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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클래식&차한잔]한 사람을 위한 마음 ‘난 널 원해(Je te veux)’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 이레피아노학원 원장) 

 

“사랑을 하면 음악이 떠오르고, 음악을 들으면 사랑이 생각날 수 있다. 사랑과 음악을 왜 분리하는가? 사랑과 음악은 영혼의 두 날개다.”_베를리오즈

 

예술의 세계에서는 사랑과 함께 명작이 만들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예술 영감이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그들은 사랑을 하고, 감정의 파도를 겪으면서 창작혼을 불태웁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걸작 탄생의 시기마다 그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함께 스며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에릭 사티의 ‘난 널 원해(Je te veux)’도 그러하네요.

 

‘난 널 원해’는 ‘앙리 파코리(Henry Pacory)’라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이 곡은 사티가 그의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Susan Valadon)’과 한창 사랑에 빠져있을 때 작곡한 곡입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유일한 사랑이었지요. 그만큼 찬란했겠구요, 그러니 이 곡은 사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기에 탄생한 곡인 것입니다.

 

수잔은 여류화가이자 당시 유명화가들의 모델이었답니다. 한 때 르느와르의 그림모델이었다고도 하지요. 사티는 그녀와 단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거했을 뿐인데 그 한 여자를 죽을 때까지 평생 마음에 품었습니다. 사소한 다툼 끝에 수잔과 헤어진 뒤 그는 스스로 고독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32세부터 27년간 어느 누구의 방문도 없었다고 합니다.

 

사티가 죽은 후에야 열린 그의 방에는 수잔이 그린 사티의 그림, 사티가 그린 수잔의 그림, 중고 피아노 한 대, 검은 정장 12벌, 똑같은 무늬의 손수건 80장, 수잔에게 쓰긴 했지만 보내지 못한 편지 한 다발이 주인을 잃고 쓸쓸히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여생을 사색에 빠져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길을 산책하며 루틴을 반복했습니다. 사랑이 떠난 이후의 삶에 고독을 즐긴 건지 견딘 건지 애매모호하긴 합니다만, 철저히 외부와 차단하며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했으니 한편으로는 ‘사랑’이라는 주제와 함께 ‘고독’이 그의 영감의 소재가 되었다 할 수도 있겠네요.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

 

사티의 음악은 당시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합니다. 늘 혹평이 따라다녔다죠. 전통의 틀을 벗어나서 그 당시의 통념과는 맞지 않는 음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대적 감성과 더 어울리는 세련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티의 곡들은 대부분 간결한 라인의 멜로디 라인이 약간은 몽롱한 화성과 함께 어우러져 멜랑꼴리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짐노페디’ 등 사티를 대표하는 음악은 그만의 확실한 색깔이 느껴지지요.

 

하지만 ‘난 널 원해’는 사티가 한창 사랑에 빠진 시기여서인지 3박자 왈츠의 유연한 리듬을 타며 밝고 행복하게 전개됩니다. 이 곡은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등 다양한 형태로 편곡되어 연주되는데 비교적 편하게 감상 할 수 있습니다.

 

한 가난하고 외로운 음악가의 눈부셨던 한 때를 녹여낸 ‘난 널 원해’, 청년 사티의 수줍은 순애보가 느껴져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에릭 사티의 ‘난 널 원해’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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