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호랑이와 곶감이라는 전래동화가 있다. 이 동화에서 우는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만든 것은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고 바로 달콤한 곶감이었다. 오늘날 곶감을 대신해 ‘뽀로로’가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뽀통령’, ‘뽀느님’ 등의 말은 모두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뽀로로의 위엄을 표현해주는 말들이다.
필자가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독일인 친구가 영국인 남편, 4살 아들과 함께 휴가차 한국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나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금세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다만 학창시절 때와는 대화의 내용이 좀 달라졌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대화의 반을 차지하는 듯 했다.
독일 친구는 집에 있는 뽀로로 인형을 보자 자국에서도 아들의 젓가락으로 뽀로로 캐릭터가 있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어 구매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름 한국인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주로 캐릭터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더 그런 감정이 들었던 듯하다.
미디어 확장으로 유효 시장 가치 대폭 성장
캐릭터 산업은 보통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보편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접근한 후 이를 캐릭터 등을 이용하여 산업화하는 구조로 선순환하게 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작업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비교적 작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큰 자본의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다. 투자를 통해 수익의 창출은커녕 원금도 회수하기 힘든 구조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이윤 창출을 기본으로 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애니메이션 등 산업에 대한 매력이 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최첨단 IT 산업의 급진적 발전으로 유튜브, 넷플렉스 등 세계 어디에서든 장벽 없이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이 대세인 환경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캐릭터 산업은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가 훨씬 큰 유효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군이라 할수 있다.
국제 지재권 분쟁예방 ‘TRIPs’ 협정
그런데 콘텐츠에 접근하는 기술적 환경은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기만 한다고 해서 양질의 투자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힘들게 창조해낸 캐릭터를 아무나 거리낌 없이 무단으로 사용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다. 캐릭터를 포함한 지적재산의 무단 사용은 다시 말해 동 산업군의 퇴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악순환을 방지하고자 국제 통상 체제에서 마련한것이 TRIPs(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협정이다. 이것은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으로 해석되며 특허권, 의장권, 상표권,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다자간 규범이다.
즉, 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를 강화하고 침해에 대한 규제수단을 협약으로 정하고 있으며, 세계무역기구(WTO)회원국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이로서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를 개발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세계적으로 보호해주고 또 재투자를 유인하여 더 나은 결과물을 나오게끔 하여 인류 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놓게 되었다.
이렇듯 나날이 그 영향력이 막강해지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국제 사회에서의 인정과 보호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에 있어 오늘날 매우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적재산권의 성장 배경
그런데 처음부터 지식재산을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해준 건 아니다.
1948년 발족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는 1960년대까지 총 6차례의 다자간 무역협상을 진행하였다. 이때까지의 협상은 상품의 관세인하와 관련한 협상만이 그 대상이었다.
그런데 1973년부터 1979년까지 개최된 제7차 동경라운드에서부터는 다루어지는 그 대상내용이 매우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즉 관세인하는 물론이려니와 비관세장벽의 완화를 위해 반덤핑, 보조금상계관세, 기술 장벽 등 9개 분야에 걸쳐 다자간협정(MTN Code)을 체결한 것이다.
지재권 보호문제의 필요성과 통상문제로서 GATT에서 검토한 것도 동경라운드에서이다. 그러나 이 협상기간 동안에는 아쉽게도 결론으로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전 협상에서 검토가 시작된 지재권 보호와 관련한 국제사회에서의 보호체계는 1986년에서 시작되어 1994년에 마무리된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비로소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는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엄청난 경기침체와 그로 인한 높은 실업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불어 닥친 경제파국으로 GATT 체제에 새로운 도전과제를 준 상황에서 개최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역의 대상도 과거 상품에 국한되었던 것이 금융·건설 등 서비스와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으로 다양화됨으로써 이에 대한 새로운 무역규범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렇게 시대흐름적으로 위기의 기로에 선 국제경제환경에서 개최된 다자간 무역협상이 ‘우루과이라운드’인 것이다.
한편, 미국은 거대한 재정적자 및 경상수지적자 등으로 하강하고 있던 자국의 경쟁력을 회복하여야 할 입장에 있었다. 이를 회복하고자 주장한 것이 지식재산권 부분이었다. 당시 미국이 강점을 보이고 있던 지식재산권을 GATT 체제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다.
이에 유럽 등 주요 국가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를 보였고, 결국 지재권 문제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의제의 하나로 포함되는 성과를 보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협상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다자간 협상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지재권 보호 문제가 의제로 선정되었고, 그 결과로 1994년 출범한 WTO의 부속협정으로 채택되었다. TRIPs 협정은 총 7부, 73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지적재산권의 국제적인 보호를 강화하고 침해에 대한 구제수단을 명기하였는데, 세계무역기구(WTO)회원국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도 종전의 개별적인 협약과 다른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지재권 보호에 관한 협정으로는 UN 전문기구인 WIPO(세계지적재산권기구, World Intellectual Property Organization)가 관장하고 있는 파리협약, 베른협약, 로마협약 등이 있었으나 미국 등 선진국은 이들 기존 협약들로는 보호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TRIPs를 통해 지재권 보호를 WTO 체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원국은 이 기준을 엄격하게 준수하여야 되는 의무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 규범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련 협약이 속지주의에 따른 내국민대우만을 보호대상으로 삼은 것과는 달리 최혜국대우(제4조)를 원칙으로 하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고 그 적용시점도 각국의 경제발전 단계별로 협정발효부터 협정내용 이행까지 경과기간을 부여하여 30여개 선진국들은 1996년 1월부터, 개도국은 2000년 1월부터, 최빈개도국(LDC)은 2006년 이후 TRIPs 협정의 적용을 받는다.1)
1) NEW 경제용어사전(미래와경영연구소) 참조
이로써 지재권 보호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다자간 국제규범이 완성되었고 지재권 보호 강화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지재권 소유국에 대한 사용료 지급의 증가가 있을 수 있어 해당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모방을 넘어 고도화되는 우리 기술에 대한 보호 수준이 한층 높아졌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앞선 ‘뽀로로’와 같은 캐릭터 등을 다른 나라에서 함부로 흉내낼 수 없게 하는 모방방지 역할을 동 협정은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환경은 기술이 있고 가진 자의 편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관세청 공익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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