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2017년 89억8870만원, 2018년 56억6780만원, 2019년 84억5870만원, 2020년 20억8290만원, 2021년 156억4860만원, 2022년 826억820만원,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580억7630만원.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횡령한 돈의 추이다.
대체적으로 매년 늘었고, 지난해 폭증하더니 올해 역시 상반기에만 그 적립 정도가 예년 수준을 훌쩍 넘었다.
이 중 회수된 금액은 12% 수준인 220억원 정도. 은행권으로 좁히면 겨우 7.6% 수준이다.
고객 신뢰가 떨어지고 기업 이미지가 실추된 점 등 무형의 가치에 대한 피해까지 환산하면 실제 손실은 더 큰 셈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대규모 횡령사고를 기점으로 내부통제 개선을 위한 대대적 수술에 돌입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3개월간 TF를 운영하며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을 발표했고, 골자는 장기근속자의 횡령을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내놓은 해결책이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것이 방증됐다.
보란 듯이 BNK경남은행에서 500억원대 횡령사고가 터졌다.
경남은행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613억원. 500억원대 횡령은 상반기 당기순이익의 3분의 1 수준인데 그 금액을 직원 한 사람이 다 빼돌린 것이다.
내막을 살펴보면 경남은행에서 횡령을 저지른 직원은 한 부서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이모씨였다.
그는 2007년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15년 이상 부동산 PF를 담당했고, 내부에서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인물로 평가됐다.
두터운 신임을 등에 업은 이 씨는 관리‧감독 관계자들의 눈을 가렸다. 그는 무려 7년간 부동산 PF 관련 서류를 위조해 대출을 받았고 가족 계좌로 이체한 뒤 자취를 감췄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씨가 5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할 수 있던 배경에는 은행은 물론 금융당국의 책임이 모두 존재한다.
우선 경남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한 부서에서 장기근무를 할 경우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순환인사를 해야 하지만, 이 씨는 해당 분야 전문성을 갖췄다는 이유로 15년 동안 같은 업무를 맡았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다.
작년에 발생했던 우리은행 횡령 직원 또한 같은 조건이었다.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라는 이유로 10년간 한 부서에서만 근무했었다.
우리은행 횡령사고로 금융당국은 물론 전 금융권이 횡령사고를 막기 위해 작정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며 각성하는 듯 보였지만, 허울뿐이었다.
결국 유사한 행태로, 똑같은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당국의 감시 기능은 적절했는가.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말 경남은행 대상 검사를 진행했지만, 경영유의사항 16건과 개선사항 30건만 통보했을 뿐이다. 횡령이 발생한 지점인 부동산PF 부문과 내부통제 문제에 대해선 미비점이 있다고 지적했을 뿐 횡령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
‘은행 직원들이 돈을 빼돌렸다는데 누가 그곳에 돈을 맡기고 싶겠는가’라는 비난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을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시선은 따갑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금융업을 지탱하는 근간은 고객신뢰에 있으므로 재발방지에 사활을 거는 것이 일단 최선이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지만, 잘 갖춰진 감시망 만큼은 절대 뚫을 수 없도록 정교하게 시스템을 다듬어야 한다.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장기근무자 비율이 5% 이하로 제한되며, 해당 내용의 시행은 2025년부터다. 앞으로 2년 남았다.
은행 내 횡령을 노리는 ‘고인물’이 생기지 않도록 순환배치하고 위법 사항이 발견될 경우 즉각적으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당국은 물론 은행 역시 강력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확립해 내부통제 강화 움직임이 시늉에만 그치는 일이 또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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