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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클래식&차한잔] 집시의 노래(Carmen-Chanson Bohême)

 

(조세금융신문=김지연 객원기자)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카르멘>은 19세기 프랑스 오페라의 역사에서 단연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이 1875년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도덕적이지 않다’라는 이유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었습니다.

 

촉망받는 군인과 집시여인 카르멘의 사랑을 다룬, 당시의 도덕과 규범에 도전하는 줄거리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혹평을 받던 그 작품이 1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가 되었으며 여전히 시대를 흔드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노래하는 ‘집시의 노래’

 

 

카르멘을 특별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로는 단연 ‘집시의 노래’를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하바네라의 리듬으로 노래하지만, 그 리듬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대담하게 드러냅니다. 그녀는 노래하고, 춤추면서 삶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바로 이 순간 음악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비로소 자유의 선언으로 승화됩니다.

 

비제는 집시여인이라는 미천한 자가 가진 힘을 오페라 속으로 불러들여 관습과 규율에 묶인 사회에 작은 돌을 던집니다. 그러므로 카르멘이 춤을 추는 장면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를 향해 날리는 도전입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가겠다”

 

집시의 노래는 카르멘의 인생철학과 운명, 그리고 집시적 자유분방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집시’는 구속을 싫어하는 자유의 화신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반대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법집단이라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분명 낭만적 판타지를 지닌 매혹적인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유럽의 작곡가들은 집시 리듬에서 긍정적인 열정과 자유를 발견했고, 그것을 종종 예술 속에 끌어들이곤 했습니다.

 

프랑스인인 비제 또한 작품의 무대를 스페인으로 설정하고 유럽의 오케스트레이션 위에 ‘하바네라(Habanera)’와 ‘세기디야(Seguidilla)’ 같은 스페인 민속무곡 리듬을 이식했습니다. 현악기의 피치카토(pizzicato)와 타악기의 경쾌한 리듬을 바탕으로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선율이 카르멘의 가벼운 몸짓과 교태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는 비극을 예고하는 복선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춤곡은 겉으로는 매혹적이고 경쾌하지만 리듬의 집요한 반복과 어두운 화성을 사용함으로써 카르멘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고도 있습니다.

 

극 중에서 나오는 카르멘의 춤곡 장면들은 억압적인 사회 규범에 맞서는 자유의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맞추어 집시가 추는 댄스는 곧 저항의 몸짓이자 삶의 에너지입니다. 카르멘이 군인들의 권위에 맞서며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 그것은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150년 전 오페라의 선율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속에 담긴 자유와 저항을 향한 뜨거움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집시의 댄스는 오늘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만의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집시의 노래' 듣기

 

[프로필] 김지연

•(현)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외래교수

•(현)이레피아노원장

•(현)레위음악학원장

•(현)음악심리상담사

•(현)한국생활음악협회수석교육이사

•(현)아이러브뮤직고양시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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