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손님이 끊겼다. 피붙이 같은 가게가 문 닫기 직전이다. 가족과 말 못할 빚만 남았다. 불 꺼진 밤길이 얼음 송곳처럼 찌르르 하다. 그래도 길거리로 나섰다. 지난 1월 국회 앞을 사람들로 메우자 정부가 말했다. 도와주긴 하겠는데 많이 못 도와준다고. 세금 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기재부 전망이 그러하다고.
5월 10일 새 정부가 들어서자 기재부 전망이 180도 바뀌었다. 연초까지만 해도 추가 세금 여력 없다던 기재부였다. 기재부는 정권 바뀌자마자 53.3조원의 추가 세금 수입을 인식했다. 세금 생기면 빚 갚으라던 국민의힘은 희희낙락 적자국채는 없다며 자영업자들에게 600만원+α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언론들의 역주행도 화려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안 편성 때 민주당 정부가 2022년도 세금수입 전망치를 4.7조원 끌어올리자 정권 막판에 돈잔치 한다며 잔뜩 비꼬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5월 11일 국민의힘 정부가 세금수입 전망치를 무려 53.3조원이나 끌어 올리자 소상공인 지원이 시급하다며 기름 묻은 입을 훔쳤다. ‘정권 초반 세금 잔치’란 비판은 없었다.
당파성을 가진 정치와 언론은 바람 따라 휘이 구부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헌법은 그들에게 그러한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인도, 언론인도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 기록적 세금 호황 때 자영업자는 메말라갔다
민주당 정부가 자영업자 코로나 손실보상에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1년치 나라살림은 기재부 세금 수입 전망에 맞춰 짠다. 민주당은 소상공인 현금지원을 세게 걸려고 했지만, 번번히 세금 전망에 가로막혔다. 세금이 정말로 더 안 걷히냐는 물음에 기재부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2018년 세금 수입은 기재부 전망치를 25.4조원이나 뛰어넘었고, 2021년에는 61.3조원이나 초과했다. 특히 2021년의 경우 기재부는 1차 추경, 2차 추경을 거치면서 두 번이나 보정을 거쳤음에도 최종적으로는 약 30조원의 오차를 냈다.
세부 세입자료도 없는 작은 민간연구소인 나라살림연구소가 기재부보다도 더 정확하게 2021년 세금 수입을 맞춰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2년 국가 예산도 마찬가지였다.
2021년 8월 기재부는 2022년 세금수입 전망치를 338.6조원으로 짰다.
하지만 338.6조원은 상식적으로 이해 안 갈 수치였다. 세금 수입은 물가 영향을 강하게 받고, 물가는 경상 성장률이 이끈다.
2021년 말 세계 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들이나 주요 신용평가사들 역시 수치에 차이가 있었을 뿐 2022년 경기 반등을 전망했고, 한국 경제는 세계 경기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무게추다.
2021년 8월 당시에도 2021년도 세금 수입이 330~340조원이 될 거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왔었고, 실제 2021년도 세금 수입은 343조원이었다. 경상 성장률을 감안한 단순 계산으로도 2022년도 세금 수입은 370조원 정도는 됐어야 했다.
기재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언론이 그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2021년 12월 민주당이 막판 보정을 거치며 2022년 세금 수입 전망치를 343조원으로 맞추자 언론은 쏜살같이 정권 막판 전례없는 세금 잔치라며 쏟아 냈다. 국민의힘도 나라 빚이나 갚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부는 새 정권 바뀌자마자 올해 세금 수입 전망치를 재빨리 396.3조원으로 고쳐 잡으면서 자영업자 1인당 최소 600만원 지원안을 발표했다.
기재부 전망이 맞다면 기재부는 2021년 61.3조원, 2022년 53.3조원 등 2년 동안 세금 수입 전망 오차를 무려 114.6조원이나 내게 된다. 지난해 세금 수입의 무려 33.5%다.
과거 추정이 새빨간 부실 전망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사과도 없었고, 반성도 없었다.
◇ 울고 쓰러지며 생마저 떠났다
2020년 285.5조원(확정치), 2021년 344.1조원(확정치), 2022년 396.3조원(수정 전망치).
뒤늦게라도 기재부가 세금 수입 전망을 수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마냥 반가울 수 없다.
그간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2021년 12월 28일 중소벤처기업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결과(잠정).
2020년 소상공인 사업체 수는 1년 사이 4.7% 늘었지만, 같은 시기 사업체 직원 일자리 87만1000개가 줄었다.
예술, 스포츠, 여가 업종은 이익이 85%나 줄었고, 학원 등 교육서비스 -66%, 숙박‧음식점 -57%, 도소매업 –49% 등 줄줄이 빨간 줄을 기록했다.
소상공인들의 빚은 47조7000억원이나 늘어나면서 294조4000억원에 달했다.
전례 없는 세금호황 시기였건만,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메말라 죽어갔다.
상대적으로 정부 지원이 턱없이 적었다.
2021년 7월 기준 1년치 국가총생산(GDP) 대비 한국 정부의 직접 지원금 비중은 4.5%, 정부 보증 저이자 대출은 10.1%였다.
미국은 직접 지원금으로 GDP의 25.4%나 풀었고, 정부가 보증하는 저이자 대출은 2.4%였다.
재정지출이 압도적으로 많은 미국을 제외하고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요국의 GDP대비 직접 지원금은 13.4%, 저이자 대출은 24.7%였다. 미국과 한국을 포함하면 주요국 평균 직접 지원 비중은 17.31%, 저이자 대출 비중 11.4%였다.
이런 숫자들은 자영업자들이 마주해야 했을 비극을 설명하지 못 한다.
2021년 9월 2일 서울 마포구 맥줏집, 12일 전남 여수의 치킨집, 15일 강원도 원주 유흥업소 주인이 세상을 떠났다.
왜 어째서 그들은 극단적 선택을 했어야 했나.
◇ 국민의 종복, 공무원의 용기
“기재부는 대한민국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 경제의 좋은 면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결기와 아픈 부분까지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진단은 정확하게, 공개는 솔직하게, 판단은 균형 있게 해야 합니다. (2022년 5월 11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사)”
문재인 정부 시절 기재부는 용기로운 듯 했다. 세금 수입 전망 오차를 지적받을 때마다 전망이니 틀릴 수 있지 않느냐며 버텼고, 대통령이 사퇴를 허용할 처지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가라면 나가겠다고 결기를 곧추 세웠다. 여당 반대에도 재정준칙을 만들어 세금 좀 아껴쓰라고 요구했다.
그 사이 자영업자들은 희망을 잃어갔고, 일부는 부모, 자녀, 친구를 잃어야 했다.
공무원은 정치인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공무원은 국민의 도구이자 국민 만의 종복이다.
정권 따라 정책은 달라질지언정 도구가 무게나 길이 단위를 속이는 일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할 수 없다.
그들이 단위를 속이거나 오판하면 그 피해는 정치인들이 입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이웃들. 가족들….
그러하기에 우리 법은 공무원에게 중립을 '보장'한다. '의무 부여'가 아니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7조 제2항)”
정치인들도 덕담 건네며, 뒷짐만 질 수 없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용기를 잃는, 대부분의 이유는 정치가 만든다.
2022년 5월 10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바꿀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것일지 모른다.
[바로잡습니다] 2022.5.13. 오전 9시 20분 이전 정부가 2차 추경 관련 2022년 추가세금 수입 인식 규모를 53.6조원으로 작성했으나, 9시 20분 이후 53.3조원으로 0.3조원 낮춰 바로잡습니다. 53.6조원은 2020.5.12 오전 10시께 세금 수입 전망 업무와 관련한 기재부 핵심 관계자로부터 구두로 세 차례나 되물어 확인했으며, 정정은 기재부가 어제 오후 4시 30분 경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른 것입니다. 기재부 측에서 정정을 요구한 바는 없음을 독자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독자분들께 송구의 말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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