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세계에서 통한 K-콘텐츠 열풍
MZ세대에게는 사뭇 낯설겠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일본 영화나 노래 같은 문화콘텐츠의 수입은 법으로 규제되었다. 즉, 텔레비전에서 일본노래나 드라마는 볼 수 없었다. 일본의 한국 강점기 동안 자행한 한국문화 말살정책의 역사는 일본의 문화를 한국민 정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정서적 문제 외에도 당시 최고 수준인 일본의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 결과물은 한국의 그것과 질적인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개방과 동시에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왜색문화가 일방적으로 침투될 것을 우려했다. 수없이 외세로부터 침략을 받아온 역사의 우리로서는 알게 모르게 DNA에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 유전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는 1998년, 각계각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대중문화를 단계적으로 개방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미 선진화된 일본대중문화에 우리 문화는 종속되고 점차 한국민의 의식은 일본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정적 여론 속에 강행된 문화개방은 20여년이 흐른 지금 초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어린 나이에 일본에 진출한 가수 보아는 오리콘 차트를 제패했다.
이후 슈가, 주얼리, 이수영, 이정현, 비, 세븐, 동방신기, 빅뱅, 카라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대중 가수들이 K팝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가요계를 휩쓸었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일본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욘사마’ 신드롬까지 낳았다. 한마디로 기우였다. 한국 문화가 과거 정치, 외교 역사의 과오로 그 힘이 가려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K-Culture는 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뽀로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성공적으로 세계에 진출했고 급기야 방탄소년단(BTS)은 전 세계적인 팬덤 현상을 일으키며 월드 팝시장을 강타했다. 영화 시장에서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까지 이뤄내는 기염을 토해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관람해야 하는 극장문화가 위축되면서 가정에서 편하게 즐기는 OTT서비스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K-Culture는 기다렸다는 듯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동시에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전통 놀이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지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문화’는 과거 국력을 상징했던 군사력이나 단순 경제력과 달리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힘이 있다. 이게 문화의 힘이자 소프트(Soft)의 힘이다.
실제로 오랜 역사를 통해 문화적 자신감이 충분해 보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이집트, 인도 등도 문화상품(cultural products)의 무역자유화에는 부정적 견지를 보이고 있다. 이미 영화 등 문화상품에 있어 최고 수준에 있는 미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미국의 생활양식이 유럽 등에 자연스럽게 침투되어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결국 정신적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
1) W. Drozdiak, With Deadline Looming Before Trade Talks, U.S.,France Trade Blame, Washington Post, Oct. 16, 1993, p.A14
K-콘텐츠의 장기적인 성장 과제
이와 같이 하드파워라 할 수 있는 군사력 등에 비해 그 파급력과 경제와 같은 외부효과로의 확장성은 소프트파워인 문화산업이 압도적 우위를 보인다. 실제 BTS는 ‘아미’라는 전 세계 팬이 형성되어 그들의 정신과 행동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빌보드 1위에 선정된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1조 7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분석하고 있다2).
2)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출처
바야흐로 그동안의 누적된 내공이 폭발하여 K문화의 융성기를 맞이한 지금이다. 이를 더욱 외부에 파급하고 직간접적 경제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골든타임인 것이다.
한때 홍콩영화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인기는 안타깝게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에 서툴렀거나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POP(음악),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웹툰, 소설, 캐릭터 산업 등등으로 다변화, 다양화해야 한다. 영화 하나에서도 SF, 로맨스, 코미디, 공포,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로 접근, 개발해 내야 한다.
문화상품 개발이라는 본질적 부분과 함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국제통상규범의 철저한 분석과 이행이 그것이다. 어렵게 창작된 문화상품이 대가(代價)없이 무단으로 해외에서 다운로드, 불법복제되어 유통된다면,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한국문화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하자 중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여우쿠(優酷)’에서 ‘오징어의 승리’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타이틀만 비슷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 놀이’, ‘도전’ 등의 홍보 문구와 분홍색 동그라미·세모·네모 등을 사용한 포스터 디자인까지 그대로 옮겨 왔다.
누가 봐도 오징어 게임을 그대로 모방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내 중국 네티즌들의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결국 제목이 수정되었다. 하지만 내용은 두고 볼 일이다. 멀리 있는 영국의 BBC조차도 “중국 제작사들이 한국 콘텐츠를 표절하는 것이 늘 있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중국의 랩 경연 프로그램인 ‘랩 오브 차이나’는 한국 ‘쇼미더머니’를 그대로 베꼈다”고 전했다.
또한 기사를 통해 중국의 한국 콘텐츠 표절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김치와 한복도 자국의 전통문화라고 우기는 그들에게 사실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K-Culture의 중흥을 맞이하여 이의 적극적 세계 진출과 그들의 권리 보호의 모색은 핵심적 사안이다. 이때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기술한 ‘국제통상규범’의 적절한 적용이다. 일례로 상기한 ‘오징어게임’의 표절 사례에 있어선 한-중 FTA 제15장(지식재산권) 규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제15.6조 제1호에서는 저작권 및 저작인접권의 보호에 대한 규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각 당사국은, 양 당사국이 당사자인 국제협정에서 규정한 의무를 저해함이 없이, 자국의 법과 규정 및 이 장4에 따라, 저작물, 실연, 음반 및 방송에 대하여 각각 저작자, 실연자, 음반제작자 및 방송사업자에게 적절하고 유효한 보호를 부여하고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시장개방 측면에 있어서도 한-중 FTA는 대만과 홍콩과의 협정을 제외한, 중국이 체결한 여하한의 협정보다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다음으로 큰 중국의 문화시장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유리하게 진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 상품에 대한 시장개방 수준보다 문화서비스 무역에 대한 개방을 더 훌륭하게 열어 놓았다. 즉 한-중 FTA의 효용은 어찌 보면 상품보다 ‘문화 서비스’ 교역에 더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선 베끼기 사례가 벌어져도 이를 중국과 맺은 협정(조약)대로 풀어나가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부는 한-중 FTA 2단계 협상을 통해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의료, 관광을 포함해 법률, 정보기술(IT), 연구개발 (R&D) 분야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개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협정을 잘 맺어도 조항 하나하나를 잘 이해하고 쓰지 않으면 헛노력일 뿐이다. 정부는 어렵게 협상을 한 만큼 통상협약에서 정한 내용을 활용한 문화서비스 수출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 기업이 부작용 없이 잘 활용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또한 시장 진출과 더불어 원천 개발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호에서는 문화서비스의 국제통상규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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