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세청이 10일 관서장 회의에서 모범납세자 포상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했다.
모범납세자 포상은 원래 말 그대로 표창장 수여식이었지만, 1990년부터 대기업 세무조사 한시적 면제권을 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는 세무조사 유예지만, 세무대리 업계에서는 사실상 면제라고 부른다. 그 기간에 ‘튀는’ 일을 벌이지 않는 이상 세무조사 안 하니까.
모범납세자는 매년 1천명 가량이 뽑히는데 그런데도 매년 20명 정도가 상을 박탈당한다.
좀 ‘심한’ 탈세하다가 걸려서.
노무현 정부 당시 대기업 특혜 축소를 위해 중견~중소기업 포상으로 바뀌었고,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것도 실제로는 조금 느슨하게 운영된다. 법령으로 정해둔 게 아닌 탓이다.
대기업 되도록 뽑지 말라고 하지만, 2021년 포상 후보자 명단에 CJ ENM이 슬그머니 이름을 올리더니 2022년 포상에 이랜드 그룹 내 월드패션 사업부, 윤석열 정부가 처음 주관하는 2023년 포상에 두산인프라코어, CJ제일제당 등이 포상대상이 됐다.
올해 개편하겠다고 내놓은 안을 보면 불안한 구석이 있다.
이전에는 하다못해 수치로 세금을 잘 냈는지를 증명하는 부분이 중요했다.
내년부터는 이러한 정량 부문을 줄이고 심사하는 사람의 주관 영역을 늘린다고 한다.
뭘 중점적으로 본다고 밝혔냐면 기업 재기 성공스토리, 사회공헌 그런 거다.
이게 모범납세자를 뽑는 건가. 인생극장 뽑는 건가.
아마 한 두 명은 정말 좋은 사람, 훌륭한 기업을 뽑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밑에 내가 밀어주고 싶은 기업을 슬그머니 집어넣을 공산이 없다할 수 없다.
그간에도 자기들이 정말 주고 싶은 기업들은 슬그머니 철탑, 국무총리 표창 밑에다 밀어 넣지 않았었나.
한국처럼 모범납세자 우대 특권 뿌리는 나라는 주요국 중엔 없다.
모범납세자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없다.
주요국은 아니고 개도국 중에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케냐 정도?
아, 일본이 있기는 하다.
우량신고법인 표경(表敬, 우리식으로는 표창)이라고 해서.
하지만 일본은 명예표창이다.
우리처럼 세무조사 면제권을 뿌리지 않는다.
원래 제도는 비판받고, 보완하고 그렇게 운영한다.
하지만 모범납세자는 목표, 운영, 효과 등을 볼 때 무엇 하나 명확한 게 없다.
우리 세법에서는 모든 납세자를 성실납세자라고 말한다.
모범납세자는 다른 납세자보다 더욱 모범이라 말한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인가?
도대체 모범이란 발상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가.
기업들은 애국자라는 국세청 공무원들.
앞으로 뽑겠다는 아름답고 모범적인 납세자.
그들은 누구인가.
교수, 세무사, 연예인, 공무원 그리고 또한 누군가.
하지만, 이런 이들은 아닐 게다.
빵 공장 기계에 끼여 죽은 노동자.
아픈 노부모를 모시는 공사판 일용직.
조선소에서 300kg 쇳덩이에 깔린 젊은 대학생.
생수공장에서 적재기에 짓눌린 어린 고등학생.
모범납세자 표창에 이런 문구는 있을 게다.
이 사람은 수십년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애쓴 바가 지대하므로.
이 사람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 기업을 일구어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나라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하지만 이런 문구는 없을 게다.
“수십 년간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해 훈장을 수여한다.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기에 포상한다.”
(고 노회찬 의원, 2004년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질의 일부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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