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방영석 기자) 실손의료보험금 자동청구 제도 도입을 놓고 의료·보험업계가 상반된 입장을 보이며 세규합에 나서고 있다.
의료업계는 의료기관이 실손보험금 청구 업무를 떠맡아 수행하는 것이 부당하고, 환자의 개인정보가 보험사에 흘러들어가 결과적으로 보험업계의 수익 창출에 악용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험업계는 보험금 지급 절차 간소화로 보험금 누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투명한 비급여수가 통계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의료계가 제도에 반대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실손의료보험금 자동청구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의료업계와 보험업계가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며 업계의 여론을 모으고 있다.
실손보험 자동청구 제도는 의료기관이 직접 보험사에 전산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지금까지는 소비자가 보험사에 직접 실손보험금을 청구해왔다.
소액 보험금의 경우 청구나 복잡한 절차가 부담되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이 정당한 보험금을 수령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를 수행하는 주체가 실손보험 계약과 관계없는 의료기관인데다 진료 내역이 보험사에 전달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최근 정부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민간보험사와 보험계약자의 사적 계약 부담을 의료기관에 떠넘길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비용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법안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진료 업무와 행정인력을 병행하는 의료기관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 편의 증진이라는 목적이 중요하다 해도 별도의 지원 없이 행정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의 비판의 중심에는 이번 제도가 기실 보험사의 의료 빅데이터 수집과 인수거절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낙전수입'으로 일컬어지던 소액 청구 보험금을 포기할 정도로 보험사 입장에서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라는 것.
환자의 세부적인 진료내역까지 보험사에 집적됨으로 인해 보험사가 손해율이 높은 특정 질병 및 소비자를 특정하고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가입을 거부할 것이란 지적이다.
소비자의 의료정보를 보호하고 보험사의 부당 이득을 방지하는 것이 진정한 소비자보호라는 설명이다.
반면 보험업계는 실손보험금 자동청구 제도의 도입을 환영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업계의 이 같은 주장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전산을 통해 보험금 청구자의 의료기록을 전달하고 있음에도 불구, 의료업계가 한사코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기저에는 불투명한 비급여수가가 공개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보험업계와 의료업계는 실손보험에서 주로 보장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 진료수가 표준화 문제로 지속적으로 충돌해왔다. 현재 보험업계와 의료업계는 병원마다 진료수가를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비급여 항목의 수가 일원화 문제를 두고 부딪히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실손보험금 자동청구 제도가 도입될 경우 보험사가 의료기관별로 책정한 진료수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
보험업계는 낮은 진료수가를 보전하는 유력한 대책이던 비급여수가가 크게 깎일 수 있어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의료업계가 제도에 반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보험업계는 보험사가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비급여 항목의 진료수가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진료수가의 표준화 요구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보험사는 물론 소비자 단체 또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 도입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며 보험업계 역시 여론 규합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소비자보호'라는 대의 명분은 동일하나 기실 각 업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년간 묵혀뒀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라는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금 지급절차 간소화에 따라 보험사가 이익을 보는 것은 보험금 청구·지급 분쟁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 뿐”이라며 “해당 제도가 시행될 경우 사실상 진료수가가 공개되기 때문에 의료업계가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간 의료업계가 비급여 항목을 보장하는 실손보험으로 많은 금전적 이익을 봤다”면서 “의료업계는 수익을 지속하기 위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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