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국제통상에서는 거래상대방 또는 자기 자신의 이유로 특별한 요구를 하거나 받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로부터 목재를 수입하는 수입상이 관세를 적게 낼 목적으로 수입목재의 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고자 수출상에게 저가로 작성된 상업송장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당연히 관세를 포탈하기 위한 불법적 목적이므로 과세당국으로부터 적발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따라서 악의적 수입상은 정상거래로 보이기 위해 저가로 신고한 금액을 초과하는 차액부분이 노출되지 않게 비밀스러운 제3의 계좌를 이용해 수출상에게 송금하고자 할 것이다.
이번엔 반대의 경우다. 중국으로부터 의류를 수입하는 자가 수입대금을 중국 수출상의 요청으로 그가 알려준 사람의 국내계좌에 입금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는 중국에 원단을 수출한 후 수출상의 회사직원 명의 국내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수출거래와 전혀 관계없는 자로부터 수출대금을 영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도 매우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사례는 너무도 명확하게 세금 포탈의 의지가 있었으므로 관세법을 위반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는 사람이 살면서 여러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수출상은 합의된 물건을 제때 선적하면 되고 그에 따른 대금은 어떤 식으로든 받기만 하면 되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외국환거래법 규정 및 신고의무
위 세 가지 사례들은 공통점이 있다. ‘은행’을 통해 송금과 수금1)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수출입 직접 ‘당사자’인 수출상과 수입상 사이에서 대금이 결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1) 외국환거래법에서는 송금이나 수금 등의 표현대신 ‘지급’ 또는 ‘수령’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외국환거래법에서는 외국으로의 송금 등은 원칙적으로 ‘은행’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은행을 통해야만 송금 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법은 모든 외환의 거래는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하여 국민경제 활동의 원활화를 돕고 있다.
다만 적어도 그 유출입의 내용은 국가가 파악하여 외환 관리를 해야 하므로 은행을 통해 송금 등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즉 시중은행에서 송수금이 일어나면 그 내역이 외환전산망을 통해 한국은행으로 그 정보가 들어가 우리나라와 외국 간의 환거래 내역에 집중되고, 그를 통해 외환의 거래를 투명하게 모니터링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만약 은행을 통하지 않고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가거나 들어온다면 그 사실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어 지하세계의 자금줄로도 사용될 수 있게 된다. 외환거래의 ‘자유’와 외환거래의 ‘모니터링(관리 및 통계수집 등)’이라는 서로 상반돼 보이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고 제도를 두게 됐다. 즉 은행을 통하지 않는 송금 등을 할 때, 한국은행 총재에 그렇게 하는 자가 스스로 신고하게끔 하여 앞선 충돌되는 부분의 접점을 만들었다.
상기 사례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 수출입 당사자 이외의 제3의 계좌로 송금이 이루어진 부분이다. 이를 제3자 지급이라고 하는데, 거주자가 당해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자에게 지급하거나, 당해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거주자가 당해 거래의 당사자인 비거주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2).
2) 외국환거래법은 외국환거래의 주체를 거주자와 비거주자로 나누어 신고의무 등을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즉 외국환거래법은 국적이 중심이 아닌 실질적인 경제활동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비)거주자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즉, 수출자는 계약 물건을 선적하고, 그 반대급부로 수입자는 거래 당사자인 수출자에게 직접 물품대금을 송금해야 한다. 관세당국에는 물건을 A로부터 수입했다고 신고하고 대금은 엉뚱한 B에게 송금한다면 정부는 이 둘의 관계를 알지 못하므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도 위 은행을 통하지 않는 송수금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외환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사전에 한국은행 총재(미화 1만 불 이하인 경우 외국환은행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즉, 계약 당사자 이외의 제3자와의 결제를 통해 불법적인 자본의 유출, 마약 등 불법자금의 세탁, 관세 등 조세회피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를 불식 시기키 위해 신고의무를 두고 있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환치기’란
신고를 하고 송금 등을 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악의적으로 그 의무를 저버린 채 불법 외환거래로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환치기’다. 환치기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수출자(송금 수취인), 수출국 중개업자(환치기 중개인), 수입자(송금 의뢰자), 그리고 수입국 중개업자(환치기 중개인)가 그것이다.
상기 첫 번째 사례에서 수출자와 수입자는 저가수입과 차액대금에 대해서 과세당국이 모르게 송금해야 하고 그 방법으로 환치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하자. 이때 차액대금은 다음의 환치기 프로세스를 통해 수출자에게 전달된다.
1. 수입자가 수입국 중개업자(계좌주)에게 송금의뢰 및 원화 입금
2. 수입국의 중개업자(계좌주)는 수출국 중개업자(계좌주)에게 입금 통보 및 지급 지시
3. 수출국 중개업자(계좌주)는 수출자에게 현지화폐로 지급
즉, 국가 간에 상호신뢰를 가진 두 불법 환치기 중개인이 공모하여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후에,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하면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화폐로 인출하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일컫는다.
정상적인 외환의 환전절차 없이 “환(換)을 바꿔치다”는 의미에서 “환치기”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환치기는 관세 등 세금포탈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사용할 유흥자금 또는 해외도박·마약밀수·재산국외도피 등의 불법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용된다.
최근 해외 불법 카지노 에이전트 조직이 해외 원정 도박 자금과 가상자산 차익 거래를 목적으로 260억원 상당의 불법외환거래가 서울세관에 적발된 바 있다.
지난해 마지막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적발된 불법 외환거래 규모가 13조원대며, 이 중 96%가 환치기·외화밀반출 등의 외환사범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불법외환거래의 대부분은 환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불법외환거래 수사 과정…인지부터 쉽지 않아
불법외환거래 수사는 먼저 관련 외환법령의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 이의 구체적 증거, 즉 자금의 흐름과 최종적 소재 등을 역추적해야 한다. 그런데 수사의 첫 단추인 관련 법령의 위반 사실의 ‘인지’부터가 쉽지 않다.
애초에 밖으로 드러내지 않을 목적으로 지하세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일이어서 우연한 계기로 꼬리가 잡히지 않는 한 선제적으로 외환사범을 찾기 어렵다. 주로 첩보에 의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외환사범에 대한 조사는 매우 난이도가 높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적발이 어렵다고 한다. 코인 등 정보과학기술의 급진적 발전과 함께 불법 외환거래 수법도 한층 교묘해지고 지능화되어 그 적발과 조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환치기는 외국환관리의 국가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짓이다. 그에 비해 처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원 이하3)의 벌금이 전부다. 불법 외환거래를 막기 위한 예방과 조사기법의 고도화도 매우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3) 위반행위의 목적물 가액의 3배가 3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벌금을 목적물 가액의 3배 이하
그러나 설령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 외환사범을 잡았다 해도 거기에 들어간 수많은 에너지와 노력에 비해 처벌기준은 확산되고 있는 환치기범에 경종을 울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일벌백계하여 패가망신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자칫 불법의 유혹에 노출되어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처벌의 강력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해 보이는 때이다. ‘몸으로 때우면 된다’라는 의식이 발붙여지면 안 된다.
새해가 밝았다. 작년의 과오를 넘어 악의적 외환사범 ZERO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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