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전 산업권에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통신의 역할이 전통적인 의사소통에서, 데이터의 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통신서비스는 다른 산업과 융합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전통적인 통신규제 체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통신 접근권과 망 이용대가, 인앱결제(앱 내 결제), 디지털 격차 해소 등 다양한 이슈가 산적한 가운데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법조계, 정치계, 학계에서 나와 이목이 집중됐다.
23일 법무법인 율촌은 디지털혁신정책포럼과 ‘디지털 생태계 변화에 따른 ICT제도 개선방향’이란 주제의 세미나를 공동 주최해 전통적인 통신규제체계의 한계를 살펴보고, 해외 입법례와 비교하며 어떤 부분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손금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개회사를 통해 세미나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기존 전통적인 규제 체계로는 최근의 변화를 담아내는 데 여러 한계가 있다. 지난 정부가 사회, 경제, 산업 전반에서 노력했지만 정부 주도 성장 및 규제 개선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런 취지에서 디지털 생태계 변화에 따른 법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축사를 맡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성중(국민의힘) 의원은 “정보 통신 기술이 다양한 산업군과의 융복합을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은 정보 통신 기술에 대한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기존의 정보통신 기술 규제 체계로는 최근의 이슈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무소속) 의원은 “2024년까지 미래 소비자의 80%가 온라인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로의 전환이 폭발적으로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라며 “전통적 통신규제체계의 한계의 보완을 위해 새 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 초연결, 지능화, 융합화를 가능하게 하는 통신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양 의원은 지난 17일 앱마켓시장의 경쟁촉진과 이용자 선택권 확대 등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모바일콘텐츠 등 제공사업자가 하나의 앱 마켓에 등록하는 경우 정부가 해당 사업자에게 동일한 이동통신 단말장치를 통해 이용이 가능한 다른 앱 마켓에도 앱 등록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 통신, 단순 연락 수단 아닌 필수재
이처럼 법조계와 정치계에서 새로운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체계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학계에서 디지털 혁신에 부합하는 규제지원 체계 방향성과 목적을 바로 세우고, 망 이용 대가에 대해 거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며 B2B 등 신규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요금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맡은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박사는 “예전엔 집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고 PC통신에 들어가서 필요한 부분을 살펴보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집 전화를 잘 안 쓰기도 하고, 휴대전화 들고 가장 처음 하는 일은 뉴스를 살펴보거나 배달을 시키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하는 것이다. 전화가 오면 그땐 이어폰을 꽂고 하던 일을 하며 전화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집에서 집 전화를 들고 전화하는 게 가장 기본이고 PC를 이용하는게 부가가치(Value Added)다. 통신기술의 진화를 보면 통신망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 인프라다. 예전엔 음성을 전달하는 전화가 가장 중요했지만, 요즘엔 영상 등 여러 가지가 데이터로 변화했고, 그 데이터를 다루는게 통신망이다. 통신망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데이터의 수집, 이용, 활용 등도 통신망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통신망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때 통신의 의미는 1:1 의사소통에서 일대다, 다대다간 데이터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문자, 음성, 음향, 신호, 영상 등 디지털화가 가능한 모든 콘텐츠를 의미한다. 즉 통신은 단순한 연락 수단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필수재로 이미 자리 잡았다.
◇ 통신망 패러다임 전환, 규제·지원방향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통신 발전으로 일상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부작용도 존재한다. 통신서비스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시적인 통신 장애에도 치명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통신을 악용한 보이스피싱 등 범죄피해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이에 대응하는 통신규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현재의 전기통신사업법은 경쟁촉진에 관한 부분과 기존 전기통신기본법에 포함돼 있던 설비에 관한 규정이 이관된 것을 제외하면 1991년 전부개정 당시의 전기통신사업법 구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상태다.
현행 통신법 체계에서 주(主)가 되는 것은 ‘기간통신역무’다. 전화나 인터넷 접속 등과 같이 음성, 데이터, 영상 등을 그 내용이나 형태의 변경 없이 송신 도는 수신하게 하는 전기통신역무 말이다. 반면 ‘부가통신역무’는 말 그대로 부가적인 영역으로 기간통신역무 외의 전기통신 역무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면, 통신생태계 패러다임이 기간통신에서 부가통신으로 바뀌는 추세다. 부가통신사업자인 온라인플랫폼 등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통신법의 규제철학이 담긴 전기통신사업법은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권 박사는 “기존 규제는 통신망을 중심으로 통신에 대한 보편적 권리와 통신수요에 대한 대응에 초점을 맞췄지만,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데이터가 노동, 자본 등 기존에 중요시되던 생산요소보다 더 중요한 핵심 자원으로 부상했다”며 “법 제도적으로 기간통신사업자들의 지속적인 투자를 끌어내면서도, 온라인 플랫폼 등 부가통신사업자와 기간통신사업자 간 균형 있는 규제체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물리적 설비를 중심으로 하는 규제에서 데이터 이용자 위주로 통신 규제와 지원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영국의 경우 디지털 경제 규제를 위해 DMU(Digital Market Unit) 설립을 추진하며 이와 관련된 정책 자문을 진행 중이다. DMU는 기존의 CMA(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 내에 설치돼 규제대상 디지털 기업의 지정 및 기존 경쟁법과 별도로 부여되는 사전, 사후규제와 관련된 임무를 담당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엔 연방과 주정부에 복잡하게 혼합돼 있어 일관성이 없는 규칙의 해석에 대한 해결이 필요한 상황으로, 규제 장애물을 제거하고 일관된 국가 규칙을 제공하기 위해 연방법이 지역규제를 대체하는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
◇ 망거래 투명성 확보하고 B2B서비스 늘려야
권 박사는 기존 통신법에서 규정한 기간은 규제, 부가는 비규제라는 이원적 구분에서 탈피해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망이용대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거래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국내 인구 성장의 정체 또는 하락과 대량 트래픽의 소비가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 요금체계, 비면허 주파수 대역 이용량 증가 등으로 B2C모델에 한계가 있는 만큼 B2B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게 권 박사의 의견이다.
이 밖에도 권 박사는 ICT관련분야의 콘트롤타워인 미디어혁신위원회, 미디어‧콘텐츠산업 콘트롤타워, 디지털혁신위원회 간 협업을 통한 규제 접근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 생활에 필수재로 잡은 통신 발전, 그리고 이와 어울려 디지털 전환의 시대를 맞은 산업권을 아우를 ICT 분야의 발전을 위해선 규제 프로세스와 그 접근법에 변화가 필요하다.
규제기관의 일방적 규제가 아니라 통신지원과 규제 프레임워크(Framework) 안에서의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자율적, 협력적인 규제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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