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기획재정부가 22일 발표한 세법개정안을 보고 현찰을 5억원 쥔 투자 귀재를 서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잠시 의문이 들었다.
세금은 자신이 번 돈에서 돈 벌기 위해 들인 ‘비용’을 빼고 물린다. 이 ‘비용’이 좀 명확하지 않은 경우 공제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처리한다.
간단히 말해 공제 이하의 벌이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22일 발표한 정부의 주식양도소득세(금융투자소득) 개정안을 보면 그 공제가 5000만원에 달한다.
5000만원 아래로 번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주식으로 5000만원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금 5억원을 들여 수익률을 10% 정도 내면 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수수료나 증권거래세가 붙겠지만, 일단 사소한 건 제외하자.
주식으로 5000만원 이상 버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조세재정연구원이 최근 11년간 11개 금융투자회사가 보유한 개인 증권계좌 손익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식투자자의 40%는 원금을 까먹었다.
50% 정도가 1000만원 이하 수익을 올렸다. 1000~2000만원의 수익을 올린 사람은 5% 정도였다.
상위 5%가 주식 등으로 연 2000만원을 넘겨 벌었다. 사람 수는 약 30만명이다. 5000만원 초과 구간은 그보다도 멀리 어딘가에 있다.
당초 정부는 위의 도표에서 세번째 구간인 소득상위 5% 구간(연 투자소득 2000만원 초과)을 대상으로 과세하려고 했다. 그런데 언론지상이 하루가 멀다하고 두들기자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면서 금융투자소득에서의 면세기준은 5000만원으로 낙찰됐다.
참고로 근로소득면세자는 상당수의 연 수입은 1500만원선 이하다.
이를 두고 여론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중소기업에 고통을 준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이 5억원 이상 주식매매차익에 관심을 둔다는 맥락 자체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언급할 가치가 없다.
둘째는 근로소득자에 비해 금융투자소득의 면세기준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찰 2억원 쥔 사람도 부자들일 텐데 너무 조심스럽게 범위를 정했다는 뜻이다.
정부가 면세점을 높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전략은 부동산으로 쏠린 시중유동자금을 기업투자로 돌리는 것이다.
부동산(주택)은 건설투자에는 영향을 주지만, 국가의 수출경쟁력에는 별 도움 안 된다. 게다가 과도하면 위험하다. 도쿄 롯폰기로 상징되던 일본 부동산이 버블시기 일본경제를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는 정부는 부동산에 파묻힌 유동자금을 꺼내고 말려서 기업에 전달하고 싶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산가들에게 어느 정도 편익을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올해 세법개정안은 어중간하고 조심스럽다.
발표 전부터 올해 세법개정안을 두고 세금폭탄 프레임이 전면 전개됐다. 십억대, 백억대 부자 되기 커뮤니티가 압력밥솥 마냥 들끓었다.
지지율 하락세에 있는 정부가 매콤한 전략을 선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나 여론 탓을 하고 싶지 않다.
1800년대 러시아의 대사이자 프랑스 왕정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는 러시아 헌법개정을 보면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며 비아냥거렸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닌 우리가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메스트르처럼 비아냥거릴 일이 아니다.
손가락질 좀 적당히 하자. 정부가 뒤로 가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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