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9 (수)

  • 맑음동두천 33.7℃
  • 맑음강릉 34.3℃
  • 맑음서울 35.4℃
  • 구름많음대전 35.7℃
  • 구름조금대구 36.3℃
  • 구름조금울산 32.0℃
  • 구름조금광주 35.3℃
  • 구름조금부산 28.0℃
  • 구름조금고창 34.8℃
  • 흐림제주 26.2℃
  • 맑음강화 30.0℃
  • 구름조금보은 33.6℃
  • 구름조금금산 35.6℃
  • 맑음강진군 30.4℃
  • 구름조금경주시 37.2℃
  • 구름많음거제 27.9℃
기상청 제공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최고의 언론권력 ‘조중동’의 뿌리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현대민주주의 시대에 권력보다 더 센 게 언론의 힘이라는 것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권력의 힘은 유한하고 유형적인 반면 여론은 무한하고 무형적이라 아무리 권력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려 해도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여론을 움직이는 힘은 또 언론이라는 매개체가 불쏘시게 역할을 하며 리드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은 자체 발생력이 있다기보다 언론이라는 매개체가 불을 지펴 타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언론의 힘은 대중사회에서 왕관 없는 무소불위의 황제나 다름없다.

 

특히 흔한 말로 힘빨있는 언론은 권력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힘빨있는 언론은 이른바 ‘조중동’이라하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다.

 

우리나라 언론 영역에서 이 조중동이 차지하는 힘의 장악력은 거의 70%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론의 독점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여러 정치, 안보, 경제, 외교 문제에 있어 항상 집권여당과 불협화와 논쟁을 일으키는 이 거대 조중동을 두고 SNS상에서는 토착왜구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필자는 이 친일성향의 토착왜구라는 비난이 어디서 파생이 되었는지 조중동의 뿌리를 파헤쳐볼 필요성을 느꼈다.

 

조선일보는 1920년 친일단체인 대정실업친목회의 예종석을 발행인으로 창간되었으나 경영난이 계속되자 방응모가 인수하였다. 방응모는 젊은 시절 폐광을 빌려 채굴하다 엄청난 금맥을 발견, 조선굴지의 금광왕이 되었다. 광산을 일본인에게 팔고 그 대금으로 인수한 조선일보에 공격경영을 펼쳤다.

 

사세가 확장되어 수익이 늘어나자 방응모는 총독부에 고사포와 기관총을 뇌물로 주고, 또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봉찬회에 발기인을 시작으로 각종 친일단체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총독부소유의 땅을 임대해 큰 수익을 거뒀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즉각 협력과 후원에 나섰다. 조선일보 지면은 노골적인 일본천황에 대한 충성과, 조선지원병제도를 축하하고 앞장서는 친일기사로 채워졌고 이 덕분에 방응모는 총독부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일본의 대륙전쟁에 대비한 물자절약정책으로 일본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조선일보는 폐간되었지만 해방 후 방응모는 동신문을 재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사주는 그 후손들이 계속 장악해왔다.

 

중앙일보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에 의하여 1965년 설립되었다. 이병철은 1930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수학중 병으로 중도귀국, 아버지로부터 사업자금을 받아 식산은행과 거래 땅투기로 돈을 벌어 200만평의 대지주가 되고 결국 삼성상회를 설립, 오늘날의 삼성그룹을 일궈냈다.

 

일제시대 뚜렷한 친일행적이 나오지는 않지만 일제시대 대부분의 부호가 친일을 기화로 돈을 벌었다는 점에서 그의 친일성향은 중요한 마인드였을 것이다. 이후 여러 방송으로도 진출하고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사주는 이병철의 사돈계가 장악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20년 김성수의 민족자본으로 출발하였다. 김성수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중앙학교, 경성방직을 세우고 보성전문학교도 설립하여 근대적 부호로 민족개량주의를 주창했지만 일본군국주의가 탄압하며 친일행위로 돌아섰다.

 

일본군국주의의 전쟁특수에 수혜자가 되었고 일제의 강요지만 친일단체에 가입, 학병권유연설을 했으며 그 동생은 비행기 2대를 일제에 헌납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행위를 일삼았다.

 

일제시대에서는 친일이 아니면 부호가 될 수 없었다는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 이 세 사람의 조중동 창업자는 뿌리 깊숙한 곳에서 친일성향을 배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뿌리의 조중동이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토착왜구라고 비난받는 까닭이 뭘까? 정부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고유기능에 충실한 건지, 아니면 정부권력을 좌지우지해 언론권력의 아성을 쌓으려는지 그 진심이 의아하다.

 

언론은 보수, 진보, 친일, 반일, 친미, 반미, 친북, 종북 등 경계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오로지 그 경계선의 담 위에서 양안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더 좋은 화합의 길을 제시하는 언론에서 조중동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필] 김우일 대우김우일경영연구원 대표/대우 M&A 대표

•전)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전)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이사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서울고등학교, 연세대 법학과 졸업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정치인의 경계선, 정치꾼과 정치가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제 22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여소야대의 틀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판을 개장했다. 투표율 67%로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여 새로운 정치갈망을 표현했다. 정치에 투표하는 것은 모든 국민들이 나보다 못한 사람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말이 새삼 생각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누가 나보다 나은 사람인지 아니면 못한 사람인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과 같이 구분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듣도 보도 못한, 아닌 밤중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정체, 특히 감춰진 내면의 인성, 이념, 철학을 알 수가 없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가면을 덮어쓴 그의 진정한 모습은 하늘이 아닌 다음에 어찌 알 방법이 있겠는가? 오로지 그가 내세운 탈가면을 쓴 그의 탈춤을 보고 찍는 수밖에 없다. 당선된 후에 그는 탈가면을 벗고 탈춤을 추지 않는다.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진정한 얼굴은,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생면부지의 얼굴로 되돌아가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이 배가 되는 법이다. 초선 의원수가 전체의 44%, 4년마다 교체되는
[인터뷰] 4선 관록의 진선미 의원 “3高 시대, 민생·국익중심 경제정책 전환 시급”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현재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상황을 국내 변수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든 측면에서 국제 경제 상황과 닿아 있는 문제이며, 따라서 철저하게 국익을 위한 외교・통상・안보 정책을 꾀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 결실을 향유할 수 없습니다.” 지난 4월10일 제 22대 총선거에서 당선돼 4선 국회의원이 된 ‘경제통’ 진선미 의원이 22일 <조세금융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선이 끝나자 정부의 가스요금 인상 움직임을 비롯하여 시장의 생필품과 식품 등 주요 소비재들이 줄줄이 가격인상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4선 의원이 된 진선미 의원은 제21대 국회에서 하반기 기획재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조세와 금융, 환율 등 국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 전반에 대한 시의적절한 문제제기와 해법을 제시,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에서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됐다. 뿐만아니라 국회 예산정책처와 국회 입법조사처 등 국회의 양대 싱크탱크가 선정한 의정활동 우수의원으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 중 개최된 국회 예산정책처 설립 20주년 행사에서 정책활동 우수 국회의원으로 선정돼 상을 받는 자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