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무역으로 물가를 잡는다고?1)
1) KTV국민방송 “PD리포트 이슈 본(本)” (407회) ‘장바구니 부담안정! 할당관세’편 고태진 관세사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올해 여러 경제지표가 들뜨게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 상용근로자인 가구의 실질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5.0% 감소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수치인 월급이 올랐다 해도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적어졌다면 인상된 월급은 숫자에 불과하다. 물가의 상승을 잡아야 하는 이유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7월 6.3%, 8월(5.7%), 9월(5.6%), 10월(5.7%), 11월(5.0%) 등으로 올라갔던 물가상승률이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없다. 과거 3년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9년 0.4%, 2020년 0.5%, 2021년 2.5%였다.
오르는 물가 내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간단히 수요와 공급 관계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수요가 증가하거나 공급이 부족하다면 가격이 상승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가격이 하락한다. 즉 수요는 그대로이거나 늘고 있는데 국내 공급이 부족하면 그 부족 부분을 어떻게든 채워 넘치게 하면 물가는 잡힌다. 정부는 국내의 부족한 공급을 해외에서 찾는 전략을 택했다.
예를 들어 요새 조류독감이 급속으로 확산되어 닭, 오리의 살처분 범위를 확대한다는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들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국내 사육된 닭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가뜩이나 치킨 값으로 말이 많은데 치킨의 기본 식재료인 닭의 값이 오르니 연쇄적으로 치킨 값도 덩달아 오르고 물가는 상승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달걀도 부족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외국에서 닭을 수입하면 된다. 여기에 더해 수입 닭에 대한 관세까지 제거된다면, 싸게 수월히 수입 및 공급되어 닭고기의 물가는 빠르게 잡혀갈 것이다.
물가 가격 잡아주는 ‘할당관세’제도
이때 관세를 제거하는 데 쓰이는 수단이 ‘할당관세’제도이다. 물가 안정 등을 위해 수입품의 일정한 수량에 대해 일시적으로 관세율을 낮추거나 높이는 관세제도로, 수입할당제와 관세제도의 기술적인 특성을 혼합한 개념이다. 실제 닭고기에는 그 형태별로 20~30% 정도의 꽤 높은 관세율이 적용돼야 하지만, 현재 0%의 할당관세가 적용되어 관세가 없다. 지금의 추세로 라면 상당기간 할당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할당관세는 물가가 높기 때문에 해당 품목에 대한 세율을 없애거나 낮추어 관련 품목의 가격을 안정시키고 물자를 원활히 수급케 한다.
그런데 축산물 할당관세 적용과 관련하여 농가에서는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위축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 추가 할당관세 조치로 공급까지 과도하게 늘면 가격이 폭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한다. 걱정과 달리 할당관세는 국내 생산자의 수입억제 요구와 수요자의 수입촉진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특정상품에 대한 국내총생산량과 총수요량을 조절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국내 물가가 너무 높아 수입을 했는데, 만약 물량이 넘친다?
그럼 다시 가격을 원상으로 회복하게 되는 구조로, 농가는 과도히 근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정부는 관련 물품의 공급현황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농가 입장에서는 오히려 농기계나 농자재, 사료용 원료 등에도 할당관세를 추가하거나 지속해 달라는 적극적 행보를 보이며 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할당관세제도…정부의 생색내기용?
문제는 정부가 할당관세제도를 정치적으로 과도히 이용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데 있다. 추운 겨울이 되면서 선제적으로 정부는 서민 난방용으로 주로 사용하는 LNG, LPG를 할당관세 대상 품목으로 선정했다. 서민층의 동절기 난방비용 부담을 상당 폭 완화시키기 위해 취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LPG나 LNG가 과거에는 중동 지역에서 주로 수입했던 게 사실이나, 지금은 호주, 미국 등 FTA 체결국으로 옮겨가 버렸다. 물건의 가격 자체도 상대적으로 싸진 데다 이들 나라산(産) LPG 등은 FTA로 관세가 없다. 따라서 국민이 체감하는 인하금액은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LPG의 경우 kg당 2~3원의 가격 인하효과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FTA 체결국과의 교역이라 할지라도 원산지결정기준 미충족, FTA원산지증명서 미발급 등의 경우에는 FTA를 적용받지 못하지만, LPG나 LNG를 공급하는 회사가 FTA원산지관리를 못할 정도로 영세하지 않다.
삼겹살도 마찬가지다. 이미 할당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돼지고기 중 삼겹살은 국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외식 먹거리다. 그래서인지 이미 1만 톤이던 할당물량이 소진되어 3만 톤(냉동 1.2만 냉장 1.8만)으로 할당물량을 확대시켰다. 기타 부위는 변경 없이 그대로 4만 톤(냉동 3.6만, 냉장 0.4만)을 유지하여, 삼겹살에 대한 할당관세를 연장시키는 효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할당관세의 효과가 과연 정부에서 의도하는 만큼 나올지는 의문이다. 냉동 삼겹살 수입 상위 3개국을 보면 스페인, 네덜란드, 칠레이고 이 세 나라는 모두 FTA가 체결되어 있어 이미 관세가 없다. 게다가 할당관세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추천기관의 추천을 받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한데, FTA는 삼겹살의 경우 수출자가 보내준 FTA 원산지증명서만 있으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냉장 삼겹살의 경우는 할당관세의 실익이 있긴 하다. 주요 수입국을 보면 캐나다, 미국, 멕시코인데 미국 0%를 제외하곤 FTA 체결국인 캐나다를 포함해 멕시코의 관세율은 꽤 높다2). 그런데 이것도 조금 더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 한-캐나다 FTA (8,972메트릭톤 기준) 기준량 이하 8.6%, 기준량 초과 13.5% / 멕시코 22.5%
스페인 한 나라에서 수입된 냉동 삼겹살(29,213톤)이 캐나다 등 냉장 삼겹살 수입 3개국을 합친 수입량(13,705톤)을 압도한다. 주로 수입되는 냉동 삼겹살에 대한 할당관세의 유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최근 삼겹살의 외식물가지수가 10.1%로, 두 자릿수 상승한 것이 이를 방증해준다.
그래서 정부가 서민을 위한다는 것을 과장해 포장하는데 이 할당관세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정부의 생색내기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아쉬운 대목이다.
할당품목 지정시 공급사슬 분석 선행돼야
정부는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를 최우선 고려하여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주먹구구가 아닌 좀 더 정교한 할당관세 효과 분석 선행 후 대상 품목과 할당관세율을 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종 소비재는 밸류체인상 최후방 산업의 결과물이다.
최종재의 가격은 여러 가지의 원료, 환율,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으로 결정된다. 이때 최종재에 소요되는 주요 원료 물량을 살펴 가장 효과적인 곳에 할당관세 등을 과감히 적용해야 한다. 이후 이를 원료로 연쇄적으로 만들어지는 많은 제품군에 모두 영향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산업부, 기업 및 유관기관과의 면밀한 공급사슬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인터넷 환경이 급속도로 발달한 현재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세계 곳곳에 그대로 공유된다. 정보가 대칭인 상황이기 때문에 애초 수출자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약을 취소하고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2011년 1월 정부가 돼지고기의 할당관세 인하를 발표하자마자 해외 수출업자들은 수출오퍼를 취소하고, 수입가격을 인상하여 실질적으로 시장가격 인하효과가 사라져버린 경우가 있었다3). 정부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내 기업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관리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3) 참조 : [전문가칼럼] 관세면제가 물가안정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월간조세금융, '22. 08)
마지막으로 앞선 사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할당품목을 정할 때 할당 예정 물품의 FTA와 같은 특혜무역협정 세율 현황과 할당관세의 중복 부분을 확인하여야 한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로, 풍요를 상징하는 토끼와 인간의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 색이 만난 해라고 한다. 아무쪼록 지혜롭게 대내외 어려움을 이겨내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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