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FTA와 같은 지역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이유는 다자간 채널인 WT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마음이 맞는 나라끼리라도 좀 더 수준 높은 협정으로 교역을 확대해 보자는 데 있다.
그래서 전 세계 GDP, 인구, 교역의 약 3분의 1을 자랑하는 RCEP1) 협상의 개시가 선언됐을 때 많은 이들의 기대와 주목을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협정이 발효된 지난 2월 이후 약 7개월이 지난 지금 RCEP의 경제적 효과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15개라는 서로 다른 여건의 나라들끼리 자국의 위치에 맞춰 최적의 교집합을 찾다 보니, 그저 그런 수준의 개방밖에 나올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그 이유로 보인다.2)
RCEP은 한-아세안 FTA보다 문화콘텐츠, 유통 등 서비스 분야의 개방을 확대했고, 전자상거래, 지식재산권 관련 챕터를 새롭게 도입했다. 일본과는 온라인 게임, 쌀/담배/소금에 대한 도소매 및 중개 서비스를 개방했다.
1)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의 역내 무역자유화를 위한 협정으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2) 참조 :
- RCEP, 한국 경제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고태진, 2019.12, 월간조세금융)
- 새롭게 발효된 또 하나의 지역무역협정, RCEP(고태진, 2022.4, 월간조세금융)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로는 우리 기업들이 RCEP의 경제적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을 제외하고 모두 이전 1:1 개별적으로 FTA가 체결되어 있는 나라들로 구성된 RCEP은 기존 FTA의 협정세율이 RCEP의 그것보다 대부분 낮다. 일본도 기본세율 자체가 RCEP 협정세율을 적용하지 않아도 이미 낮은 세율이 많다.
그렇다면 세계 최대 FTA라고 광고하는 RCEP의 진짜 효용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RCEP은 세계 무역의 98%를 차지하는 164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WTO만큼은 아니지만 규모면에 있어서는 세계 무역의 1/3을 차지하는 주요 15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들이 뭉쳐 있는 경제 덩어리 안에서 움직이는 물동량은 가히 대단할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비즈니스는 한 국가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폐쇄경제를 고집하자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도태되기 십상이다. 비교우위에 근거해 싸고 질 좋은 원재료, 부분품, 중간재를 수입해 완전한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글로벌 소싱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소싱으로 중간재 등이 이동할 때 여하한의 무역장벽을 제거한다면 그를 활용한 최종 완제품의 경쟁력은 대단히 높아질 것임은 자명하다. RCEP의 유효성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중국, 필리핀 등에서 수입한 원재료를 모두 자국산으로 보아 이를 갖고 만든 제품도 곧 자국산(역내산) 제품으로 판단해(누적기준) 협정의 특혜를 누리는 비즈니스를 구상할 수 있다. 적어도 회원국 안에서는 교과서에서 무역발생의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을 구현하는 틀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꽤 고무적이다.
그런데 RCEP에는 특이하게 ‘관세차별’(Tariff Differentials)이라는 다소 생소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개념은 당사국이 각 회원국에 대한 관세 양허표를 개별적으로 작성해, 같은 품목일지라도 수출 원산지 국가에 따라 관세율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데 근거한 규정이다.
예를 들어 어떤 물품에 대한 C국의 수입 RCEP 관세율이 A국산은 10%, B국산은 2%로 양허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A국 기업은 C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것보다 B국으로 보냈다 C국으로 우회 수출하여 B국산 제품에 적용하는 8%나 싼 관세율을 적용 받으려는 꼼수를 필 유인이 발생한다. 관세차별은 이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FTA 체결 전과 체결 후에 관세율 차이를 이용하여 무역의 왜곡 현상이 발생하는 ‘무역굴절’3) 효과와 같은 얘기다. 무역굴절 효과를 제거하기 위해 그 나라에서 물건이 본질적으로 생산했는지를 파악하는 ‘원산지기준’이 그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는 ‘관세차별’ 조항이 그것을 대신한다.
3) 역외국이 역내 고관세국에 수출하고자 할 때 역내 저관세국을 통해 ‘우회수출’하고자 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동일한 물품이더라도, 그리고 같은 RCEP 회원국일지라도 어느 회원국 원산지냐에 따라 수입국에서 적용하는 관세율을 달리 규정함으로 생긴 조항으로, 이때 콕 집어 어느 나라 원산지인지를 확인하는 규정이다. RCEP 15개 회원국 모두 동일한 물품에 대해선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한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생긴 룰이다.
그래서 RCEP의 실질적 비즈니스 효용가치의 최댓값이라 할 수 있는 ‘누적기준’을 활용하기 위해선 ‘관세차별’ 조항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관세차별 물품에 대한 원산지 찾아보기
같은 RCEP 역내국 사이에서도 이렇게 콕 집어 원산지 나라를 찾아야 하는 대상 물품(관세차별 물품)에는 어떤 게 있는지부터 살펴봐야겠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으면 기존의 다른 FTA처럼 원산지를 판정하면 된다.
우선 관세차별 물품에는 ‘관세차별 일반품목4)’과 ‘민감품목’ 2가지로 나뉜다. ‘관세차별 일반품목’은 기술한 바와 같이 ‘수입당사국이 수출당사국에 대한 수입물품의 관세율을 상이하게 지정한 품목’이다.
4) 우리나라 및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중국은 각 회원국별로 관세양허표를 두고 있는 반면, 브루나이,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싱가포르, 태국, 호주, 일본, 뉴질랜드는 회원국 전체에 단일한 하나의 관세 양허표를 운영함이 특징이다.
즉 동일한 제품이지만 어느 RCEP 회원국 원산지냐에 따라 세율을 달리 적용하는 것들이다. ‘민감품목’은 수입당사국 협정 부속서1 부록5)에 규정한 품목을 말한다.
민간품목을 운영하는 나라는 전체 15개국 중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중국, 일본 등 8개 국가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 수출하는 기업은 민감품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수출하는 물품이 상기 두 가지 중 하나에 해당되면 RCEP 품목별기준에 따른 원산지판정 즉, RCEP 역내산인지 아닌지에 이어 또 한 번 원산지 국가를 찾아야 한다.
5) 제2.6조(관세 차별)제3항에 관한 부록
첫 번째로 수출물품이 RCEP에서 정한 원산지기준에 부합해야 함은 자명하다. 원산지이지만 그 안의 어느 나라가 진짜 원산지를 가려내는 것이 관세차별 규정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양허표 부록에서 ‘민감품목’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면, 기존 원산지기준에 더해 수출당사국에서 자체적으로 수출물품 총 가액의 20% 이상의 부가가치(Domestic Value(DV) addition)가 발생했는지를 추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수출국을 원산지로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DV 20’ 기준을 두었으므로 수출국에서‘만’ 일정 부분 부가가치가 발생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이 경우는 누적기준 즉, 다른 역내국 재료를 원산지로 인정하는 규정은 배제된다. 뿐만 아니라 RCEP 품목별원산지기준이 세번변경(CTC)인 경우에도 원산지 국가 판단을 위해서는 역내산 재료의 ‘가치(가격)’을 확인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만약 수출국에서 20% 이상의 부가가치가 발생했다면 수출국이 원산지가 된다. 그러나 그 기준에 미달된다면 아쉽게도 수출국은 원산지가 될 수 없다. 그 대신 물품 생산에 소요된 원산지 재료, 즉 RCEP 회원국 제공 원재료 중에서 가장 비싼 재료를 공급한 나라가 원산지가 된다. 이 경우 수출국과 원산국이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셋째로 수출국 원산지에 따라 관세 차이를 두고 있는 ‘일반품목’에 대해서는 ‘최소공정6)’ 개념이 핵심이다. 즉 수출당사국에서 수출물품을 최소공정 ‘이외의 추가공정’을 수행했다면 수출 당사국을 원산지로 하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제품 생산에 소요된 원재료 중 가장 비싼 원재료를 공급한 나라가 원산지가 된다.
6) 제2.6조 관세차별 제5항(최소공정)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으며, 보존공정, 포장, 단순제조, 라벨링, 단순 혼합, 동물의 단순한 도살 등을 규정되어 있다.
단, 이 경우는 제품 생산에 소요된 원재료가 모두 RCEP 회원국산일 때 적용된다. 일부라도 원산지를 알지 못하거나 역외산 재료로 품목별원산지기준에 충족하고 최소공정 이외의 공정을 수행하여 만든 제품은 역내산 제품이 된다. 그러나 최소공정만을 수행해 만들었다면 이론적으로 품목별기준을 충족하여 역내산이더라도 ‘비원산지’가 되고 RCEP을 활용할 수 없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관세차별 물품 원산지 결정 도해>7)
7)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에 따른 관세행정 운영지침(2022.1. 관세청)
마지막으로 민감품목 또는 원산지 재료로만 만들어진 관세차별 일반물품으로서 최소공정 이외의 추가공정을 거치지 않은 제품의 원산국을 찾기 위해선 상기한 바와 같이 반드시 원재료의 가격(가치)를 알아야 한다. 원재료 최고 가치 기여국을 원산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재료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즉, 원재료의 원산지 국가들 중 물품에 대해 수입국에서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를 원산지8)로 하든지, 아니면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다 생각하면 모든 RCEP 회원국 중 수입국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9)를 그냥 정하면 된다.
즉 수입국에서 그 물품을 수입할 때 적용 가능한 RCEP세율 중 가장 높은 국가를 원산지로 정하는 식이다.
8) RCEP 원산지증명서 작성 시 원산지 재료에 기여한 당사국 중 수입당사국이 가장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로 원산지를 정할 때에는 원산지증명 제11번란 RCEP 원산지 국가명 뒤에 “ * ”표시
9) RCEP 원산지증명서 작성 시 원산지증명 제11번란 RCEP 원산지 국가명 뒤에 “ ** ”표시
FTA 플랫폼은 설령 나라는 다를지라도 동일한 나라에서 물건이 이동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RCEP은 FTA 근본 취지에 많이 부족해 보인다. 지금과 같이 글로벌 공급망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에 RCEP은 GVC10)의 안정적 구축에 알맞은 해법이 될 수 있다.
10) Global value chain(GVC, 글로벌가치사슬)이란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여러 나라를 거쳐 다양한 생산 단계를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소비되는 활동의 총체를 말한다.
그러나 협정의 수준은 우리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관세차별’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정책적으로 상대국과의 관계에서 산업보호 등 유불리에 따라 관세율을 다르게 적용해, 가능한 RCEP 체결과 발효를 앞당기기 위한 차선책으로 ‘관세차별’ 조항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들이 RCEP의 최대 경제적 효용 가치라 할 수 있는 누적기준을 활용한 글로벌 공급망의 경제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장애요소로 보인다. 따라서 협정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다국적 생산과 소싱을 위시한 글로벌공급망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서는 ‘관세차별’ 조항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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