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세청장이든 대통령이든, 장들은 신뢰를 버릇처럼 입에 올린다.
하지만 신입 말단이라도 이런 말 안 믿는다.
강한 자는 형편 따라 쉬이 약속을 깨먹는 버릇이 있는 탓이다. 약속을 깨는 것은 강자만의 특권이다.
신년 시무식에서 김창기 국세청장이 꺼낸 이신위본(以信爲本)이란 말도 그렇다.
겉뜻은 ‘신의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얌전한 말이지만,
속뜻은 ‘지휘관이 부하들과 기본적인 약속도 못 지키는 게 무슨 조직이냐’는 제법 거친 말이다.
제갈량 4차 북벌 때의 일이다.
제갈량은 장안 서쪽 기산을 포위해 병력을 전개했다.
위나라는 북쪽 선비족을 견제하며 위군의 명장 사마의와 장합을 기산에 보냈다.
교전 직전 촉군에게 병력 순환 시점이 찾아왔다.
토, 일은 쉬어 줘야 다음 주 일하듯 군도 전후방 부대를 주기적으로 교대해줘야 전력이 유지된다.
촉 장군들은 교대를 막았다. 적군이 눈 앞에 있으니 후방 교대 부대가 올 때까지만이라도 전방 교대 병력을 빼지 말자고 했다.
제갈량은 거절했다. 그간 내가 약속을 지키는 것으로 군을 지휘해왔는데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약속을 깨면 누가 나를 따르겠느냐고 반박했다.
그 때 제갈량의 말이 이신위본이었다.
제갈량은 좋은 사람이라서 신의를 강조했을까.
제갈량의 북벌은 성공하기 어려운 싸움이었다. 애초에 국력차가 너무 컸다.
위나라에는 자원과 사람이 많았고, 신뢰로 다스리기 보다 자원을 관리할 절차만 잘 갖추면 됐다.
약한 촉은 부하들에게 내줄 게 많이 없었다. 인재, 자원, 전략적 입지, 모든 면에서 뒤쳐졌고, 제갈량이 기댄 마지막 보루가 조직력이었다.
제갈량은 예정대로 전력 20% 교체를 지시했다. 도박이었다. 제갈량은 장병을 믿었고, 장병도 원칙을 믿었다. 이어진 노성전투에서 촉군은 위군을 저지하고 추격해 온 장합을 사살했다.
국세청장, 아니 국세청은 어떠한가.
다른 편에 있던 장수를 관대히 보내줄 수 없었고, 젊은 유망주에게 편도행일 수도 있는 지방국세청장 표를 끊어줬다.
더 큰 우려는 그간의 믿음이 깨질 수 있다는 일선의 불안이다.
전방에 6개월 있으면 후방에 3개월 보내준다는 식의 소박한 믿음이다.
누가 고생했고, 안 하고는 서로 다 안다.
이들은 인사 결과가 반대로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용산 상황은 녹록지 않다.
1년도 안 되는 정권이 벌써부터 신뢰를 하달했다.
충성심을 시험대에 올렸다.
하지만 진정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인사대상자들이 아니다.
이신위본으로 약속을 지킬지, 약속을 깨는 강자의 특권을 누릴지.
이 시험은 오롯이 각급 인사권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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