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쏜 포탄에 이란의 군대 수장이 죽임을 당하고, 이란이 쏜 미사일에 민간인 여객기가 추락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나라간의 피 흘리는 전쟁이 드문 작금의 현대사회에서 포탄이나 미사일이 날아다니며 국제적 긴장이 고조된 이 상황이 낯설고 두렵기만 합니다.
분쟁이 있는데에 모두 그만한 이유가 없을 까마는, 이유야 어쨌든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되는 대립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평화의 대사, 글렌 굴드
‘글렌 굴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미권에서 바흐음악의 일인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젊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는 바흐의 곡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를 하였는데, 바흐의 음악이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버리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굴드는 타고난 음감과 독창적인 테크닉으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였지요. 그의 연주를 알아본 CBS의 음반기획자는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내어 발표하였는데 이 음반은 음악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이 되었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는 기인과 같은 괴짜기질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연주할 때 허밍음으로 노래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끔 들으면 으스스하기도 하지요. 녹음기술자들이 그의 목소리가 녹음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여하튼 이 젊은 스타 피아니스트를 소련은 자국으로 모셔와 콘서트를 열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소련 땅을 밟은 북미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소련정부는 냉전을 깨고 철의 장막을 걷어내는 시도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하는 중이었지요. 그 일환으로 ‘음악으로의 접근’이라는 신선한 시도를 합니다.
직접적으로 대통령이나 정부인사를 만나 구태의연한 회담을 진행한 것이 아니고 그쪽 출신 음악가를 불러 자국민에게 그의 음악을 들려주게 한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으로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를 부를 수 없고, 서방의 상징인 캐나다 출신 글렌 굴드를 섭외하여 소련의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공연을 엽니다.
글렌 굴드의 바흐연주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유럽순회공연까지 하게 되었으니 양국관계의 개선뿐 아니라 굴드 본인으로서도 대단한 성공이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음악이 미치는 힘은 어디까지일까요
세계평화에 음악이 눈에 드러나게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다’라고 하면 다소 과장이겠지요. 하지만 건너가기 어려운 깊어진 골에 ‘음악’이라는 다리 하나 슬쩍 걸쳐놓으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있을 겁니다.
살얼음판 같은 국제정치에 음악으로 세련되고 부드러운 봄바람을 불게 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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