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지난 글에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확보가 최근 들어 국제통상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체결한 FTA를 활용해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FTA 특례기준인 누적기준을 제시하였고 이의 전반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난 글에 이어 누적기준을 형태에 따라 구별한 양자누적, 교차누적, 유사누적, 완전누적을 사례와 함께 좀 더 깊이 있게 다뤄보고자 한다.
1. 양자누적
양자누적(bilateral cumulation)은 누적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FTA 체결 ‘당사국’의 ‘원산지’ 재료(originating material)를 자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누적이다. 양자누적은 최종 생산품에 들어간 체결 상대국산 원재료가 그 협정에서 정한 원산지기준을 통과한 ‘역내산’ 원재료일 경우에만 유리하게 원산지 판정이 진행된다. 따라서 역내에서 일정 수준의 공정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원산지 지위를 얻지 못한다면 (설령 원재료를 만드는 데 들어간 역내산 원재료와 공정이 있더라도) 그 전체 원재료를 역외산으로 간주하게 된다. 생산 및 공정 여부와 관계없이 재료가 원산지인지 아닌지만 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재료누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 교차누적
FTA 당사국간 무역(intra-FTA)에서의 원산지재료 누적뿐만 아니라 ‘다른’ FTA 당사국간 무역(inter-FTA)에서의 누적을 허용하는 것을 교차누적(cross cumulation)이라 한다. 대표적으로 한-캐나다 FTA, EU-베트남(이하 ‘EV’) FTA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이때 서로 달리 체결한 협정에서 규정한 원산지규정은 동일할 필요는 없다. 또한 협정에서 정한 ‘특정 품목’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대표적으로 한-캐나다 FTA에서의 ‘미국산’ ‘자동차 부품’에 대한 누적과 EV FTA에서의 ‘한국산’ ‘직물’의 누적규정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직접 당사자가 아닌 다른 나라들끼리의 협정에 있어 우리 기업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므로 일단 신경 쓸 필요는 없다1). 그런데 EV FTA는 얘기가 좀 다르다. EU와 베트남, 둘 사이 맺은 협정이지만 우리 기업에게 영향을 직접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1970년대 정점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개발도상국 등에 밀려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섬유산업’이 그렇다. 이렇게 된 이유는 생뚱맞게 두 나라 협정에 우리나라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1) 물론 세계화(Globalization)되어 있는 현재의 경제생태계 하에서는 타국간의 협정도 외부효과로 인해 우리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그것은 그것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한다.
2) 제6조 불충분한 작업 및 가공
운송, 보관 시 제품상태가 양호하도록 유지하는 보존공정‧포장의 해체 및 조립‧세탁, 세척, 먼지‧녹‧기름 등의 제거‧섬유제품의 다림질, 압착‧단순 페인팅 및 광택 작업‧곡물 및 쌀의 탈각, 부분 또는 전체 표백‧당류 착색, 각설탕 공정, 결정당의 부분 혹은 전체 제분‧과일, 견과류, 채소류에 대한 탈피, 탈각, 씨 제거‧연마, 단순 분쇄, 단순 절단‧등급화, 선별, 분류, 매칭‧병, 캔, 플라스크(flasks), 가방, 케이스, 박스 등에 단순히 넣기 등 단순 포장 공정‧제품의 단순한 혼합(mixing), 재료와 설탕의 혼합‧제품 또는 제품 포장에 로고, 라벨 등의 부착 혹은 인쇄‧제품의 희석, 변성, 건조‧완전 물품을 구성하는 부품의 단순 조립 또는 부품으로의 단순 분해‧전술된 공정 중 2개 이상 공정의 조합‧동물 도살
이 규정에 따라 베트남에서 제조되어 EU로 수출되는 의류(HS 61류, 62류)에 결합되거나, 추가 가공을 거쳐 사용된 한국산 직물(fabrics)은 베트남산으로 간주하여 원산지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주의할 점으로 한국산 직물을 판정할 때 적용하는 원산지규정은 EV FTA가 아닌 한-EU FTA 원산지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캐나다 FTA에서 미국산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판정을 한-미 FTA나 USMCA(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의 원산지규정을 따르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후술하는 유사누적(Diagonal cumulation)과는 큰 틀에서 동일하나 협정별 원산지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데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교차누적은 유사누적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한다. 또한 유사누적이 유럽의 시스템이라고 하면, 교차누적은 미국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3. 유사누적
유사누적은 3개 이상의 나라가 서로 상호간 FTA가 체결된 상태에서 각 FTA 당사국간에 제3국의 원산지 누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교차누적’과 유사하지만, 교차누적은 각각의 FTA가 동일한 원산지규정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협정에서 특별히 명시한 특정 품목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유사누적과 차이가 있다.
즉 유사누적은 각 FTA의 원산지규정이 같아야 하며, 품목을 가리지 않고 적용할 수 있다는 데 특징이 있다. EU에서 시작된 이러한 PAN-EURO 누적시스템3)은 국토가 작고 부존자원이 충분하지 못한 EC 회원국들이 EC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변국들로부터 의미 있는 원재료와 부품을 조달하여 생산하는 글로벌소싱 및 생산구조를 갖추려는 요구에서 시작되었다.4)
3) EU는 EU가 체결한 유럽 및 지중해 국가들 간의 FTA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비록 FTA 당사국이 아닐지라도 누적을 인정하는 범유로지중해 누적(Pan-Euro-Med cumulation)을 채택(참고: 무역업계가 알아야 할 FTA 원산지 누적조항의 비교 및 시사점. 2016. 05. 한국무역협회)
4) 참조 : 누적기준을 활용한 FTA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권순국, 2012)
아래의 도식 사례에서 A국과 B국, B과 C국, C국과 A국은 각각 양자간 FTA를 체결했다. 3개 FTA 모두 원산지기준이 같다고 했을 때, A국과 C국은 각각 B국에 별도로 체결한 FTA 원산지규정을 충족하는 부품을 공급했다. 원칙적으로 각 FTA에서 B국이 생산한 완제품에 소요된 A, C국의 부품은 다른 협정국으로 수출할 때 원산지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유사기준을 도입하게 되면 B국은 각자의 협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원산지를 인정받은 부품을 사용하였으므로, B국이 생산한 최종 제품의 원산지는 A, B 나라에서 수입한 원재료도 모두 B국산으로 함입 판정하여 역내산으로 A, B국에 FTA특혜를 받아 수출할 수 있게 된다.
4. 완전누적
완전누적(full cumulation)은 체약국이 다수인 경우 역내 국가 내에서 수행되는 모든 재료와 공정이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재료, 부가가치, 공정 ‘모두’를 누적하는 것을 말한다. 즉, FTA를 체결한 당사국의 원산지 재료(originating material)에 대한 누적뿐만 아니라 ‘비원산지 재료’(non-originating material)의 역내 공정 및 부가가치 누적까지 인정한다. FTA를 체결한 역내 전체가 ‘하나의’ 영역(free trade zone)으로 보고 역내에서 사용한 재료, 수행한 공정 및 작업도 함께 고려해 원산지를 판정하는 것이다.
완전누적은 비원산지 재료일지라도 그 재료 생산에 수행된 역내 공정과 부가가치를 모두 인정하기 때문에 역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기업은 역내국에서 가장 효율 높은 공정과 재료를 충분히 고려하여 생산 및 판매 설계를 할 수 있다. 매우 이상적이다. 그러나 완전누적기준을 적용해 원산지 판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만든 제품뿐만 아니라 역내국에서 공급받은 모든 재료의 원가 및 공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요구된다.
완전누적은 협정 및 품목별원산지기준(PSR) 즉, 세번변경기준, 부가가치기준, 가공공정기준 등에 따라 누적 적용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통상 완전누적은 부가가치기준의 PSR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세번변경기준과 기타 가공공정기준에서도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세번변경기준의 PSR인 품목에 대한 NAFTA 사례를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5) 참조 : 다자간 FTA 확산에 따른 누적기준의 이해와 활용방안(2017. 03.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따라서 체약 당사국의 모든 생산과정을 누적할 수 있는 완전누적은 원산지재료와 비원산지재료에 대한 원산지증빙이 필수적이다. 원산지재료에 대한 원산지증빙은 일반적인 누적기준에도 활용되고 있는 해당 협정의 FTA원산지증명서를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비원산지재료에 대해서는 당해국 발생 부가가치와 가공공정 등에 대한 원산지증빙이 필요한데 이는 FTA 원산지증명서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서류가 필요하다.
이 경우 국내 거래에 있어서는 국내제조(포괄)확인서가 그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가 체결한 협정에서는 부가가치 등의 원산지증빙을 위한 국제적 원산지 유통서류가 없다. 설령 국내제조(포괄)확인서와 유사한 재료의 원가 및 공정 등의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국제 원산지 유통서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의 활용은 매우 저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협정 당사국에서 수출하는 비원산지재료의 주요 생산공정, (비)원산지 재료의 HS, 품명·규격, 수량 및 단위, 가격을 기재해야 하는데 원재료를 수출하는 회사에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6)
6) 참조 : FTA 국내제조(포괄)확인서 알고 쓰고 계십니까?(고태진, 2021. 09. 월간조세금융)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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