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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새롭게 떠오르는 국제통상의 핵심이슈, ‘안보’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상품, 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술, 노동력과 같은 생산요소와 자본에 이르기까지 교역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유롭게 국가 간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전 세계적 분업구도가 심화되는 현상을 ‘세계화’(globalization1))라고 한다.

 

1) 94년, 김영삼 정부시절 호주 시드니에서 한국의 세계화가 처음 천명되었다. 세계화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 세계화가 외국에 한국이 빅뱅 식으로 일시에 모든 것을 개방한다는 의미로 알려지자, 정부는 당황했다. 마침내 한국 정부는 영어 공식 문서에 세계화를 글로벌라이제이션 대신 ‘segyehwa’라고 표기하기에 이르렀다.(참조 : 시사저널, 1998.01)

 

이때의 국가 간 이동은 인위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동되는 것이다. 즉 양국 간에 존재하는 두 재화의 상대가격 비율 차이가 무역을 발생시키는 직접적 요인이다.

 

이로써 각국은 비교우위 상품 생산에 특화하여 교역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된다. 국제 분업(규모의 경제)와 교환의 이익이라 할 수 있다. 무역이 왜 이루어지는가를 설명하는 전통적 이론이다. 편하게 얘기하면, 똑같은 물건이라도 환율차이든, 생산요소의 차이든, 어떤 이유로 자국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싸다면, 수입해서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이 지속되면 다양한 국민경제들이 하나의 경제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세계화를 주도한 무역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그런데 세계화가 되기 위한 밑바탕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완벽하게 구현해 낼 수 있는 환경의 구축에 있다. A 나라의 a 물품이 매우 경쟁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B 나라까지 운반해 오는 물류비가 애초의 가격경쟁력을 뛰어넘는다면 결국 B 나라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a의 가격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무역이 발생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무역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학기술 특히 반도체, 컴퓨터(각종 소프트웨어) 및 통신관련 기술인 정보기술(IT)의 획기적 발달이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과거 그 어느 기술혁신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동차를 만드는 것 하나만 보아도 설계, 제조, 판매 전 분야에 IT기술은 쓰이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생산하고 의사소통하며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판매가를 낮췄다. 빠르기도 하려니와 한 번에 엄청난 규모의 물동량을 운반할 수 있는 운송수단과 항만 등 그 인프라도 구축되어 사실상 비교우위의 무역이론을 현실 무역에서도 어느 정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은 발전했다.

 

20세기 말 세계화를 급속도로 진전시키게 한 또 다른 요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극단적 대립을 일컬었던 냉전체제의 종식을 들 수 있다. 냉전체제에서는 각 진영에 속해있는 나라끼리만 주로 경제적 교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내 편을 단속하고 더 끌어들이려는 제한적 경제 교류다.

 

그런데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냉전체제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공산진영 또는 자본진영끼리 거래하던 것이, 시장기능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손해를 봐도 우리 편하고 거래하는 것이 아닌, 자국에 유리한 나라와 거래하는 자국 우선주의 시대로 변모했다.

 

GATT 21조 ‘국가안보 예외’ 조항이란

 

IT 등 과학기술의 발달과 냉전체제의 종식으로 세계화는 점차 완성돼 가고, 세계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으로 국민후생이 향상되는 무역이론은 점차 현실화 돼가는 듯 했다. 경제적인 이슈로만 볼 때는 비교우위 상품에 특화하여 규모의 경제 결과물인 질 좋고 가격도 싼 물품의 수출입을 하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경제적 수지타산으로만 설명이 되지 않는 이슈가 떠올랐다. ‘안보’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와 같은 이유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일본은 2019년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전격 단행했다.2) 한국은 이에 대응해 WTO 제소를 했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2) ‘日경제보복, 사즉생 정신과 담판외교가 필요한 지금’(고태진 월간조세금융 2019.08),

‘일본에 다시 꼬투리 잡히지 않는 방법’(고태진, 월간조세금융, 2019.10) 참조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11조에는 관세·조세·과징금 이외의 어떠한 수출 금지나 제한을 설정·유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 규정을 제소의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안보’상 우려를 주장하였다. 자국의 원료를 사용해 만든 한국의 반도체가 적대국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얘기다.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일본이 주장하고 있는 ‘안보예외’ 규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GATT 제21조는 WTO 회원국이 자국의 ‘중대한 국가 안보이익’의 보호를 위하여 취하는 필요한 조치에 대해서 GATT의 모든 의무가 면제되도록 허용하는 포괄적(all-embracing) 예외조항이다. WTO 회원 각 나라는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서, 자국의 안전보장의 이유로 또는 국제평화와 안보 유지에 협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둘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규정이다.

 

여기서 문제는 “중대한 안보이익”의 판단이 그 국가의 단독 재량사항이라는 데에 있다. 중대한 안보이익에 반한다고 스스로 판단된다면 안보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여하한의 조치에 대해 사전에 통보할 필요가 없다. 그 조치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WTO나 회원국들에게 사전승인이나 추인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규정이다. 따라서 어떤 국가가 스스로 안보이익을 침해받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 규정을 근거로 무역제한 조치를 취해도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워진다. 일본이 들고나온 규정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도 국가안보를 이유로 화웨이와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사인 SMIC 등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 260개(2021.7 기준)를 미 상무부의 수출관리규정(EAR; 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s)에 따른 우려거래자 명단(Entity List)에 등재하여 미국의 첨단기술과 제품이 수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미국의 첨단기술 획득이 힘들어진 중국은 이후 핵심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미국 첨단기술에 접근했다.

 

이를 감지한 미국은 ‘외국인투자위험심사현대화법(FIRRMA;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 of 2018)’을 만들어 외국인 투자(FDI)에 대한 안보 심사 대상 및 절차를 한층 강화시켰다. 이 모두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WTO에서 인정해주고 있는 GATT 21조에 근거한다.

 

‘요소수 대란’ 등 경제안보의 중요성

 

IT 등 과학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냉전체제가 종식되며 세계화라는 큰 틀이 형성됐다. 그 안에서는 오직 경제적인 이유로 최적화된 글로벌 공급사슬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숨겨진 맹점은 세계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일본의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소재 및 중국의 요소수 수출규제 등은 세계화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들이다.

 

하나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여러 나라를 거쳐 다양한 생산 단계를 통해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되고 소비되는 활동의 총체3)인 글로벌 공급사슬(GVC)의 종말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다. 이익보다는 안보가 더 중요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3) 네이버 사전

 

그 중심에는 자유진영과 권위주의 체제 간 대결구도로 형성되고 있는 ‘신’냉전체제가 있다. 서로를 믿지 못하여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핵심적인 소재나 장비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가격 싼 외국의 제품이 아닌, 비싸더라도, 또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자국에서 개발·생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자국의 경제 자립도를 강화하는데 각국은 열을 올리고 있다.

 

경제안보가 중심에 있고 통상이 무기화 되는 시대에, 우리도 정확히 현실을 직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통상의 분야를 지금처럼 산업자원부에서 다루어야 하느냐, 이전처럼 외교부에서 다루어야 하느냐를 두고 싸우고 있다고 한다. 양쪽의 얘기, 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경제안보를 방점으로, 첨단기술을 육성·발전시키고 이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지 않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필요해 보인다. 만시지탄하지 말아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새 판짜기에는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다.

 

<참조>

신국제경제법(박영사), 국제통상론 제7판(박영사)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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