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촬영 권영지 기자) 최고의 능력, 최고의 인재. 그리고 최고의 팀.
기획재정부는 정부 18개 부처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세제실은 기획재정부 6개 관‧실 중 하나다. 그렇지만 세제실은 그저 여럿 중 하나가 아니라, 최고의 부처, 최고의 공무원들이 일하길 원하는 최고의 팀으로 손꼽힌다. 세제실 공무원들은 고되지만, 매년 세금제도를 가다듬고, 고쳐가며,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든다.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세제실 공무원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세제실장인 고광효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통해 세제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고광효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세무행정과 관련하여 거의 모든 영역을 거쳤다.
처음 10년 동안은 국세청의 법 집행자였다.
이후 20년간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서 세법을 만드는 조율사였고, 어느 때에는 납세자들과 과세관청 간 균형을 바로잡는 조세심판원 심판관이었으며,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 특별위원회 등 정무 기획자 역할을 부여받기도 했다. 국익을 위해 해외로 나가 OECD 재정위원회 이사에서 세무 외교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제실 140여 직원들의 총 책임자이자, 성공적으로 윤석열 정부 조세정책의 시동을 건 주역 중 하나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이러한 세금제도 업무를 무거움이라고 표현했다.
“조세는 국가의 뿌리입니다. 국가는 조세 없이 태어날 수 없고, 최근에는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그 중요도가 더욱 높습니다.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까지 방대한 조세 관련 법령을 검토하고, 개정하고…. 세제실 직원들은 마치 건물을 짓고 끊임없이 보수를 하듯이 밤낮없이 세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 “조세정책에서도 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의 말처럼 세제실의 과업은 매년 엄중하고 무거워지고 있다. 매년 각계각층에서 세법 개정건의가 올라오고, 국회에서의 개정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세금 제도는 산업정책, 저출산, 고령화 대응, 환경문제, 우리 경제 모든 분야와 연결돼 있고, 국민과 기업들의 소비나 투자 등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희는 투자나 소비지원을 통해서 우리 경제활력을 제고하고, 서민‧중산층 세금 완화를 통해 민생안정에 기여하고, 끊임없이 조세 인프라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세금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인위적인 것이다. 어떤 진리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다. 오늘 필요한 도구가 내일은 필요 없을 수 있고, 오늘 필요 없는 도구가 내일 필요할 수 있다. 세제실은 ‘지금 필요한 도구’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고광효 세제실장은 시기를 강조했다.
“조세정책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최근 세제실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반도체에 대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확대했습니다. 우리 기업의 초격차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세제개편이 꼭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공급망 재편에서 기민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지난해 세제개편안의 총지휘를 맡았었다. 매년 세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개편 수준의 개정은 드문 일이다. 그것도 여소야대 상황이었다. 그 많은 개편안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큰 보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00%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여당 의원님들께서 잘 이끌어 주시고, 야당 의원님들께서도 정부안에 어느 정도 공감해주신 덕분에 기본 방향과 취지가 다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인세율 인하가 원 취지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3월 K칩스 법 추진 과정에서 통과된 것은 여야 협치 덕분이었고,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긴장되는 일이었는데 어떻게 견디었는지 묻자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이내 말을 이어갔다.
“국회 제출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꼼꼼히 절차를 거칩니다. 대통령실 보고 및 조율도 부담이 크지만, 대외에 발표할 때도 부담이 큽니다. 언론 브리핑에서 첫 반응을 보는 데 언론의 반응이 안 좋으면 데미지가 엄청 큽니다. 국회 제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세제개편안은 언론 브리핑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들어서 나름 괜찮은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국회에서는 경제에 대한 여아간 시각 차이가 있어서, 많은 지적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국회에서도 여러 의원님들이 여아간 소통을 이끌어 주셨고, 덕분에 잘 조정이 되어 원 취지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잘 해오셨는데, 올해 한 번 더 하실 수 있는지를 묻자 그도 두 번은…하는 기색이었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너털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 “우리 조세제도도 이제는 글로벌 스탠다드이어야 합니다.”
고광효 세제실장에게 인터뷰를 제의하면서 꼭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의 조세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 큰 그림에 대한 것이었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OECD 등 국제 경험이 풍부한 만큼 더욱 객관적으로 진단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OECD에서 활동하는 동안 주요국에서 한국은 왜 아직도 그런 조세제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많습니다. 단순하고 명료한 조세제도가 좋은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제개편에서 저의 OECD 경험이 반영이 된 게 그런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조세제도를 만들자. 우리가 발전하고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조세제도가 효율적이지 않는다면 제도가 국가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해 세제개편에서 법인세 4단계 누진세율 구조를 단일세율 구조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자본은 도구이고, 따라서 자본에 대한 과세는 누진세율로 과세하지 않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유럽 선진국들은 단일세율이나 2단계 세율구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부자 감세로 오인된 것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고광효 세제실장 말대로 한국 세법은 복잡 다난하다. 한국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회가 뒤바뀌었다. 오늘의 농지가 내일의 공장이 됐고, 사람들도 지방에서 도시로, 도시 중에서도 대도시로, 대도시에서 해외로 뻗어나갔다.
그렇지만 제도마저 덩달아 출렁일 수는 없으되 새 것을 반영해야 한다. 원근법에 따라 오랜 기간 그려온 전통 회화 같은 서구와 달리 한국의 조세제도는 가파른 변화 속에 옛것과 새것이 뒤얽힌 입체파 그림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국내 세법 외에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조세조약도 우리가 다 옛날에 중진국. 후진국일 때 당시 기준에서 선진국과 맺은 조약인데 지금은 우리도 선진국이 됐잖습니까. 진짜 선진국이에요. 이제는 우리가 선진국 입장에서 과감하게, 대등한 입장에서 조세조약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 “국제 디지털세 논의에서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국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세무 외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현재 전 세계 국가들은 법인세 국제 합의에 나선 상태다.
예를 들어 다국적 기업은 어느 나라에 걸쳐 있든 이익의 15%를 세금으로 내야 하며, 각국은 글로벌 매출 비중에 따라 과세권을 배당받는다. 많은 국가가 디지털세 관련한 입법에 나섰으며 한국은 가장 빨리 법 제도를 구축한 편에 속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역시 기민하게 대응했다. 올해 정식 전담부서인 국제조세정책관을 신설했는데 각 과에 나뉘어 있던 국제조세 기능을 모아 개편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로 보면 한 경제규모 10위권 정도 되지만, OECD 내에서는 6~7위권 국가입니다. OECD 내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급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국가란 뜻입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국가로는 중국과 인도가 있습니다만, 그들은 OECD 비가입국입니다. OECD 내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는 과거에는 일본이었습니다만, 이제는 한국 역시 아시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2차전지, 미래차…. 이런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디지털세는 그러한 산업들에 대한 과세쟁점을 담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들은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에게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 국가입니다.”
“유럽 주요국이라고 해도 한 국가가 OECD 재정위원회 이사를 연이어 두 번 맡는 일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우리의 경우 과거 몇 년간은 OECD 재정위원회 활동이 좀 뜸했다가 제가 2019년 12월 6일 재정위 이사로 3년간 들어가게 됐고, 제 뒤를 이어 이용주 기획재정부 국장이 또 재정위 이사를 맡게 됐습니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 결과이자 이례적으로 위상을 인정받은 일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한국은 덩치가 커진 만큼 더욱 말과 행동을 사려깊게 해야 한다. 한국은 내수 국가가 아니라 교역 국가이며, 소비 국가가 아니라 생산 국가이다. 국제 세무 외교 무대에서 한국은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우리 의사가 무엇인지 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국제회의 때 꼭 주요 선진국 입장만을 대변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됐잖아요? 개도국과 선진국 간 중간자로서 성장의 롤모델도 되고 양쪽의 입장을 중재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능동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국제 디지털세 논의에서도 한국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국가가 아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국은 목소리를 내는 나라다, 그런 동인이 있었습니다.”
“올해 신설한 국제조세정책관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위상에 맞게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관철해내는 국제조세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낡은 조세조약은 빠르게 개선하도록 협상능력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디지털세 등 새로운 국제조세 기준 논의에 있어서도 민간 기업이나 정부 기관간 공조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전방위적으로 활용해서 국익에 기여할 수 있는 구심점으로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질수록 국제조세 관련한 어려움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민관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인사교류가 필요합니다. 알아야 이해하고 소통을 하죠.”
고광효 세제실장을 통해 막힘 없이 조세정책, 국제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개인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국세청 본부 기획실, 조사국을 거치던 나름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10년의 국세청 세무직을 정리하고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들어간 것일까. 이 물음에 고광효 세제실장의 단단한 얼굴에서 멋쩍음이 퍼져나갔다.
“그게 참 개인적인 일인데요…. 제 꿈은 사실 공무원이 아니고, 대학 강단에서 교육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예전에는 국세청하고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매년 한 명씩 서기관을 교류인사로 보냈었습니다. 교류 인사 시기 때 하필 제가 국세청에서 가장 젊은 서기관이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사양 한 번 못 해보고 세제실에 간 거죠. 그런데 세제실에서 순번이 되어서 유학을 갈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는 유학이면 나중에 다른 길을 가든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이건 국비유학 아닙니까. 기재부에서 그토록 귀한 기회를 줬는데 공직을 나올 수도 없고, 국세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게 세제실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고마운 마음에 세제실에 남았다지만, 그 길이 당연히도 편한 길은 아니었다. 국세청도 업무량 많고 일 어렵기로 유명하지만, 기획재정부 세제실도 한 때는 압도적 업무량으로 악명이 높았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조세심판원 심판관으로도 2년간 근무했는데 조세심판원 매년 까다로운 청구사건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한 번도 그 추세가 꺾여본 적이 없다.
“제가 국세청에 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머리가 새까맸습니다. 새치 한 가닥 없었고요. 그런데 세제실에 와서 딱 1년 만에 반백이 되더라고요. 지금 제 머리는 다 염색한 겁니다. 이유가 뭐냐면 각 사무관이 담당하는 법조문 영역이 있습니다. 조문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면 정부 조직간에도 그게 잘 만들었는지 하자가 있는지 서로 까다롭게 확인을 해요. 법제처 심사, 국회에도 법제실이 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조문 검색이 되고 하지만, 그때는 법전밖에 없어요. 법이 시행규칙까지 다 개정되면 4월에 법전이 나옵니다. 그러면 현장에서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들이 전화해서 이게 무슨 뜻이냐, 이건 잘못 만든 것 같다, 그러면 다음 개정 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질문 들어올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는 거에요. 그랬어요.”
“조세심판원 있을 때에는 맡은 사건도 많았지만, 일도 어려웠고 거의 일주일 내내 회의가 있었습니다. 각 심판관들은 주심, 부심 역할을 맡으며 일종의 합의체 회의를 통해 심판 결정을 내립니다. 상임심판관 한 명이 들어가는 회의가 일주일에 주심으로 1회, 부심으로 2회, 이것만 해도 세 개죠? 예규심 참석해야 하고, 주심끼리 하는 심판관 회의가 또 있어요. 회의 마치면 다음 날 사건을 읽어야 하는데 그날 일과시간에 다 못 읽으면 다음 날 꼭두새벽에라도 일어나서 사건을 읽어야 합니다. 세금 내는 납세자들이 억울하다고 조세심판원까지 왔는데 사건을 제대로 알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국세청도 고생해서 찾아내 과세하는 입장이고, 어떤 경우는 이건 명백히 탈세범인데 세금 깎아달라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러한 가운데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조세정책은 세법을 만드는 세제실만으로 운영할 수 없다. 법을 집행하는 국세청이 있고, 그 집행이 옳았는지 살피는 조세심판원이 있다.
이 세 꼭지점이 서로 어귀를 잘 맞춰 돌아가야 국민이 조세행정을 믿을 수 있고, 국가도 이를 토대로 재정을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이상일 뿐이다. 아무리 같은 공무원이라도 입장이 다르면 손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그렇게 30년여 간을 국세청에서 기재부로, 기재부에서 조세심판원으로, 심판원에서 세제실로 돌아와 이제는 세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면서 여러 곳을 경험해보니 그때 경험이 조세행정 전체를 이해하고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제가 국세청, 세제실, 조세심판원, 세 곳에 다 있어 봤는데 기관간 입장이 서로 다릅니다. 국세청이 힘들게 집행했는데 세제실이나 심판원에서는 달리 볼 수 있고, 세제실과 심판원 역시 법 해석을 두고 의견이 나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서로 협조가 잘 되고 있습니다. 국세청장님, 조세심판원장님, 그리고 저(세제실장), 서로의 업무도 아니까 서로 입장을 잘 이해하고, 소통도 잘 됩니다. 인사교류로 서로의 일을 해봤으니 아는 거죠.”
“인사교류가 현실적으로 조건이 좀 안 맞는 경우가 있어요. 국세청은 세제실보다 승진이 빠르거든요. 세제실이 국세청으로 교류를 나가면 그쪽에서는 고참 공무원이 오는 거고, 우리 쪽으로 국세청 과장급이 교류를 오면 경력으로는 세제실 팀장급인 거에요. 썩 만족할 만한 교류 보직을 마련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과장급에서도 사무관급에서도 교류가 필요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어보고, 법을 만들어 본 사람들이 법을 집행도 해보고 서로의 업무를 해봐야 이해도 하고 소통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를 강조하자면, 세제실을 완성하는 건 소통입니다”
고광효 세제실장은 고위공무원 가급이다. 햇수로 치면 봉직 기간만 30년이 넘었다.
그가 선배 공무원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듯이 이제는 내줘야 하는 시점이 됐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이라면 그가 세제실장을 맡은 해에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부서로 세제실이 꼽혔다는 것이다.
“제가 특별하게 잘 대해준 것도 별로 없고, 선배들보다 제가 더 모범적이고 우수하다고 하긴 어렵고…. 앞선 선배 공무원들로부터 지금 후배들까지 모두가 노력해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하고 발전할 겁니다. 세제실 공무원들은 책임감이 강하거든요. 아무도 자기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꾸준히 공부해야 직위를 맡을 수 있다는 것도요. 인터넷 강의도 듣고 열심히 잘하더라고요. 좀 생소할 수 있는 분야로 국제조세가 있는데 해보면 잘합니다. 국제조세 생각도 안 해봤다는 직원에게 맡겨보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척척 하더라고요. 이걸 보면 우리 때보다 잠재력 역량이 더 크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참 후배 자랑하던 그도 아쉬움 한 점은 감추지 못했다.
“세제실 공무원들이 모두 세제실에 남길 원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기를 원합니다. 세제실 업무가 다 똑같은 세금 같아 보이지만, 다 달라요. 우리 직원들은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고 세제실에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 성취감과 자부심으로 고되고 어려워도 일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 몸도 건강하려면 몸의 혈류가 막힘없이 잘 흘러가야 하듯이 인간사에서 똑같은 역할을 하는 게 ‘소통’입니다. 어떤 경우를 보면 좀 아쉬워요. 인정받으려면 능력도 중요하지만, 전달하고 이해하도록 소통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런 건 하루 이틀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이는 거고, 그게 쌓여서 명성을 만들고, 나에 대한 상을 맺게 하는 거거든요. 그런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업무가 독립돼 있어도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조직은 더더욱 개인간 관계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관리자를 두는 것이며, 고위공무원 승진시험 때 인사관리를 시험과목에 넣는다. 시험도 어렵지만, 실제 써먹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고광효 세제실장의 의견은 어떠할까.
“관리자는 멀리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이 큰 실수를 했어요. 속상하죠. 화도 나고. 그런데 그 자리에서 화난다고, 이거 왜 이렇게 했어, 너 책임져. 이렇게 감정을 내세우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은 알았다. 수습방법을 찾자, 그리고 수습한 다음에 왜 이런 실수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방지 방안을 만드는 순서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요. 부하직원들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실수할 수 있는 환경일 수도 있고요, 경험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걸 인정을 하고 나도 그랬으니까, 하고 부하직원들을 이끄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가 또 과장님들께 하는 이야기가 직원들의 능력은 다 똑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빨리 가는 직원도 있고, 늦지만 대기만성인 직원도 있거든요. 그런데 조직은 모든 분야에서 100점이 나와야 일이 완성이 됩니다. 80점이 언젠가 100점이 되겠으나, 그 때까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80점이 스스로 100점을 맞도록 돕는 것이 관리자의 일입니다. 관리자가 된 순간부터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 운영자로서 있는 거니까요.”
고광효 세제실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넘어가 있었다.
세금제도는 만고불변의 이치도, 어떤 방정식의 해답도 아니다. 오늘 필요한 것이 내일 필요하지 않을 수 있고, 오늘 필요하지 않은 것이 내일 필요할 수 있다. 세제실의 역할은 지금, 나아가 내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판단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영-리더십 연사 사이먼 시넥은 경영과 조직 리더십에 대해 ‘왜’를 대중에게 부각시킨 바 있다.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과가 아니라 동기로 일을 하며, 결과는 동기의 부산물일 뿐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아무에게도 혁신의 영감을 불러 일으킬 수 없다는 내용이다.
고광효 세제실장의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도, 기재부 세제실 공무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것도, 그 동기에 공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WHY로 시작하세요. HOW는 방법, WHAT은 결과입니다. 영감을 주는 리더들은, 조직들은 그들의 크기와 산업에 관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통합니다. 우리는 왜 하는가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어떻게 하는가에서 결과는 무엇인가로.” -사이먼 시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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