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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조세금융신문=김지연 음악전문기자 · 이레피아노학원 원장) 올해는 아침에 우산을 준비해서 나가는 날이 예년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2019년은 9월까지의 기준으로 볼 때, 강수량 자체는 작년보다 적지만 비가 내린 날의 수는 더 많다고 합니다. 10월의 가을비는 ‘을씨년스러움’의 대명사라 해도 과하지 않지요. 마음도 몸도 추워지면서 옷깃을 다시 한 번 여며야만 할 것 같습니다.

 

‘비’라는 것이 참으로 요망해요.

 

사람의 감성을 들었다 놨다….

 

과학적으로 보면 비의 성분 자체는 어느 계절에 내리건 별로 변하는 것이 없을 터, 비가 내리는 날의 계절이나 그 날의 삶의 상태에 따라 마음을 행복하게도, 슬프거나 싱숭생숭하게도 하는 것이겠지요.

 

어느 순간에 맞이하는 ‘비’이건 삶에 힘이 되어주는 플러스로 작용한다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

람을 가져봅니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1835~1839년 사이에 작곡된 24개의 피아노모음곡 중 15번째 곡입니다.

 

쇼팽이 애 둘 딸린 이혼녀이자 여류작가였던 ‘조르주 상드’와 연인관계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은 쇼팽의 폐병을 위한 요양차 마요르카섬에서 잠시 머물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 달리 그리 편하지 않은 숙소에 머물게 되고, 설상가상 악천후로 인하여 건강은 오히려 더 악화되기까지 합니다.

 

녹록지 않은 상황을 견디며 지내던 어느 날, 쇼팽은 이 곡을 작곡합니다. 쇼팽이 직접 ‘빗방울

전주곡’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으니 비를 표현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던 쇼팽의 감성이라면 충분히 그날 내리던 비와 함께 그의 음악을 풀어내었다고 해도 억지스럽진 않을 것 같습니다.

 

왼손으로 조용하고 차분히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가운데 쇼팽의 이런저런 상념들이 떠다니다 오른손의 선율로 내려앉습니다. 편안히 이야기하듯 멜로디가 흘러가는가 싶더니 잠시 무거워지면서 감정이 격앙되어집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안정된 화성으로 마무리되면서 곡이 마칩니다.

 

쇼팽이 이 곡을 지을 때는 비 오는 날 외출한 상드를 기다리던 때였답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점점 거칠어지고, 예정보다 수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바라며 초조한 마음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그러다가 창밖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의 희미한 실루엣에 다시 마음은 평정을 찾습니다.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제목은 이 곡을 감상한 다양한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으로 지은 별칭이랍니다.

 

비 오는 날 이 곡을 한 번 들어보세요.

 

빗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장소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감상하면 음악이 끝날 때쯤, 그리고 차 한 잔을 다 비울 때쯤 우울한 감정도 평정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빗방울 전주곡 러닝타임 5분입니다. 5분만 쉬어가세요. 비와 음악이 주는 선물입니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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