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세계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회계투명성 부문이 63개국 중 5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7위에서 무려 16계단이나 내려앉은 꼴이다. 한편에서는 부실한 감사를 한 회계법인과 무리한 제도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부실한 기업 내부통제 때문이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IMD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 하락 원인이 무엇이고, 왜 회계투명성이 중요한 지 분석했다.
◇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란?
‘우리나라의 기업 회계감사와 회계업무가 적절히 이뤄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IMD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는 각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재무관리자를 대상으로 위 질문 하나로 측정한다. 자국의 회계감사와 회계업무에 대한 적정성을 묻는 셈이다.
응답자는 1점에서 6점까지 점수를 줄 수 있으며, 이 점수를 더하고 평균을 내 국가별로 1위부터 꼴등까지를 정한다.
◇ 국제 회계투명성, 왜 측정하나?
기업은 매년 실적 성적표인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를 작성한다. 회사에 돈이 어떻게 들어가고 나갔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기초적인 보고서다.
이 장부 조작은 주가 조작과 더불어 자본시장의 가장 큰 범죄다. 주주들에게 이 보고서를 믿고 투자하기도 주식을 팔고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재무제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각 회사들에게 외부의 회계법인들에게 검사를 의뢰하도록 한다. 이것이 회계감사다.
IMD 회계투명성 순위는 순전히 인식 설문조사이기에 객관적 분석은 아니지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업인들이 자본주의 뿌리인 기업회계를 신뢰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 꼴찌였던 한국 기업회계
하지만 한국의 IMD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는 2017년 63개국 중 63위, 2018년 62위, 2019년 61위 등 바닥을 쓸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두 가지로 꼽았다. 기업 지배구조와 부실한 회계감사 제도다.
영미계와 유럽계 주요국들은 주주들의 연합이 지배구조를 형성한다. 회사가 주주들에게 거짓말을 치면 큰 피해를 입기에 주주들은 당국에 엄격한 회계감사제도를 요구한다. 주요국들의 기업장부 조작 처벌은 기본 실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겁다.
반면 한국은 상대적 최다지분을 보유한 족벌들이 지배력을 행사한다. 힘의 뿌리는 회사 내부정보 독점이다. 회계감사를 강화해 회사 내부 정보를 세세하게 외부에 알리면 족벌들의 힘이 약해진다.
족벌들은 권력구조상 회계투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IMD 회계투명성 순위가 바닥을 긴 것은 한국 기업인들 스스로 평가한 슬픈 자화상이었다.
◇ 부정한 기업회계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헤지펀드 등 해외의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에 콧방귀를 뀌었다. 이들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주가성장이나 기업실적보다도 환율에 따라 돈을 넣고 빼면서 이익을 챙겼다. 족벌들이 기업실적은 조작할 수 있을 지언정 국제 금리에는 감히 손댈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 지식경제부 장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 전 공인회계사 회장은 이러한 글로벌 투자 실태를 두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며 에둘러 비판했다.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면 국가 잠재성장률이 2%p 올라가고 매년 10만개의 일자리를 생산할 수 있다.” (최중경 전 회계사 회장, 2018년 10월 31일 제1회 ‘회계의 날’ 기념식에서)
최중경 회장의 말은 도대체 언제까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내해야 하느냐는 성토였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한국 기업회계가 투명해져 국제적 신용도를 높일 수 있다면 그만큼 한국경제에 좋은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 횡령의 책임 공방
2018년 국내 기업 회계감사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우조선해양, 모뉴엘 등 초대형 기업 회계조작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회계개혁 3법 개정을 추진했다.
기업의 저가 회계감사 발주를 막기 위해 표준시간 감사제를, 기업이 회계법인에 재무제표 조작을 돕도록 강요하는 관행을 막기 위해 주기적 지정제를 도입했고, 기업이 회계감사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도록 하는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순차적으로 도입 중이다.
회계개혁 3법 시행 후 꼴찌였던 한국 회계투명성 순위는 2020년 46위, 2021년 37위로 급등했다. 이런 급상승은 IMD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은행, 오스템 임플란트 등 직원의 횡령이 터지면서 올해 회계투명성 순위는 53위로 다시 주저앉았다. 회사는 직원 일탈 행위를 잡지 못 했고, 회사 회계감사를 맡은 감사인들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서로 책임공방이 오갔다. 직원을 통제할 1차적 책임은 누가 뭐라고 해도 고용주인 회사에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회계개혁 3법 약발이 떨어졌다며, 회계감사인을 비판했다.
한 회계사회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안요원을 채용한 회사에 도둑이 들었는데 경찰이 제대로 순찰 돌지 않았다며 비난할 수 있나요? 1차적 책임은 당연히 회사 보안요원들에게 있지 않을까요.”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도 지난 6월 15일 회계사회 회장 연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오스템임플란트 횡령사건을 언급하며 “기자님 같으면, 회사가 대놓고 감사인을 속이면 감사인이 알아챌 수 있다고 보세요?”라고 힘주어 되물었다.
회계감사인들은 수사기관도 아니고, 회사에서 주는 정보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외부의 감사(監査)인이다.
회사 최고 결정권자가 외부에서 데려 온 ‘새 측근’이 오스템 사건의 주범이었고, 회사는 사장님 측근에 대해 아무런 감시를 하지 않았다. 회사 내부도 이런 마당에 한 다리 너머 일개 감사인이 알 리가 없지 않느냐는 성토였다.
◇ 낮아진 회계신인도, 미완의 회계개혁
전문가들은 2018년 회계개혁 3법 개정 이전 한국 기업회계 신용도가 낮은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회사에서 회계감사인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았거나, 제대로 감사를 하기 어렵게끔 충분한 감사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전자는 감사의 질, 후자는 감사 여건을 결정한다.
감사 여건에 대해서는 주기적 지정제, 표준감사시간제 시행으로 어느 정도 나아졌지만, 가장 중요한 감사의 질은 여전히 의문부호다.
기업 스스로 충분한 내부통제 절차를 지키고, 외부 회계감사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자산 1000억 미만 회사의 경우 2023년부터 적용되는데 이 그룹에는 코스닥 상장사들이 많다. 대형회계법인 회계 감사인들조차 이들 기업 감사에 나서길 꺼린다. 회사에서 회계감사인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장사들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있어서 그나마 좀 상황이 낫습니다. 하지만 진짜 폭탄은 코스닥 상장사들이에요. 회계기준도 뚜렷하기 않고, 대단히 자의적으로 처리해서 감사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를 무시해서 회계사(회계감사인)가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게다가 법이 바뀌어서 감사 잘못하면 회계사가 감방갈 수도 있고요. 가장 무서운 건 회계사 자격증이 박탈돼요. 기업 컨설팅으로 빠지거나 새 길 찾아나선 친구들이 많지요.” (한 회계사의 말. 그는 지난해 모 대형 회계법인에서 퇴직했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특별히 이 점을 강조했다.
“제가 이번 IMD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 하락과 관련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부회계관리제도가 보다 조속히 시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횡령사건이 터지면 회계개혁을 하지 말아야 하나요. 아니죠. 더 개혁을 잘 해야죠. IMD 순위 하락이 주는 교훈은 아직 우린 멀었구나. 부족한 회계개혁을 앞으로 더 잘 해야 하는 구나가 먼저여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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