 가히 철학이다.  과잉세무조사로 납세의무자의 조세부담 과중을 고려한 행정의 배려이다.


13대 손영래 청장은 “납세자를 세무조사나 신고업무의 대상이 아닌 세정의 동반자이자 고객으로 생각해야 한
다”고 납세자 중심의 세무조사 행정을 일찌감치 깨우치고 펼쳤다. 한상률 17대 청장은 “조사실적으로 업무능력을 평가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얼마나 국민과 납세자를 만족시켰느냐를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집행했다고 한다.


18대 백용호 청장은 “세무조사는 국세행정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느냐에 따라 국세청에 대한 평가가 결정 된다”고 공정·투명성을 강조해 왔다.


임환수 21대 현 청장은 “세무조사는 영세·중소납세자의 세무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조사나 사후검증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신중히 운영하되 지능적·변칙적 탈세에는 엄정대응한다”고 취임 이후 줄곧 지켜온
기존 방침을 고수, 선진조사행정을 펼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세청은 수직적 통제 즉, 세무조사라는 수단 대신에 수평적 모니터링이라는 새로운 납세관리 방식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납세자를 더 이상 공권력 집행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파트너로서 섬겨야 할 고객으로 인식하고 수평적 협조에 적합한 조직으로 전환해 나간다는 얘기이다. 바로 이것이 미래 100년 세정을 공감케 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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