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해 정부에선 56조 세수펑크가 발생했다. 당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배정권을 발동해 지자체 교부금을 임의로 18.6조원 줄였다. 시민단체와 지자체에서는 반발했다. ‘지자체 예산은 국회 심의로 확정된 것이다. 장관이 무슨 권한으로 국회가 확정한 예산을 줄이느냐.’ 기재부는 이를 일축하고, 세금이 없으면 지자체에 돈을 안 줄 수 있고, 이건 법에 있는 재량권한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회 예산심의권과 기재부 장관 예산배정권. 둘의 싸움이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 국회가 결정하고, 정부가 쓴다
국가 예산 작동 원리는 한 마디로 줄일 수 있다.
국회가 결정하고, 정부가 쓴다.
나랏돈을 얼마나 쓸지는 국회만이 결정한다. 이 강제규정이 헌법 54조 1항 국회 예산심의권이다. 예산을 수정하는 권한도 오롯이 국회 몫이다.
나라 살림의 기초가 되는 국가재정법도 마찬가지다.
국가재정법은 1절 원칙(총칙), 2절 예산편성(국회심의), 3절 예산집행(행정부) 순이다.
1절에서는 예산 총량과 관련한 조정권한을 모두 국회에 두고 있다.
2절에서는 예산은 국회가 의결해야 확정되기에 정부가 예산안 국회보고 의무를 두고 있다.
3절은 국회가 결정한 예산을 행정부가 어떻게 집행, 결산할지에 대한 절차다.
세금이 안 걷혀 돈이 부족하면 단기 급전이냐, 대규모 펑크냐에 따라 대응방식이 달라진다.
단기 급전이면, 한국은행(단기차입금), 정부 내 따로 떼어놓은 지갑(기금)에서 꿔온다.
대규모 세수펑크라면 예산안을 고쳐야 한다. 쓸 돈을 줄이거나, 민간에서 국채로 돈을 땅겨야 한다. 헌법 56조(추가경정), 58조(국채) 둘 다 국회 권한이다.
◇ 지자체 교부금 미지급 사태
국회가 이렇게 1년 치 지갑을 만들어주면, 돈 빼 쓰는 방식은 정부들이 정한다.
회사 내에서 본사가 있고, 지사가 있는 것과 비슷하게 정부도 중앙정부와 시‧도‧군청 등 지방정부(지자체)로 나뉜다. 권한과 활동 영역을 나눈 것이지 회사처럼 상하관계는 아니다.
씀씀이는 중앙정부가 30~40% 정도 쓰고, 지방정부가 60~70% 정도를 쓰는데 정작 세금 벌이는 75%를 중앙정부가, 25%를 지방정부가 번다.
이 격차를 메꾸는 돈이 교부금이다.
당연하지만, 지방정부에 얼마를 보내줄지도 국회 예산심의권 사안이다.
그런데 2023년 정부는 국회가 결정한 교부금 예산 가운데 18.6조원을 지방정부에 보내주지 않았다. 세금이 예상보다 수십조원 덜 걷혀서 보내줄 돈이 줄었다는 이유에서다.
‘국회가 결정하고, 정부가 쓴다’라는 기본원리에서 벗어나는 행위였지만, 기재부는 불법성을 회피하기 위해 두 개의 지렛대를 꺼냈다.
◇ 예산심의권을 억누른 두 개의 지렛대
1번 지렛대. 내용은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내국세 약 40%를 줘야 한다는 강제조항(지방교부세법). 효과는 실행 근거, 가결산에 따른 교부금 정산.
2번 지렛대. 내용은 정해진 예산집행을 유보 및 보류할 수 있는 기재부 장관의 예산배정권(국가재정법 43조 5항). 효과는 불법 회피.
1번은 중앙정부가 번 돈의 40%만 지자체에 보내게 되어 있으니 세금이 줄어든 만큼 돈을 적게 보내는 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이 말 자체는 맞다. 그런데 2023년 벌 돈이 얼마인지 정확히 결정되는 건 2023년이 아니다. 세입세출 마감을 하는 2024년 2월이다. 결산은 2024년 6월이다.
지난해 기재부는 결산이 마감되는 2024년이 아닌 2023년으로 땅겼다. 정부가 그렇게 당길 수 있다고 보는 권한이 2번 지렛대, 기재부 장관의 예산배정권이다.
나라에 들어오는 세금은 시기별로 출렁출렁 들어오기에 지방정부에 월급 보내듯 기계적으로 보낼 수가 없다. 돈이 들어오는 대로 급한 곳부터 뿌리는데 어디에 먼저 돈을 보내고, 어디에 나중에 보낼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예산배정권이다.
2023년 기재부가 2번 지렛대를 사용하는 논리는 이렇다.
‘2023년 9월에 세수 중간 추계를 해보니 나라에 세금이 안 들어왔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줄 수 있느냐, 돈이 없으면 안 줄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러라고 있는 예산배정권이다, 그리고 교부금은 내국세 40%만 주게 되어 있는 거다, 세금이 줄었으니 안 주는 건 적법이다, 이게 다 국회가 만든 법에 따라서 시켜서 하는 거고,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법 기술적으로는 세수펑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1번 지렛대를 준수하기 위해 유보의 불가피성이 인정되고, 기재부 장관의 역할인 재정수지 관리를 위해 그 유보시기를 결산 시점까지 미루어 실질적 결산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배정권이 이럴 수 있는 권한인지 보려면, 그 힘의 원천(권원, 權原)이 뭔지를 봐야 한다.
◇ 배정권 권원은 국회 예산안, 역행하는 법적용
배정(配定)의 사전적 의미는 ‘몫’을 나누어 정하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배정권은 몫을 정하는 게 아니라 몫으로 정해진 돈을 나누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몫은 누가 정하느냐면, 맨 위 두 개의 단락에서 계속 말했듯 국회 고유권한(의결권)이다. 헌법 54조 국회 예산심의권과 그에 수반된 국가재정법 제1절 총칙 및 제2절 편성권이다.
몫이 있어야 나누고 말고를 하기에, 배정권의 권원은 예산안이다. 예산안 내에서만 배정권이 효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배정권을 왜 줬냐면, 살다 보면 사업시기가 미뤄지거나 세금이 덜 들어와서 당장 돈을 못 줘서 나중에 줘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12월에 줄 돈을 다음 해 1, 2월에 주기도 한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이러라고 기재부 장관에게 예산배정권을 주는 것이며,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서도 ‘세금수입이 당초 예상보다 현저한 차이가 벌어져 집행관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예산집행의 유보‧보류를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재정법 조문에서는 기재부 장관은 예산 배정을 유보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고, 예산에 변동이 있을 때 가결산을 통해 예산 총량(몫)에 손을 댈 수 있다고 나와 있지 않다.
국회의원 및 지자체장 10여명은 지난해 11월 기재부 장관이 자신의 배정권을 정해진 회계연도를 넘겨 예산 총량 자체를 유보할 수 있다고 확장해석하는 것은 법 위배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 예산은 1년 단위로 운용한다
예산(豫算).
필요한 비용을 미리 헤아려 계산함(표준국어대사전).
헌법 54조 2항.
정부는 1년(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
나라 살림은 1년 단위로 예산을 짜고 집행한다. 중간에 전쟁이 나든, 초대형 자연재해가 터지든 예산은 1년 내 미리 헤아려 계산한 범위에서 수입과 지출을 맞춰야 한다.
유보‧보류를 한다고 하여도 영원불멸하게 미룰 수 있는 아니다. 헌법 54조 2항에 따라 정부 예산은 1년 단위로 움직이기에 최소한 수입과 지출을 결산하기 전에 미뤄준 돈을 줘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한 가결산은 부족한 돈이 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르는 데 어림짐작해서 돈을 삭감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면 기재부는 언제든지 교부금을 어림짐작으로 깎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된다.
기재부가 1번 지렛대를 그렇게나 철칙으로 운용한다면, 부족한 게 아니라 돈이 더 들어왔을 경우도 이렇게 해야 했었다. 2021년에는 기재부 예상보다 61조원이나 더 들어왔고, 2022년에는 53조원이 더 들어왔는데 기재부는 자동으로 교부금을 늘리지 않았다.
가결산은 정부의 교부금 정산 관행과도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2023년 세금 펑크가 100억이 나서 지자체에 40억을 못 주게 됐다고 치자. 펑크 금액이 0.1원 단위까지 최종 확인되는 건 아무리 빨라야 2024년 2월이다. 이렇게 확인된 것이 국회와 감사원을 거쳐 확정되는 시점이 2024년 6월이다.
이 역시 헌법과 국가재정법상 절차라서 기재부가 땅기고 뺄 것이 없다. 기재부는 편성하고, 셈을 하는 조직이지 예산을 확정하는 조직이 아니다.
이론상으로는 2024년 6월쯤 지자체 예산에서 40억을 빼는 게 가능하다. 예산 총량에 손을 대는 작업이니 국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국회 의결 자체는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니다. 힘든 건 기재부 예산실이다.
2024년 6월은 기재부 예산실이 2025년 예산안을 낳는 시점이다. 40억 정산 정도면 모를까 2023년처럼 56조 세수펑크를 처리하려면 2024년 수정예산안, 예산안 하나를 더 낳아야 한다.
애 둘을 동시에 낳으려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니 하나를 낳을 때 잘 낳자. 그렇게 해서 2023년 지방교부금 정산을 2025년 예산안에 집어넣는 식으로 운영했었다.
하지만 그 수십 년간의 원칙을 깨고 정부는 2023년 돌연 무리수를 뒀다.
◇ 과학기술예산 자르듯 잘린 교부금
“저는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으로 공정한 접근성, 지역의 재정 자주권 강화, 지역 스스로 발굴한 비교우위 산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강조해 왔습니다.”
(2023년 9월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지방시대를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무리수를 써서 이득이라도 보았다면 적어도 명분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부금 삭감은 윤석열 대통령 자기 말로 부정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듯 지방시대는 돈이 있어야 사업하고 발전한다.
세금이 없어서 지방시대를 미루고 싶다면 국회 동의를 받아 나가는 돈의 총량을 줄이면 될 일이었다. 그러려면 나중에 깎은 예산을 어떻게 채우겠다는 계획을 내놨어야 했을 것이다.
부족한 돈을 국채를 통해 빌려왔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을 일이었다. 야당은 2023년 연초부터 추경을 말하고 있었기에 거부할 일이 없었다.
윤석열 정부는 전자도 후자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정당한 명분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행돼야 했다.
명분은 있었다. 재정수지 악화를 막고 건전한 재정수지 관리를 위해서였다. 다만, 그걸 위해 헌법에서 정해져 있는 국회 심의 절차 대신 모호한 기재부 장관의 예산배정권과 가결산을 통한 교부금 정산이라는 전례 없는 행위를 강행했다.
가결산에 대한 법적 시비는 이제 불가피하게 됐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국가재정법 43조 5항에서는 기재부 장관의 예산배정권한이 예산 총량의 유보를 말하는 것인지 세입세출의 시차를 일시적 맞추기 위해 조정의 차원에서 배정권한을 두는 것인지를 명확화하고 있지 않다”라며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간에 기재부 장관의 예산배정권을 어느 범위까지 둘지 국회에서 보완 입법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분조차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된다.
상황 따라 바꿀 수 없는 원칙이 있으며, 상황에 맞춰 바꿀 수 있는 원칙도 있다.
전자는 생명, 도덕, 인권 등 절대 가치가 걸렸을 때다. 불이 났으면 수지 따지지 않고 모든 자원을 퍼붓는다.
하지만 돈(재정수지),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다.
지난해는 소비‧투자 및 수출총액이 모두 부러지는 상황이었다. 돈이 조금만 끊겨도 숨쉬기조차 어려운 영역도 있다. 서울은 교부금 한 푼 안 받는 부자 동네지만, 가난한 지역 중에서는 교부금 의존도가 50%에 달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와 식량은 잃는 건 역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역경이라도 사람의 신의를 잃으면 극복할 수 없다.
영국의 대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국회 동의 없는 세금(재정)은 없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잃으면, 어떤 일도 나라를 위해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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