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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중계무역에서도 FTA를 쓸 수 있다고?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엄청난 부를 축적한 해상왕(海商王), 장보고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해적들에게 잡혀 노비로 당나라에 팔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청해에 진영을 설치했다. 완도에 성을 쌓아 항만시설을 만들고 선박도 제조했다. 병사 1만 명을 배치하고 군사훈련을 하며 서남부 해안을 장악하며 해적을 소탕했다.

 

이것만으로도 장보고는 충분히 칭송받을 만하다. 하지만 장보고가 오늘날 해상왕으로 후대에 알려지고 추앙받는 것은 비단 군사적 업적만은 아니다.

 

청해진을 설치한 완도는 지리적으로 당나라와 신라, 신라와 일본을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오늘날로 얘기하면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했다. 안정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제해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신라·당나라·일본 사이의 삼각 무역을 주도했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에서 당나라로 가져온 서역의 물품을 신라와 일본에 팔았다.

 

당시 인기 있었던 도자기는 직접 청해진에서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로써 장보고는 바다 위를 아우르는 중계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해상왕 장보고’라는 명성이 나오게 된 이유이다. 海上王이면서 ‘海商王’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중계무역(中繼貿易, Intermediary Trade)은 인류무역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거래방법이다. 그런데 오늘날 다자간 협정의 진전이 느려짐에 따라, 이의 보완으로 지역무역협정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수출입 기업들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FTA 무역, 거래당사자 요건 만족시켜야

 

중계무역은 장사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거기에 이윤을 더해 일본에 팔았다. 이와 같이 중계인(中繼人)은 물품을 수입하되 이를 국내에 반입하지 않고 가공하지 않은 원형 그대로 직접 제3국에 수출하는 장사꾼이다.1)

 

1) 중계무역과 비슷한 무역유형 중 ‘중개무역(仲介貿易)’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국가의 수출입자 간의 거래를 중개하여 수출입자들이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를 이행하도록 알선하고 수수료를 그 대가로 받는 교역형태를 말한다.

 

대표적 지역무역협정인 FTA를 활용하여 수출입을 하고자한다면, 각 협정에서 요구하는 여러 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를 서류로 증빙해야 한다. 그 요건 중에 ‘거래당사자 요건’이 있다. 수출자와 수입자가 체약상대국에 서로 ‘소재’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 조건이다. 문제는 일반 무역과 FTA 무역에서의 수출자 정의가 다르다는 데에 있다.

 

중계무역과 같이 3개 나라가 관여하는 3국 무역에서의 중계인은 원(元)수출자와의 관계에서는 수입자로서, 원(元)수입자와의 관계에서는 수출자의 역할을 한다. 계약도 각각 체결되어 그 물품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받고 이전한다. 그런데 물류비와 시간의 절약을 이유로 중계인을 거치지 않고 원(元)수출자로부터 원(元)수입자에게 바로 수송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2) 대외무역관리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계무역은 수출할 것을 목적으로 물품 등을 수입하여 보세구역 등의 지역 이외의 국내에 반입하지 아니하고 수출하는 수출입을 말한다. 즉 규정상으로는 우리나라 보세구역 등으로 물품이 운송되고 이를 최종목적국으로 운송이 되어야 한다.

 

만약 한국기업 갑돌이와 미국기업 Smith가 와인에 대한 수입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와인의 생산은 미국이 아닌 Smith 지사인 칠레공장에서 생산되었고, 납기에 맞추고자 미국에 반입하지 않고, 칠레에서 바로 선적되어 한국으로 운송되었다. 물론 근본적으로 갑돌이와 Smith 간에 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INVOICE 상 수출자는 Smith로 서류작업은 되어 있다3).

 

3) 이를 ‘제3국 송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계약의 주체인 Smith가 있는 미국과 체결된 한-미 FTA를 거래에 이용하고자 Smith는 FTA원산지증명서를 작성하여 갑돌이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때 갑돌이는 과연 FTA 특혜를 받아 수입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이 거래에서 갑돌이가 전달받은 FTA원산지증명서는 무용지물이다. FTA협정세율로 신고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혹자는 ‘어? 미국 Smith가 수출자니까 맞게 작성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한 ‘거래당사자 요건’, 즉 수출자, 수입자, 생산자가 협정 당사국에 ‘소재’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FTA를 적용하면 안 된다. 그럼 당사국이란 무엇인가. FTA거래에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다. ‘물건’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무역계약은 한국 갑돌이와 미국 Smith가 했지만, 와인이란 ‘물건’이 생산되어 선적된 나라는 칠레이기 때문에 수출자는 칠레공장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FTA 당사국은 한국과 칠레가 되고, 한-미 FTA가 아닌 ‘한-칠레 FTA’ 규정을 따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FTA원산지증명서 상의 수출자는 미국 Smith가 아닌 ‘칠레공장’이 된다. 실제로 이를 오인해서 과세관청의 추징 처분에 대해 불복하고 기각 결정된 사례가 상당하다4).

 

4) 2017관0057, 2017관0147, 인천세관-조심-2015-311 외 다수.

 

FTA에서 수출자의 개념5)

 

ㅇ “수출자”라 함은 상품이 수출되는 체약당사국의 영역에 소재하면서 그 상품을 수출하는 인을 말함(한·EFTA 원산지 규정 및 AK-FTA 통관규정 제1조)

ㅇ 수출자는 통상적인 거래계약당사자, 수입신고서의 해외공급자와는 다른 개념으로 협정 및 특례법은 원산지와 관련하여 수출자를 규정- 수출자는 C/O 발급 또는 발급신청의 주체로서

C/O발급 권한 또는 발급신청 권한이 없는 인(人)은 수출자가 되지 아니함(특례법 시행규칙 제6조, 한·EFTA 원산지 규정 15조 및 AK-FTA 통관규정 제4조 등)

- 수출자는 자료보관의무를 부담하므로, 자료보관 의무 대상자가 아닌 제3국에 소재하는 인(人)은 수출자에 포함되지 아니함(특례법 제12조, 한·EFTA 원산지 규정 제21조 등 협정은 자료보관 의무자는 ‘exporter’로 규정)

- 수출자는 수입국 또는 수출국의 검증대상으로 비당사국에 소재하는 인(人)은 협정에서 검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출자에서 제외(특례법제13조, 한·EFTA 원산지 규정 제24조 4항, AKFTA통관규정 제14조 및 15조 등)

※ 인(人)은 자연인 또는 법인을 모두 포함

 

5) 한-칠레, 한-EFTA, 한-아세안 FTA 집행지침(관세청)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계무역 방식의 무역형태는 매우 오래전부터 있었고, 최근에는 국경 없는 무역환경의 변화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무역형태를 FTA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협정에서는 제3국 송장이니, 3자 거래니하는 모든 무역에서도 FTA를 활용할 수 있게 설계해 놓았다. 다만 협정에 따라 요구하는 증명방식이 다르니 주의해야 한다.

 

 

 

이렇듯 무역현실을 반영하여 중계무역 등 3국무역에서도 FTA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중계무역을 하는 대표적 이유는 장사를 해서 돈을 남기기 위함이다. 즉 원래의 수출자와 수입자간 직접 교류를 막고 중계상이 개입하여 100원에 수입해서 500원에 파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수출입자가 서로 알게 되어 중계상 없이 직거래를 하게 되면 양상은 달라진다.

 

아마도 서로 간 새로운 타협점인 300원의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거래하면 수출입자 모두 200원의 수익을 더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계상 입장에서는 400원의 수익 모델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중계상은 수출자와 수입자정보를 서로 간 알 수 없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설령 물건이 직접 최초 수출국에서 최종 수입국으로 이동이 되더라도 어디서 물건이 오고가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스위치(Switch) B/L이 그것이다. 이 B/L은 원래의 B/L을 반납하고 생산자(수출자)의 정보를 숨기고 새로이 중계상을 선적인(수출자)로 바꾼 선하증권이다. 물론 이때 고객사인 최종 수입자와 계약된 제품의 금액으로 수정도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최초 수출업자 및 수출가격이 노출되지 않게 되어 중계상은 안심하고 중계무역의 비즈니스 모델을 지키게 된다.

 

그런데 FTA를 중계무역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원산지증명서 상에 물품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원래의 수출자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이는 수출자 정보가 수입자에게 그대로 노출되어진다는 말이 된다. 여러 나라에 생산체제와 유통망을 갖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게는 FTA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러나 중계 차익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중계상에게는 자칫 큰 치명상을 입을 수 있어, 실제 무역환경에서는 FTA활용이 어려워지는 한계가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관세청 공익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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