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배우자가 사망하면서 물려준 재산과 빚을 빠짐 없이 국세청에 신고했는데, 빚쟁이 대부업체가 해당 빚을 못받은 걸로 간주(대손처리) 해버리는 바람에 세금을 더 낼 뻔한 납세자가 조세불복으로 증여세 추징을 면했다.
이 납세자가 대부업체에 진 빚을 '부채 사후관리 대상'으로 지정관리해 왔던 국세청이 해당 빚을 못받는 것으로 대손처리로 회계처리한 대부업체 회계장부만 보고 탕감받은 빚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려다가 실패한 사례다.
조세심판원은 “피상속인이 물려준 빚을 해당 채권자가 대손처리한 날에 면제 받은 것으로 봐 쟁점 채무에 대한 ‘채무면제이익’에 따른 증여세를 부과한 국세청의 처분은 ‘민법’과 ‘국세기본법’ 등에 비춰 적절한 과세로 볼 수 없어 과세 취소 결정했다”면서 해당 심판결정례(조심 2023중7227, 2023.09.18)를 16일 공개했다.
조세심판원은 “채권자가 문제의 채무를 대손금으로 회계처리한 사실 외에 채무자 청구인에게 명시적·묵시적으로 채무면제의 의사표시를 했음을 국세청이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당 회계처리일에 채무면제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는 배우자 B씨가 지난 2012년 9월3일 사망하자 상속세 대상 재산가액과 물려받은 빚(상속채무) 등 공제금액을 계산해 상속세 과세가액을 산출, 이듬해인 2013년 3월31일 상속세 신고를 제대로 마쳤다.
상속채무에는 K대부업체로부터 빌린 채무 등 사채, 금융회사 대출도 포함돼 있었다.
S지방국세청은 2013년 8월12일부터 2014년 3월29일까지 A씨에 대한 상속세 세무조사를 벌여, K대부업체로부터 빌린 채무 등을 ‘부채 사후관리 대상’으로 지정, 관할 세무서가 그대로 관리해 왔다.
그런데 S지방국세청이 지난 2022년 10월 상속채무에 대한 부채 사후관리를 살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세청은 K대부업체가 2012년말일부로 ‘사망’을 사유로 B씨에 대한 채권을 대손처리한 사실을 확인했다. 국세청은 상속인 A씨가 채무면제이익을 얻은 것으로 봤다. 이에 지난 2월16일 A씨에게 2012년 12월31일 증여분 증여세를 결정, 고지했다.
A씨는 이에 불복, 법에서 정한대로 국세청에 이의신청을 거쳐 지난 3월7일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심판원은 채무자측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K대부업체 회계처리 사실을 몰랐고 소멸시효도 남아 있어 추후 갚을 수도 있었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빚을 탕감받은데 따른 추가 이익(채무면제이익)을 증여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판단이었다.
심판원은 이와 함께 “앞서 국세청 스스로가 K대부업체 빚을 공제 대상 채무로 인정했고, K대부업체가 회계처리 시점 이후에도 채무면제 의사표기가 있었다고 보지 않았다”면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면제 의사표시를 했음을 입증하지 못한 점 등에 비춰 채무면제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채무 면제의 요건과 효과를 정의한 현행 ‘민법’ 제506조에 따르면,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무를 면제하는 의사를 표시한 때 채권은 소멸하지만, ‘면제받아 이익을 가진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여기서 ‘면제받아 이익을 가진 제3자’가 국세청이다.
민법 조문에 따르면 당연히 국세청은 A씨로부터 증여세를 추징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국세청 과세 과정이 ‘과세가 반드시 문서 등 증빙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신의성실의 원칙)’는 취지의 ’국세기본법’ 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국세청이 K대부업체로부터 유선으로 ‘쟁점금액(B씨의 채무)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부채 사후관리 검토보고서’에 나타난 점을 눈여겨 봤다.
한편 한국은 행정 행위에 대한 불복이 많은 특허나 조세 등의 분야에 대해 ‘행정심판 전치주의’에 따른 행정심판을 거쳐야만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하고 있다.
조세심판청구 결과는 각하와 기각, 인용, 재조사 결정으로 구분된다. ‘인용’ 결정은 (과세) 취소나 결정, 기타 필요한 처분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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