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정부가 기업 회계감사인을 배정하는 데 사용하는 경력점수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바꾸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업무가 복잡할수록 고경력과 저경력 간 격차가 벌어지지만, 정부는 20년차 다섯 명 분의 능력차를 이제 막 수습을 끝낸 회계사 1명으로 충분히 충당 가능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가 지난달 14일 시행한 외부감사 및 회계 등에 관한 규정안에 따르면, 2년차 회계사의 경력 점수는 100점인 반면 20년차 회계사간 경력 점수는 120점으로 설정했다.
정부는 일정 기간마다 상장사에 외부감사인을 지정해주는데, 경력점수는 일 잘하는 능력을 수치화한 것이다.
정부는 회계법인이 보유한 회계사들의 경력 점수는 모두 더해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대기업 감사 일감을 배정해준다.
과거에는 15년차부터 이후로는 최고점(120점)을 받았는데 경력 점수 최고점을 찍는 기간을 5년 더 뒤로 당겨 놓은 것이다.
또한, 경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능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해 30년차부터는 10년차, 아예 40년차부터는 2년 차 회계사와 별 차이가 없다고 설정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998년 자격증을 취득한 25년차 회계사인데, 현 감사인 지정제 하에서는 5년 후 10년차 회계사 수준으로 경력점수가 하락하게 된다.
◇ 외길 가는 외부감사 정책
금융위 측은 여러 종합적인 영역을 감안하여 외감규정을 바꾸었다고 설명했지만, 저점과 고점간 간격을 벌리면 벌릴수록 고경력이 불리해진다. 왜냐하면 회사 인력구조상 고경력은 명예퇴직을 할 확률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회계업계 내 빈익빈 부익부도 가속화하게 된다.
저경력과 고경력간 경력점수 격차가 낮으면 낮을수록 경력점수가 최고점이 되는 시기를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상위 대형회계법인 4곳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회계업계는 인력구조상 대형회계법인 4곳과 그 밖의 회계법인(일명 로컬)으로 이원화돼 있다.
매년 신규 회계사 1000~1100여명이 배출되지만, 로컬 회계법인에 채용되는 신입 회계사는 20%도 안 된다.
상위 대형회계법인 4곳에서 신입 회계사 80%를 채용하고, 나머지 20%도 상당수는 대기업, 정부기관에서 흡수해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형회계법인 내 내부 경쟁이 치열해 10~15년차 정도 되면 창업, 기업 및 로펌 재취업 또는 로컬회계법인으로 이직한다. 대형회계법인은 젊은 회계사 비중이 높고, 인원 수도 많지만, 경력자 비중은 낮은 셈이다.
거꾸로 로컬회계법인은 대형회계법인에서 흡수한 고경력자 보유 비중이 높다.
회계업계에서는 대중소 회계법인간 형평차원에서 고경력자와 저경력자간 감사인 지정 점수 배점시 업계에서 인정하는 경력 수준을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
2019년 회계법인 상생특위 TF 자료에 따르면, 100점을 받는 초급 회계사의 외부감사 보수를 100으로 하면, 대형회계법인 기준 15~20년차는 3배, 20년 이상은 4~5배의 보수를 받는다.
상생특위 TF는 대중소 회계법인간 상생 협의체였다.
회계사회는 지난 2019년 9월 상생특위 TF의 의견을 수용해 현재 초급 회계사와 고경력자간 배점을 100~120점이 아닌 100~200점으로 상향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거절했고, 올해 9월에는 오히려 감사인 지정 시 경력이 미치는 영향이 더 줄어들도록 저점과 고점 간 간격을 더 벌려놨다.
김광윤 아주대 명예교수는 “경력에 따른 보수는 3배 이상 차이 나는데, 감사인 지정점수는 1.2배 밖에 되지 않는 것은 논리적 정합성도 없을뿐더러 현실을 반영한 것도 아니다”라며 “전문가 사회일수록 경력 가치가 높은데 금융위 감사인 지정점수는 현실을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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