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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산업

[기자수첩] 50년이 지나도 느껴지는 정주영 회장의 뚝심

(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48년만에 현대자동차 ‘포니 쿠페’가 돌아왔다.

 

‘포니’는 현대그룹 고(故)정주영 명예회장의 뚝심 있는 고집에서 탄생된 모델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군 로상리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대한민국의 자동차산업은 현재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이렇게까지 발전한 데에는 정 회장의 몫이 크다.

 

정 회장은 고속도로는 있지만 그 위를 달릴 자동차가 몇 대 없던 시절, 대한민국에도 자체 생산한 자동차가 있다면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자동차 생산·판매를 특유의 뚝심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현대자동차의 제조업 설립에는 미국의 포드자동차와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의 기술제휴가 도움이 컸다.

 

그 결과 정 회장은 1903년 대한민국에 자동차가 처음 도입되고 최초로 자체 생산된 ‘현대 포니’를 탄생 시켰다.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포니’와 ‘포니 쿠페’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이목을사로 잡았다. 하지만 포니 쿠페 컨셉트는 당시 엔지니어링의 한계 등으로 양산까지 이르지 못하고 유실됐다.

 

현대차는 포니를 갖고 1976년부터 콜롬비아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남미 국가에 수출해 우리나라의 자동차산업을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포니는 오늘날 현대차의 전신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차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 자동차다. 포니는 포니 4도어, 3도어, 포니 왜건, 포니 픽업 등 다양성을 극대화했던 의미 있는 모델이다.

 

유실된 포니 쿠페는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지난 7월 처음 공개된 전 세계 미디어와 고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고성능 수소 하이브리드 롤링랩 ‘N비전 74’는 포니 쿠페 콘셉트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이번 포니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정주영 명예회장의 우직한 뚝심이 50년이 지나도 선대의 바람이 남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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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전두환 정권 때 저질러진 최악의 통폐합시나리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영화 서울의 봄과 고 전두환 대통령의 유해가 국민들의 냉대 속에 안식처를 못 찾고 방황하는 가운데 필자에게는 80년 전두환 정권이 저질러놓은 최악의 산업통폐합조치 시나리오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법정주의다. 무슨 조치이든 정권이 시행하려는 조치는 법적근거를 구비하여야 함에도 이 산업통폐합조치는 사업에 무지한 몇 사람의 군인 머리에서 나온 임시조치에 불과할 뿐인데도 국가 전반적으로 엄청난 회오리를 몰아쳤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미디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당시 대우그룹기획조정실에 근무했기에 그 어이없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어느 날 고 김우중 회장은 필자를 불러 사흘 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최고 국보위위원장인 전두환을 독대하는 자리에 의사결정을 통보할 모종의 전략적 검토를 지시했다. 이것은 대우그룹과 현대그룹이 동시에 소유한 중공업과 자동차의 이원화된 산업을 일원화하는 산업통폐합조치였다. 대우는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를 소유했고 현대는 현대양행, 현대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글로벌 경제상황이 오일쇼크로 휘청이던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공업, 자동차산업도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