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관세환급제도’는 관점에 따라 수출 보조금으로 보일 수 있다.
수출 보조금은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행위로 보조금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나라는 그만큼의 무역 보복 조치를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다.1)
1) 참조: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분쟁의 씨앗, 보조금’, 고태진, 2021.02, 월간조세금융
그러나 WTO는 수출품에 사용된 수입 중간재에 대한 관세환급이나 면제는 WTO 보조금 및 상계관세 협정에서 금지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 경쟁국인 일본, 중국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는 보편적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세환급제도가 한-EU FTA 협상 당시 막판 최대 걸림돌로 작용된 바 있다.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FTA와 관세환급제도인데 왜 EU는 이것에 그리도 집착하여 협상 결렬까지 생각한 원인이었을까.
이에 대해 ‘공정성 시비와 역(逆)수입의 문제’, 그리고 역외국인 ‘제3국의 무임승차 문제’가 그 핵심이었음을 지난 글2)에서 언급한 바 있다.
2) 참조: ‘확산되는 FTA속, 관세환급일병 구하기’ 고태진, 2023.06, 월간조세금융
이 밖에도 확산하는 FTA 환경에서 관세환급제도를 유지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경제효과를 또 다른 측면으로 살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지 살펴보고자 한다.
관세환급제도 유지의 부정적 경제효과
1. 대체 환급의 문제
관세환급특례법 제3조 제2항에서 물품생산에 사용된 국산 원재료와 수입 원재료가 같은 질과 특성이 있어 상호 대체 사용이 가능하고, 생산과정에서 국산 원재료와 수입 원재료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수입된 원재료가 수출재 생산에 사용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표> 관세환급특례법
제3조(환급대상 원재료) ① 생략 ② 국내에서 생산된 원재료와 수입된 원재료가 동일한 질(質)과 특성을 갖고 있어 상호 대체 사용이 가능하여 수출 물품의 생산과정에서 이를 구분하지 아니하고 사용되는 경우에는 수출용 원재료가 사용된 것으로 본다. |
즉 제품 생산에 투입되는 원재료의 질과 규격 등이 동일해 물리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이를 굳이 국산과 수입산으로 나누어 각각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다. 관세환급을 받기 위해 무리해서 비용과 시스템을 투입하는 것은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환급제도의 취지에도 반한다. 이것은 국내규정 뿐만 아니라 WTO 보조금협정과 교토협약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표> WTO 보조금협정 부속서3
- 환급제도는 투입요소가 다른 상품의 생산과정에 소비되고 그리고 그 다른 상품의 수출이 수입된 투입요소를 대체하는 투입요소와 동일한 품질과 특성을 갖는 국내산 투입요소를 포함하는 경우 수입요소에 대한 수입 과징금의 환불이나 환급을 고려할 수 있다. - 환급이 청구되는 특정 수입선적분을 수출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체 환급 규정의 존재는 그 자체가 보조금을 수반한다고 간주되지 아니한다. |
<표> 교토협약 특별부속서 F
제3장(환급) - 동종물품(equivalent goods)이라 함은 관세환급절차하에서 대체되는 물품과 성상․품질 및 기술적 특성이 동일한 내국 또는 수출을 말한다. - 국내법령은 수입관세 및 제세를 부담한 물품이 수출물품의 생산에 사용된 동종물품으로 대체되었을 경우의 환급절차의 적용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여야 한다. |
그런데 FTA 등 지역무역협정이 확대되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본디 대체환급재료 규정은 지불한 관세를 환급받기 위해서 밟아야 할 여러 신경과 행정비용 등의 이유로 동일 질과 규격이라면 차라리 국산 원재료를 사용할 유인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나라와의 동시다발적 FTA 발효는 국산과 외산과의 대체여부 문제가 아닌 관세율이 서로 다른 ‘수입 원재료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대체가능한 원재료가 협정별로 관세율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수입되어 제품 생산에 투입되어 수출되거나 내수 판매되었을 때 관세환급은 상대적으로 관세율이 제일 높은 상대국에서 수입된 원재료에 대해 신청하게 될 공산이 커진다.
환급액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높은 관세를 납부한 원재료로 만든 제품은 사실 국내에서만 판매가 이루어졌음에도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다.
과다환급의 전형이며 WTO 보조금협정 위반 가능성뿐만 아니라 국산 원재료 사용 촉진과도 거리가 멀다. FTA에도 원산지재료와 비원산지재료를 구분해서 제품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상당한 비용이 드는 대체 재료에 대해서는 회계적으로 구분하여 원산지 판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산지특례기준이 있다.
다만 물리적으로 구분했을 때보다 더 많은 제품이 원산지의 지위를 갖지 않도록 하고 있다. 관세환급에서 과다환급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는 것과 대칭되는 내용이다.
현재 국내외 규정에서는 국산 원재료와 외국산 원재료 간의 대체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즉 관세율이 다른 ‘외국산 원재료 간’의 대체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는 곧 과다환급과 연결되는 문제이고 이내 수출보조금으로 해석되어 WTO 보조금협정 위반으로 통상마찰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표> [참고] 한-EU FTA 제1절 원산지 규정
제11조 (재료 구분 회계) 1. 동일하고 대체 가능한 원산지 및 비원산지 재료가 제품의 생산에 사용되는 경우, 그러한 재료는 보관되는 동안 그 재료의 원산지에 따라 물리적으로 구분된다. 2. 제품의 생산에 사용된 동일하고 대체 가능한 원산지 및 비원산지 재료의 재고를 구분하여 보관하는 데 상당한 비용 또는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하는 경우 그 생산자는 재고의 관리를 위하여 이른바, “구분 회계”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3. 이 방법은 그 제품이 생산된 당사자에서 적용 가능한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에 따라 기록되고 적용된다. 4. 이 방법은 특정 참조기간 동안 재료가 물리적으로 구분되었을 경우보다 더 많은 제품이 원산지 지위를 부여받지 아니하도록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5. 생략. |
2. 간이정액환급제도의 과다환급 가능성
관세의 조세법적 특성만을 앞세워 원칙만 고집한다면 그 관세환급 과정의 복잡성으로 중소기업에 가혹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해 나온 간이정액환급제도는 제조 수출업자가 수출만 하면 투입된 원재료가 국내산이든 수입산이든 가리지 않고 지원해 주는 대표적 중소제조수출기업 지원책이다.
동시에 국산원재료 사용 촉진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FTA가 확산되면서 과다환급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즉 제품에 투입된 원재료가 모두 FTA 체결국에서 수입되어 납부한 관세가 없음에도, 그 재료를 갖고 만들어진 제품이 수출되면 이 제도를 통해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불성설이다. 낸 돈이 없는데 돌려받는다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과거 지역무역협정이 지금처럼 확산되기 전의 관세환급제도는 이슈화될 만한 근본적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기술한 바와 같이 FTA 등 지역무역협정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지금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한-EU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교역의 확대 등에 더 도움이 된다고 설득한 바 있다.
관세환급제도 유지의 필요성
이론적으로 볼 때 EU 등의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긴 하다. 그러나 오히려 EU의 주장은 불공정 경쟁을 야기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EU는 27개의 여러 나라가 합쳐져 있는 연합체이고 미국 또한 덩어리 자체가 매우 큰 나라이다.
즉 경제규모가 워낙 크고 역내 중간재 조달이 쉽다. 환급 제한으로 인한 피해가 그리 크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작고 중간재 산업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재료, 중간재를 역외국을 포함한 다른 다양한 나라로부터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산지 규정으로 인해 제3국의 중간재 등의 사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급 또한 금지 시킨다면 이중으로 중간재를 제한하는 것으로 옥상옥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글로벌 가치사슬로 인해 여러 나라를 넘나들다 수입되는 중간재에 대한 환급 제한은 무역 확대에 부정적 효과로 작동할 수 있다. 한-EU FTA 협상에서도 우리 측은 유럽시장에서 우리의 경쟁상대인 일본, 중국 등이 관세환급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폐지하게 되면 FTA 관세철폐 효과가 떨어져 양자 교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관세환급제도는 WTO 보조금협정 등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된 규정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동일한 최혜국대우를 하는 것이 아닌 체결 당사국에만 특혜를 주는 FTA에서는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해 문제의 소지를 미리 파악해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지금의 관세행정에 좀 더 드라이브를 강력히 걸어 FTA 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관세환급의 고민과 행정비용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간이정액환급제도의 개선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정액환급 대상 품목을 정할 때 빅데이터를 활용해 주로 FTA 체결국으로부터 수입되어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원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 제품에 대해서는 대상 품목에서 제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국산 원재료로 대체 가능한 제품에 대해선 대상 품목으로 과감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는 관세환급을 진정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이기도 하다. 지금껏 중소기업, 즉 약자 지원을 보조금협정 위반으로 제소하는 국가는 한 곳도 없었기 때문에 이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현)경인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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